현실과 이상 중 이상을 쫒으라는 말은 어쩌면 낭만적이나 창작자에게는 고통스러운 한마디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의 길을 걸어보았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주저하곤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배고픈 상황에서 묵묵히 이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일지 고민하는 그런 순간 말이죠. 그럼에도 현실을 묵묵히 걸어나가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 흐르듯 관객과 대화하는 수다쟁이 연극 연출가 김남언에 대해서 필자는 궁금해졌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가 고군분투하며 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이야기가 하고 싶은 지 말이죠.
여백의 공간에서
약속으로 만드는 대화, 연극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프로젝트그룹 낙타의 대표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로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 머무르지 않고 흐르길 좋아합니다.
머무르지 않고 흐르길 좋아하신다는 것처럼, 과거 배우로 먼저 시작하셨는데 현재는 연극 연출을 하신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네 맞아요. 배우로 처음 연극을 시작했는데 하나의 인물로서 무언갈 발화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저만의 연출을 통해서 풀어나가고 싶었거든요. 저는 본성이 수다쟁이인지라 관객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이 무궁무진합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오롯이 전달하기에는 작가나 연출로서 활동하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에 그리 흘러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소통하고 뛸 수 있는 연출이 제겐 더 자연스러운 편인 것 같습니다.
연극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 덕분에 연출 일을 하시는 것 같은데 혹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
연극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도 창작자와 관객 사이의 약속만 있다면 모든 게 가능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팬터마임을 생각해 보면 쉬울 듯 해요. 영화 ‘버닝’에서 귤을 먹는 팬터마임을 하면서 귤이 없다는 것을 잊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약속 말이에요. 그런 약속을 통해 긴 호흡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들, 연극이 가지고 있는 마법적 약속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이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약속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연출가 김남언이 전달하는 질문은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여러 작품이 있는데 제주 해녀의 항일 운동을 담은 연극 <불턱>이라든지, 개인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별> 등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모든 작품을 통해 관객과 긴 호흡을 맞추며 대화하기 전 ‘이 말을 왜 연극을 통해서 하는가?’라는 질문이 항상 선행되어 있답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전위적인 표현과 담담한 전달 그 사이의 틈을 통해 대화하려 하거든요.
배고픈 예술을 한다는 건
사막횡단과도 같아서
극단의 이름이 ‘낙타’라는 점이 참 흥미로운데, 이에 대한 일화가 있을까요?
현대 사회에서 연극은 ‘배고픈 예술’의 대명사로 통해요. 극단 출신 배우들이 그렇게들 말하곤 하는데요. 제도적, 경제적으로 열악한 흡사 사막 같은 환경이라고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제아무리 강한 육식동물도 버티기는 불가하잖아요. 그래서 주저앉기보다 그 속에서도 낙타처럼 진화하고 묵묵하게 버텨내고자 극단 이름을 ‘낙타’라고 지었어요. 언젠가 도달할 초록빛 나라를 향해 지금까지도 척박한 연극계를 헤쳐 나가보고자 합니다.
연출가님께서 향하고자 하는 초록빛 나라의 정의가 궁금해지는데요.
제게 초록빛 나라는 예술가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진실하게 창작할 수 있는 이상향이에요. 유토피아나 율도국 같은 허무맹랑한 허상일지도 모르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을 쫓는 것이 창의이자 창작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초록빛 나라로 가기까지 사막과도 같은 환경 속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제 성향상 연극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토로하는데 조금은 꺼려지기는 하지만, 답변할 수 있는 부분을 답변해보자면, 경제적으로는 제작비에 대한 부담이 항상 커요. 매년 연말, 다음 해 제작비 지원에 대한 국가 공모가 있지만 경쟁률이 엄청납니다. 지원금에 선정이 되어도 참여하는 창작진들은 최저시급의 절반도 받기 힘들답니다.
지원을 받아도 창작하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크게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보여요.
