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일상에서 찾은
지속의 비결

예술인의 삶을 지탱하는
루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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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기란 어렵습니다. 설령 나에게 이롭거나 꼭 필요한 일이라도 말이죠. 하지만 더 쉽게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루틴’입니다. 일상 속 루틴은 중요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해주어, 우리가 그 일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흔히 예술가는 자유 분방한 삶 속에서 영감을 얻고, 무질서한 하루를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이러한 예술가도 있습니다만, 사실 그들의 창의성은 잘 짜인 루틴에서 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주도적으로 하루를 운용해야 하는 직업 예술가들은 더욱 그러하죠. 오늘은 예술가들의 일상 루틴을 기록한 책 ⌜예술하는 습관⌟의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눈에 띄는 특징을 모아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창의성을 키우고 작품 활동을 지속했는지 살펴봅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1) 이사벨 아옌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다소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는 속담이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규칙적으로 일찍 일어나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몰입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영혼의 집⌟ 작가 이사벨 아옌데는 주말을 포함한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글을 썼습니다. 6시 혹은 그 전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만날 사람이 없어도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한 후 하이힐을 신고 ‘업무 태세’에 돌입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 했을 때에는 아침 9시에서 저녁 7시까지 글을 쓰는 빡빡한 일정을 유지했죠.

2) 엘리너 루스벨트

미국의 사회 운동가이자 작가이며, 최장기간 영부인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엘리너 루스벨트는 보통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순회 강연, 주간 라디오 방송, 서신 처리와 같은 영부인 업무부터 남편이 죽고 유엔 인권위원회 의장까지 역임한 그는 새벽 1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계속 일했습니다. 일과를 마친 밤 11시부터 침대에서 자서전을 썼다고 합니다.

3) 루이스 네벨슨

조각가 루이스 네벨슨은 다작으로 유명한 예술가입니다. 자신의 자서전에서 스스로 ‘시간을 잘 활용한다’고 자부할 정도였는데요. 아침 6시에 일어나 잠 잘 때나 일할 때 방해되지 않는 면 옷을 입고 스튜디오에 가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죠. 네벨슨은 한때 연간 60여 개의 조각품을 완성했고, 1950년대 후반에는 대략 900개에 달하는 조각품들이 네벨슨의 집을 가득 채울 정도였습니다. 그는 점점 더 작품 활동에 헌신하고 만년에 명성을 얻게 됩니다.

루이스 네벨슨의 작업실은 모든 공간이 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루이스 네벨슨의 작업실은 모든 공간이 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지 출처: Elysian

정확한 시간표대로 살아가기

오차 없는 시간표로 매일을 정확하게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바로 쿠사마 야요이와 엘사 스키아파렐리인데요. 이들은 작품에 몰두하느라 미뤄진 잠 시간을 제외하고는 철저한 시간표에 따른 삶을 살아갔습니다.

1) 쿠사마 야요이

망과 점을 표현한 예술 작품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는 1977년 도쿄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해서 지금까지도 그곳에 지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정해진 일정을 지키는 병원의 장점(?)을 이용하는 것인데요.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혈액 검사를 받고, 매일 아침 10시에 병원 맞은편의 스튜디오에 출근합니다. 올해 95세인 야요이는 새벽 3시까지 일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데요. 정신병원에 살고 있는 그의 선택은 투쟁적으로 작품에 전념하는 그의 모습과 궤를 같이 합니다.

2) 엘라 스키아파렐리

코코샤넬과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히는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레몬 주스와 물,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신문을 읽고, 사적인 서신들을 살펴보고, 전화를 걸고, 요리사에게 그날의 메뉴를 전달합니다. 항상 정각 10시에 사무실에 도착했던 그는 세계 어디에 가든 초 단위까지도 정확하게 시간을 지켰습니다. ‘항상 늦지 않게 5분 일찍’이 엘사의 좌우명이었다고 합니다.

쿠사마 야요이가 그의 작업실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쿠사마 야요이가 그의 작업실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Alegandra de Argos

입고 먹는 일은 최대한 간소하게

1) 페타 코인

의식주를 결정하는 일 조차 어떤 예술가에겐 에너지 낭비로 여겨집니다. 조각가이자 설치예술가인 페타 코인은 평일 아침에는 오트밀과 딸기, 점심에는 샐러드, 저녁에는 미소국을 먹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상도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매년 똑같은 터틀넥 셔츠 다섯 벌, 검정바지 다섯 벌, 검정 양말을 입었다고 합니다.

2) 안드레아 지텔

미국의 현대 미술 작가인 안드레아 지텔도 계절별로 ‘유니폼’ 을 입습니다. 가능한 한 의사결정 과정을 줄이기 위함인데요. 계절 별로 편안하게 입을 수 있고, 겉보기에도 괜찮아 보이는 옷을 골라서 유니폼으로 입었다고 하죠.

