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스트리밍 앱을 켜고 한참을 둘러보다 결국 어제 듣던 곡을 선택합니다. 익숙한 곡이 주는 매력이 있죠. 하지만 매번 같은 곡을 들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한때 취미란에 ‘음악 감상’을 적어내곤 했는데, 요즘 음악 감상은 지극히 수동적이라 취미의 영역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따금 새로운 곡을 접하는 순간은 인기 차트 혹은 취향 기반의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추천곡을 재생할 때뿐인데요. 알고리즘이 정교해지면서 오히려 취향이 깊어지는 대신 좁아지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에 좋은 음악이 얼마나 많은데, 한정된 플레이리스트에 갇혀 듣던 음악만 되풀이할 수 없죠. 이제 취미로써 음악 감상을 질리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디깅 노하우를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스스로 고유의 알고리즘을 찾아가는 능동적인 태도와 틀에 갇힌 취향을 넓힐 방법을 갖춘다면 귓가에 신선하고 좋은 음악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직접 꾸리는
능동적 음악 알고리즘
1) 취향은 피처링을 타고
스트리밍 앱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기반으로 추천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비슷한 취향의 색다른 음악을 접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피처링(featuring) 공략입니다. 음악적 표현의 폭을 넓히는 방식으로,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음악을 만드는 방식인 만큼 피처링 아티스트를 유심히 보면 서로 비슷한 음악 취향을 가졌을 확률이 높죠. 아티스트 A의 음악에 참여한 아티스트 B의 음악을 듣고, B의 음악에 참여한 C의 음악, 그리고 D. 피처링 파도타기를 하면서 비슷한 취향으로 연결된 여러 아티스트의 음악을 접해보는 겁니다. AI보단 느리지만 좀 더 다양한 장르로 확대될 수 있고, 사람을 중심으로 검색하다 보면 최애 아티스트를 발견하거나 은둔의 고수를 발굴할지도 모릅니다.
2) 나만의 단골 플레이리스트 채널
나만의 재생목록을 만들어 듣다가도, 감각적인 썸네일과 분위기 있는 음악을 성심성의껏 골라 놓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듣게 되면 집밥보다 맛있는 웰메이드 외식을 해버린 기분입니다. 그럼 단골집을 찾아보는 게 좋겠네요. 직접 차린 음악은 아니지만, 취향에 맞는 채널을 발견하면 마치 정기배송 받듯이 좋은 음악을 접할 수 있으니까요. 유튜브를 이용할 때는 조회수가 많은 영상을 무작정 틀어놓기보단 특정 장르, 컨셉, 취향이 느껴지는 채널을 찾아보길 추천합니다. 인기 있는 대중적인 채널만 검색된다면, 때론 ‘책 제목+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해 보는 등 색다른 접근을 해봐도 좋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서로 다른 사운드트랙을 만들어 올리는 채널들 사이에 분명 나만의 알고리즘으로 삼고 싶은 보물이 등장할 겁니다.
3) 발품 팔아 얻는 취향 맞춤 음악
간혹 카페나 바에서 대화 중간에 상대방에게 잠시 양해를 구할 때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들어 올려 기다리는 이 과정은 공간의 음악을 훔치는 디깅 방법입니다. 샤잠이나 스트리밍 앱을 사용하는, 누구나 알 법한 뻔한 방식일 겁니다. 다만 오프라인 공간에서 음악을 디깅할 땐 두 가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공간에 방문하기 전, 음악을 인식할 수 있는 앱을 제어 센터 혹은 바로 가기에 등록하고 스마트워치에서 단축키로 지정하는 등의 사전 준비를 해둡니다. 공간에 흐르는 음악을 잡으려면 순발력이 중요하니까요. 방문 후, 음악 선곡이 맘에 들었다면 해당 공간을 따로 저장해 언젠가 새로운 음악이 고플 때 방문해 보세요. 음악 디깅을 목적으로 공간을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경계를 허물고
확장되는 음악 세계
1) 시대와 국가 넘나들기 : Radiooooo
익숙한 것을 고르는 선곡 습관과 AI 알고리즘은 여러분을 특정 시공간에 가둬버릴 수 있습니다. 영미권 국가 출신이나 국내 아티스트의 음악을 제외하더라도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명곡이 존재하는데 말이죠. 물론 마음만 먹으면 시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 구석구석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Radiooooo’라는 음악 타임머신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음악의 지평을 열어주기 위해 음악 애호가들이 개발한 이 사이트(앱)는 세계 지도 곳곳을 탐험하듯이 클릭하며 다양한 국가의 음악을 감상할 수도, 상하단의 버튼을 클릭해 곡의 템포 및 시대를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중간중간 타이타닉호, 러버덕 등 위트 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오브제도 등장합니다. 이제 직접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와 국가를 넘나드는 디깅에 뛰어들어 보세요.
2) 장르의 장벽 허물기 : Every Noise at Once
평소 어떤 장르의 음악을 주로 듣나요? 선호하는 장르가 두세 가지에 그친다면 이제부터 새로운 장르에 귀를 맡겨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장르의 명칭을 잘 모른다면 더욱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본인의 음악 취향이 어떤 장르에 귀속되는지 알아보고, 편견 없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장르의 장벽을 허물고 음악 취향을 확장시킬 디깅 노하우는 바로 ‘Every Noise at Once’라는 웹사이트에 있습니다. 메인 화면에 펼쳐진 단어들은 모두 음악 장르인데요. 궁금한 장르를 클릭하면, 해당 장르의 음악 중 한 곡이 랜덤으로 재생됩니다. 커서를 대면 아티스트와 곡 정보가 나타나고, 화살표를 클릭하면 더 자세히 들어가 볼 수 있죠. 이번 기회에 장르의 신대륙을 발견한다면, 한동안 재생목록이 풍족해질 것입니다.
3) 낯설어도 평점 믿고 듣기 : Pitchfork & AOTY
낯선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유명 평론가의 평점을 볼 때가 있습니다. 4점 이상의 근사한 한 줄 평이 쓰여 있는 영화라면 믿고 본다는 마음으로 감상을 시작합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곡 제목은 물론 아티스트도, 장르도, 앨범 커버도 낯선 음악을 구태여 들어보는 마음이 생기려면, 믿을 수 있는 리뷰와 평점이 필요합니다. 그럼 음악에 잔뼈가 굵은 전문 에디터들의 비평이 쏟아지는 미디어 ‘Pitchfork’와 음악 전문 매체의 평점과 유저들의 평점을 내세워 보다 직관적으로 앨범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는 ‘AOTY(Album of the year)’에 방문하길 권해봅니다. 타인의 평점으로 음악을 걸러 들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낯선 음악을 접해보자는 취지에서 실패 확률이 적은 음악을 감상해 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은 분명합니다.
WEBSITE : Pitchfork
WEBSITE : AOTY
사실 음악은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스트리밍 앱이 인기 있는 곡, 맞춤형 추천곡 등을 제안할 테니까요. 그러나 이토록 편리한 환경에서조차 ‘요새 들을 음악이 없다’고 느꼈다면, 여러분은 능동적 음악 감상이 필요한 음악 애호가일 겁니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직접 디깅해보세요. 음악을 디깅하는 행위는 단순히 새롭고 좋은 음악을 찾아 듣는 걸 넘어, 음악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