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관계를
예술로 이어나가기

존재를 밝히고
관계를 넓히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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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어디선가 우연히 한 번쯤은 마주쳐봤을 법한 문장입니다. 사람은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주체인 만큼 혼자 살 수 없다는 이 글귀에 얼마나 동의하시나요? 우리는 이 사회에서 얽히고설킨, 무수히 많은 관계들을 맺으며 살아간다고 하죠. 어떤 예술 프로젝트들은 소외 계층과 같이 희미한 존재들을 전면으로 드러내며 그들을 인식하게 하고, 관계를 형성하게 하고, 연결이 지속되도록 합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나’와 그 속의 ‘너’를 ‘우리’로 변화하게 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새로운 이웃을 찾아가는
“이웃집 홈리스”

1) 돈 안받아요, 그림으로 받아요

서울시 후암동에 거주하고 있는 천근성 작가는 동네를 산책하며 자주 서울역을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노숙자분들과 자주 마주하였는데, 어느 겨울 한 노숙자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작가는 주거 취약 계층 이웃들과 함께하는 ”이웃집 홈리스”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됩니다.

천근성, “이웃집 홈리스”, 2023
천근성, “이웃집 홈리스”, 2023, 이미지 출처: 월간 SPACE 홈페이지
천근성, “이웃집 홈리스”, 2023
천근성, “이웃집 홈리스”, 2023, 이미지 출처: 예술로 가로지르기 홈페이지

천근성 작가는 서울역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고쳐주거나 쪽방, 텐트촌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분들의 부서진 집을 수리해 주며 이를 대가로 초상화를 받습니다. 수리를 마친 뒤, 노숙자분들은 ‘이웃’ 천근성 작가를 마주하며 작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작가의 수리 노동과 초상화를 교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관람객들이 ”이웃집 홈리스” 프로젝트에서 마주하게 되는 초상화 그림은 모두 천근성 작가가 그린 것이 아니라, 그의 ‘새로운 이웃’ 작가들의 작품이죠.

2) 서로의 수고로움을 교환하다

”이웃집 홈리스” 프로젝트의 초상화들은 대부분 찢어진 종이상자나 A4 이면지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지류에 그려지고, 도구 역시 사인펜이나 볼펜 등 흔한 필기구가 주로 사용됩니다. 평범한 그림들이 하나의 프로젝트 결과물로서 의미를 갖게 되는 이유는 초상화들이 집수리, 물건 수리 등 수리 노동과 교환된 예술 노동의 결괏값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프로젝트 수행 전, 노숙자들에게도 각자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로 노숙자와 교류하였던 경험은 그들이 존엄성을 지닌 한 개인임을 상기시켰죠. 그래서 ”이웃집 홈리스”는 대가 없는 도움이 아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수고로움을 교환하며 서로 관계를 맺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천근성, “이웃집 홈리스”, 2023
천근성, “이웃집 홈리스”, 2023, 이미지 출처: 예술로 가로지르기 홈페이지

작년 겨울, 천근성 작가는 경복궁역 내 메트로미술관에서 ≪옵드데라크 전시회≫에 참여하여 ”이웃집 홈리스”를 전시했습니다. 그는 물건이나 집을 수리하고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을 사진, 영상 등으로 아카이빙하고 완성된 초상화를 함께 설치해 ”이웃집 홈리스”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초상화를 그려주셨던 이웃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했습니다. 이로써 프로젝트로 이어진 이웃 관계는 더욱 견고해지고 “이웃집 홈리스”는 지속성과 연속성을 갖게 됩니다. 지금도 작가는 ”이웃집 홈리스” 프로젝트에 이어 온갖 만물을 팔며 그림을 대가로 받는 “이웃집 홈리스 : 노점상 편”과 같은 작업을 이어가며 더 많은 이웃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존재를 밝히는
“21세기 공장의 불빛”