3) 에밀리 포스트

미국의 사회 예절 바이블 ⌜에티켓⌟을 출간한 에밀리 포스트는 외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식사는 15분 이내에 마친다는 자신의 철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먹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면 일할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식사를 준비하면 물과 빵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4) 에디스 헤드

한편 에디스 헤드는 비즈니스 전략 중 하나로 흑백의 옷차림을 고수했습니다. 그는 60년간 1000편 이상의 영화 의상을 디자인한 디자이너였는데요. 그는 배우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길 원했습니다. 영화 제작사 파라마운트에서 일할 시절,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인의 역할을 알고 화려한 옷을 입고 싶은 욕망을 덜어낸 것이죠.

에디스 헤드는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현기증> 등 1,000여편의 영화에 의상을 디자인했다. 아카데미를 8개 수상하며, 가장 많이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여성이다.
에디스 헤드는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현기증> 등 1,000여편의 영화에 의상을 디자인했다. 아카데미를 8개 수상하며, 가장 많이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여성이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사색하는 은둔자

1) 버지니아 울프

20세기 영국 문학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이자 페미니즘 선구자였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내면에 ‘자기만의 방’이 있었던 작가입니다. 그는 대표적인 몽상가였는데요. 이런 몽상 상태로 빠져 들기 위해 걷기와 목욕을 했습니다. 이때 쉬지 않고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했습니다. 마치 그 안에 두 세명이 더 있는 것처럼 자신과 대화했다고고 알려져 있죠. 그리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보다 떠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무례한 집주인’이었다고 합니다.

2) 로메인 브록스

파리와 카프리에서 활동했던 초상 화가 로메인 브룩스는 자신의 창작 과정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난 몇 달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나 자신을 가둬놓고, 슬픈 회색빛 내 비전에 형상을 부여했다.” 작가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와 50년이 넘게 연인 관계이었음에도 두 사람은 가끔씩만 같이 지붕 아래에서 지냈습니다. 브룩스는 혼자 있을 때 자신의 삶과 예술 작품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고, 예술가의 개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같은 집에서, 주로 같은 침실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열정적인 친밀감을 만끽하는 게 언제나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 같다”고 덧붙였죠.

3) 마거릿 버크화이트

잡지 ⌜라이프⌟의 창간호 표지사진을 찍은 사진작가이자 작가였던 마거릿 버크화이트의 작업 시간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방해받지 않는 오랜 고독의 기간’이었습니다. 이는 글을 쓸 때 더욱 중요했는데요. 그는 작품에 집중하고자 오롯한 고독에 빠지는 자신의 습성이 주변인에게 상처를 줄까 걱정이었죠. 동료 사진작가 니나 린은 사진작가 버크화이트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버크화이트를 처음 만났을 때 점심을 같이할 수 있는지 물어봤죠. 그때 책을 쓰고 있어서 몇 년 동안은 점심을 같이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버지니아 울프는 산책을 하며 사색을 하는 것을 즐겼다. 런던에 살 당시 산책을 하면서 도시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미묘한 부분들까지 알아채는 것을 기록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버지니아 울프는 산책을 하며 사색을 하는 것을 즐겼다. 런던에 살 당시 산책을 하면서 도시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미묘한 부분들까지 알아채는 것을 기록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The London Scene’, 이미지 출처: Amazon

틈만 나면 예술하기

1) 엘리스 닐

어떤 예술가들은 짬을 내는 게 루틴이 되었습니다. 가정과 예술을 치열하게 병행했기 때문인데요. 초상화가 앨리스 닐은 정부 보조금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꾸준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밤과 학교에 갔을 때가 그에게 허락된 작품 활동 시간이었는데요. 하지만 그림을 중단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국 작가 패니 트롤럽도 가정 경제가 무너져 아이들과 남편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사람들이 깨기도 전에 글쓰기를 끝냈다고 하죠.

2) 해리엇 비처 스토

미국 노예제도의 실상을 묘사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는 열 세 명의 아이를 길렀습니다. 신학 교수인 스토의 남편은 아내의 글쓰기를 격려해주었고, 글 쓸 방을 마련해주었지만 아내가 집안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기르기를 바랬죠. 그의 삶은 올케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적어도 열두 번은 글쓰기를 중단했어요. 한 번은 생선 장수한테서 생선을 사려고, 또 한번은 출판 업자를 만나려고, 그 다음에는 아이를 돌보려고 글쓰기를 멈췄죠. 그러고는 저녁식사로 차우더 수프를 끓이려고 부엌에 들어갔어요.’ 이렇게 끝없는 집안일에도 스토는 매일 세 시간씩 글을 썼다고 합니다.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가족 사진. 해리엇 비처 스토 가족은 아이들은 13명이었다.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가족 사진. 해리엇 비처 스토 가족은 아이들은 13명이었다. 이미지 출처 Harriet Beecher Stowe House

루틴의 어원은 ‘부수다(to break)’ 입니다. 이는 루틴이 기존의 관성을 깨고 삶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소개 드린 예술가들 역시 일상의 루틴을 통해 규칙적으로 작업하여 자신의 재능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영감의 순간을 성실하게 ‘찾아 간’ 것이죠. 거창한 미래 계획보다는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고, 매일의 노력이 모여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일상에도 의미 있는 루틴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은 시작일지라도, 그것이 여러분의 한계를 깨트리는 첫 걸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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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재

해상도 높게 사랑하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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