지원을 받지 않으면 더욱 막막해지죠. 올해 초 지원금 발표에서 지원한 모든 사업에 탈락했고, 올해 예정되어 있던 공연이 모두 어그러질 가능성에 힘들었답니다. 다행히 올해는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매번 연출가 김남언과 대표 김남언 사이에서 갈등이 많답니다. 연출가 김남언은 하고 싶은 예술이 많지만, 그걸 다 하려고 하면 대표 김남언의 공격이 들어오곤 합니다. 보통은 연출가 김남언이 돈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모으면 된다고 설득하며 대표 김남언을 이긴답니다. 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건 많은데 돈 때문에 포기하게 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저 자신에게도 실망하고 싶지 않거든요.
경제적인 어려움 말고도 다른 어려움은 또 없을까요?
함께하는 창작자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한다고 해도 해당 분야에서 인정받는 창작자는 1%도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은 너무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창작자의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순수 예술 계열의 특성상 다른 분야로 취업하기도 어렵고 경력 또한 인정받을 수 없는지 보니, 일반인의 눈에는 ‘열심히 하고 싶은 취미’를 하다 온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기도 해요.
서로가 모여 창작하는 연극이기에 동료들의 어려움도 존재하네요.
이런 부분들이 동료와 작업을 이끌고 책임지는 연출가로서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오래 생각해도 별다른 해결책은 없던 것 같더라고요.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주어진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해결책인 것 같아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서로 다른 개인이 모여 활동하다 보니 이에 대한 고민도 많을 듯한데요
그쵸, 연극은 많은 사람과 정신적 신체적으로 밀접하게 붙어서 하는 예술이니까요. 기쁨도 슬픔도 예술적 성취보다 이 관계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고 사람이 가장 추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정신과 질환에 매우 취약한 직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특히 연출가는 제작자, 작가, 배우, 스태프 모두와 소통해야 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니 그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답니다.
초록빛 나라로 가는
여정을 지속하는 원동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막 속 묵묵히 지속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요?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출가로 계속 살아가는 것은 연극 연출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남아서겠죠. 만약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면 과감히 연출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제가 말이 많은 사람인지라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요.
연극의 매력에서 나오는 힘도 존재할 것 같아요.
연극이란 예술이 참 비효율적인 분야긴 합니다. 약 1년의 기획을 거쳐서 두, 석 달 동안 모여 쏟아부은 노력이 5회 남짓한 공연으로 사라져 버리곤 한답니다. 이후에는 다시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영화가 상영 이후 OTT 서비스를 통해서 볼 수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비효율의 끝판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효율이 주는 낭만이 또 있죠. 같은 공연이라 하더라도 매번 무대 위의 공기와 전개들은 여러 변수를 통해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잃고 살아가는 비효율의 낭만을 연극으로 선사하고 싶은 마음도 남아있으니깐요.
연극 연출가 김남언이 일궈낸 여러 가지 것들이 원동력이 되기도 하나요?
최근 여러 상을 받긴 했지만, 상은 포장지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드는 나날입니다. 결국 제가 창작하는 작품의 알맹이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알맹이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 질문이 관객에게 닿을 때의 쾌감 때문에 관객과 저만의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연극 연출가로서 어떤 방향성을 추구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사실 최근의 가장 큰 고민이 앞으로의 방향성인데요. 아직 스스로 고민에도 대답하지 못한 터라 답변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막연하게 드는 생각은 ‘비우자’인 것 같아요. 각자의 다채로운 삶과 경험의 이야기들을 담뿍 채우고 끊임없이 대화하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도네요.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걱정 없이 예술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무던히도 노력할 테고요. 그런 걱정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최종적으로는 예술로 타인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기도 하고요. 그들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낙타이길 바랍니다.
김남언 연출가의 연극은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마법과도 같은 약속을 통해 유일한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그 대화는 어찌보면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대화인 듯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전위적인 표현과 담담한 전달 그 사이에서 관객이 스스로 알아나가게끔 하는 낭만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한 진솔한 대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창작자로서의 고군분투가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나 창작자로서의 고충이 그를 초록빛 나라로 데려갈지 현재로선 불명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만, 끝없는 창작의 여정을 가장 즐거이 버틸 힘이 험난한 여정 안에 존재함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정의한 초록빛 나라가 유토피아나 율도국 같은 허무맹랑한 허상일지도 모르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을 쫓는 것이 창의이자 창작이니깐요. 사막과도 같은 환경 속 낙타처럼 걸어갈 창작자 김남언의 모습을 앞으로도 지켜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