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리 오브 러브’에서 찾는
진정한 균형의 의미

완벽한 삶
균형이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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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균형에 관심이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 규칙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추구하는 갓생 같은 키워드 속에도 균형이 숨어있다. 추구하는 방향이나 목적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그 안에 숨겨진 본질은 같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상태를 이상적으로 보는 것이다.

기실 우리가 이상향으로 삼는 이들도 균형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그들은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었으나 이에 집착하지 않고, 지나친 감정의 증폭을 느끼거나 부정적인 에너지에 몰두하지도 않는다. 이성적이고 긍정적이며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는다. 반면 ‘균형’을 잃어버린 이들에 대한 시선은 냉정에 가깝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고 자신을 잘 컨트롤해야지”라는 말들이 이러한 사회적 시선과 심리를 대변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균형에 몰두하게 된다. 그것만이 옳은 길 같이도 느껴진다.

하지만 때로는 의문이 든다. 부정적인 감정, 일상의 파괴 등 여러 형태의 불균형은 그저 잘못된 것일까? 우리가 찾는 균형이란 결국 무엇일까? 우리 삶에 존재하는 불균형과 균형의 의미를 영화 <밸리 오브 러브>와 함께 찾아보고자 한다.


세 사람 사이엔 없는 것,
<밸리 오브 러브>

영화 <밸리 오브 러브>(Valley of Love, 2015)에는 이혼한 부부 이자벨과 제라르가 등장한다. 오래전에 이혼한 두 사람은 오랫동안 왕래하지 않고, 그사이에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아들 마이클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마이클은 죽기 전 두 사람에게 “두 분이 같이 있으면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알쏭달쏭한 메시지를 담은 유언 같은 편지를 남긴다. 아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데스밸리를 여행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그들이 지키고 싶던 삶의 균형이 깨졌음을 엿볼 수 있다.

첫 번째 균형의 상실, 부모와 아들

영화 <밸리 오브 러브>
이미지 출처: 영화 <밸리 오브 러브>(Valley of Love, 2015)

첫 번째 균형의 상실은 부모와 아들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복잡하지만, 양육과 자립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축약된다. 이상적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상호 존중과 교감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과 관심으로 양육하고, 자식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만,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자벨과 제라르, 마이클의 관계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소통의 부재다. 부부가 이혼한 후 마이클은 7살까지 어머니와 살고, 이후에는 아버지에게 보내진다. 이후 제라르가 마이클을 기숙학교로 보내며 세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된다. 데스밸리를 돌아보던 중 이자벨은 “자기가 낳은 자식을 어떻게 안 볼 수 있을까?”라고 자책하고, 제라르는 마이클의 친구조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마이클이 부모와 만나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제라르는 말하지만, 세 사람 사이에는 이미 모든 애정과 관심이 균형을 잃고 망가졌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아들의 죽음까지도 타인에게서 전해 듣는다. 틈틈이 자신의 또 다른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거나, 딸들의 소식을 전달하는 두 사람 의 현재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준다.

두 번째 균형의 상실, 이자벨과 제라르

오래 전에 이혼한 이자벨과 제라르는 겉으로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관계처럼 보인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큰소리로 다투는 대신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평화롭게 보였던 관계는 여행을 거듭할수록 점차 변한다.

처음부터 아들의 요구에 따라 데스밸리를 여행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던 제라르는 약속했던 일주일을 채우지 않겠다고 선언해 이자벨의 분노를 산다. 이자벨은 제라르와 다투던 중 “나쁜 놈”, “알코올 중독자”라며 거침없이 힐난한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직접적인 이혼의 원인이 드러나지 않지만, 이러한 모습에서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오래된 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호 존중하며 서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것을 많은 이들이 이상적인 부부로 이야기한다. 이자벨은 “우리도 마찬가지야. 각자 살기 바쁘니까.”라는 말로 자신들의 과거를 축약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교류도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모습에서 균열만 남았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균형의 상실, 삶과 죽음

이미지 출처: 영화 <밸리 오브 러브>(Valley of Love, 2015)

아들 마이클의 죽음을 뒤따르는 만큼, 영화는 삶과 죽음의 경계와 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이자벨은 아들의 죽음에 대해 “내 잘못인가?” 묻고, 제라르는 “우리가 낳았으니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고 답한다. 이성을 찾으려 하지만 아들의 죽음 앞에서 두 사람이 얼마나 자책하고 괴로워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잃은 이자벨은 좀처럼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라 믿는 이자벨의 바람처럼 영화 또한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를 흐릿하게 연출한다. 아들 마이클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거나 보여주지 않아, 관객들까지 ‘죽음’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주인공들이 겪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이자벨은 혼자 호텔 방에 있던 중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소리를 지른다. 놀라 달려온 제라르에게 이자벨은 누군가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고 말하며 그것이 마이클일 것이라 확신하지만, 제라르는 이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날 이자벨의 발목에 붉은 자국이 남는 둥, 이자벨이 겪은 일이 단순한 환상이나 착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두 사람이 겪은 일은 마이클이 살아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실의 아픔에 무너진 두 사람이 여전히 아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바라고,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잊고 싶어하는 갈망을 드러낸다.


우리가 찾는 균형이라는 환상

이미지 출처: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5)

<밸리 오브 러브>의 두 사람이 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균형이 무너졌음을 확인하는 것처럼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5)은 기억 삭제라는 장치를 통해 균형을 재조명한다.

오랜 연인이었던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를 상처 입히며 이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고통을 잊기 위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게 된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물론, 추억까지 사라지는데 조엘은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을 유지하기 위해 기억 삭제를 멈추려 한다. 하지만 조엘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두 사람은 서로를 잊게 된다. 기억을 잃었지만 두 사람은 다시 사랑에 빠지고, 기억을 지웠던 과정까지 떠올리게 된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기억 삭제는 보편화된 것으로, 상처, 단절 등 여러 부정적인 상황과 이로 인한 감정의 불균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다시 관계를 이어가기로 결정하며 과거의 고통까지 받아들인다. 이는 삶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불균형의 반복과 갈등 사이, 우리가 찾던 균형이라는 이상이 진정 무엇인가 되묻게 한다.

‘진짜’ 균형을 찾는 방법

이미지 출처: 영화 <밸리 오브 러브>(Valley of Love, 2015)

제라르와 이자벨은 아들의 요구대로 데스밸리를 여행하던 중, 아들의 죽음이 현실임을 알게된다. 제라르는 마이클의 환상을 만나고 “우리를 용서한다고 말했다”며 울음을 터트린다. 두 사람이 아들의 죽음과 깊은 깊은 상실감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순간, 완전히 끊어졌던 부모와의 연을 다시 잇고자 했던 마이클의 마지막 부탁이 이행되고 깨어진 세 사람 사이의 균형이 맞춰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찾고자 했던 삶의 균형은 아픔을 외면하고 억지로 만들어낼 때가 아니라, 모든 상실과 불균형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회복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여러 상처를 입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성을 잃거나,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그럴 때 스스로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우리 삶은 억지로 꾸며낼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불쾌한 감정과 상황을 잘라내면 우리의 삶은 완전한 균형을 찾는 것일까? 그 감정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우리는 아픔을 느끼기 때문에 행복도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것을 수없이 이야기한다. 상실은 치유의 시작이 되고, 개인은 다시 우리가 된다고. 이것이 우리가 인생의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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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

예술, 사람, 그리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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