1) 일하는 자들의 노래굿

믹스라이스는 문화예술활동의 새로운 모델을 연구하고자 만들어진 프로젝트 팀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남양주의 마석가구단지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목격하고 이주의 상황과 과정, 결과 등을 주로 다뤄왔습니다. 믹스라이스는 마석의 이주민들이 모여 만든 극단 ‘마석이주극장’의 연극 <불법인생>에 참여하며 공연 활동도 함께했는데, 2014년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으로 인해 극단 활동이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활동 방법에 고민을 하던 믹스라이스는 1978년에 나온 가수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기록 영상에서 다음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공장의 불빛’은 음악에 맞춰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와 춤으로 녹여낼 수 있도록 기획된 노래굿 활동이었고, 믹스라이스는 현대판 ‘공장의 불빛’을 기획합니다.

믹스라이스, "21세기 공장의 불빛", 2016
믹스라이스, “21세기 공장의 불빛”, 2016, 이미지 출처: 믹스라이스 홈페이지
믹스라이스, "21세기 공장의 불빛", 2016
믹스라이스, “21세기 공장의 불빛”, 2016, 이미지 출처: 믹스라이스 홈페이지
믹스라이스, “21세기 공장의 불빛”, 2016, 이미지 출처: 믹스라이스 홈페이지

‘뜨내기’, ‘손’, ‘만들어요’라는 총 세 곡의 노래가 담긴 “21세기 공장의 불빛”은 오늘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노동 현장에서의 문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 등을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본, 노래, 안무로 구성된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믹스라이스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청년, 이주 노동자를 영상 속 배우로 등장시켰으며, 이들의 평범한 노동, 일상, 삶을 내용으로 삼고 평범한 몸짓, 연기, 표정 등의 표현을 담아냈습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춤을 추는 노래굿 “21세기 공장의 불빛” 영상은 믹스라이스 공식 웹사이트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 우리 모두의 말과 움직임이 될 때까지

믹스라이스의 작업은 노동자들을 프로젝트, 퍼포먼스, 활동의 주체로 설정하는 것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들의 언어로 풀어내며 더욱 선명하게 노동자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되풀이되는 단순 작업을 표현하는 듯한 안무와 함께 들리는 노래 가사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근로 환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작 동작’, ‘근질근질’, ‘빨리빨리’, ‘착착’, 여기저기 다양하게 쏟아지는 요구들에 노동자들이 획일화된 안무로 응하고 있지만, 작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딱딱하게 팔만 좌우, 상하로 접었다 폈다 하는 안무를 거듭할수록 영상 속 배우들은 점차 고개를 숙입니다. 반복되는 고된 노동에 완전히 지쳐버린 노동자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문득 질문을 던집니다. ‘제품이 아닌 사람에게 깨끗할까?’, ‘일하는데 왜 죽어?’라는 질문은 마치 기계 부속품처럼 일하고 있지만, 사실은 ‘나’와 같은 ‘사람’인 그들의 존재를 상기시킵니다.

믹스라이스, “21세기 공장의 불빛”, 2016, 이미지 출처: 믹스라이스 홈페이지
믹스라이스, “21세기 공장의 불빛”, 2016, 이미지 출처: 믹스라이스 홈페이지

“21세기 공장의 불빛” 프로젝트는 20세기 후반 노동 현장의 문제를 현대에 맞춰 재해석하며 우리 사회 속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렇지만 분명 연결된 다양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가시화합니다. 영상 속 세 번째 노래인 ‘만들어요’는 특히 희망찬 가사로 구성되어 오늘날 노동자들이 꿈꾸는, 바라는 노동환경에 대해 얘기하죠. 이 말은 어디로 울려 퍼지는 걸까요? 이 노래를 듣는 우리가 ‘그대와 나’에 속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WEBSITE : 믹스라이스


어떤 예술은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게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해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함께 얘기하기도 하고, 고통과 즐거움을 나누기도 하며,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죠. 마치 우리가 문화예술을 함께 나누기 위해 ANTIEGG로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처럼요. 이따금 혼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 이 세상에서 아무런 존재가 아닌 것 같을 때, 예술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관계를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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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비

막연히 마음속에 자리 잡은 예술을 나누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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