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의 본질에서 찾는
진짜 워라밸

워라밸 신화
정말 행복의 열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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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부터 불어온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 이하 워라밸)의 바람은 직장 문화를 크게 바꿔놓았다. 워라밸은 직업 선택과 행복의 기준이 되었고, 기업들의 근무 환경과 복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이들은 진짜 행복(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을 찾기 위해 칼퇴 후 ‘진정한 나’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워라밸을 추구하는 것이 노동자로써 최선의 선택지일까? 또한 삶 전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금 워라밸을 추구하는 것을 진짜 워라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아가 일과 삶은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일까? 불안정한 고용 환경과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일의 의미와 가치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워라밸의 개념을 재정의할 시점이다.


우리는 왜 워라밸을 지킬까?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은 1970년대 영국 여성 해방 운동에서 등장했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증가하면서 직장과 가사 병행으로 인한 노동 강도 증가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점차 모든 노동자에게 확대 적용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사회적으로 주목받으며 정책화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또한 2017년 고용노동부에서 ‘일, 가정 양립과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무 혁신 10대 제안’을 통해 정시 퇴근, 퇴근 후 업무 연락 자제, 연가 사용 활성화 같은 정책을 발표했다. 2018년 7월,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며 직장인의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되었다.

MZ세대들은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보장되는 기업’(36.6%)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월급과 성과보상체계’, ‘정년보장’, ‘기업과 개인의 발전가능성’, ‘수평적인 기업 문화’, ‘사회적 기여도’ 가 그 뒤를 이었다. 이미지 출처: 전국경제인연합회

그렇다면 지금 노동 세대들은 워라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23년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MZ세대 827명을 대상으로 한 ‘기업(인) 인식조사’에 따르면 직장 선택 기준 중 ‘워라밸 보장’이 36.6%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들이 워라밸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전과 다르다. MZ세대는 부동산 영끌에 나설만큼 돈과 성공에 관심이 많은 세대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이동이 어려운 현재의 사회 구조가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지금을 즐기는 삶에 집중하게 만든다. 한국 딜로이트그룹이 2021년 발표한 ‘2021 밀레니얼과 Z세대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한국 밀레니얼 세대의 73%, Z세대의 76%가 ‘사회 전반에서 부와 소득이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약 45%)는 그러한 불평등의 주요 이유를 ‘기울어진 운동장’, 즉 부유층에 호의적인 법, 규제, 정책에 있다고 지목했다. 이제 MZ 세대의 워라밸 사수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현재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에 가깝다.


워라밸의 역설

1) 불균형에서 탄생하는 성장 방정식

일과 패션과 삶을 그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 안드리아(앤 해서웨이 역)는 미란다(메릴 스트립 역)의 비서로,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워라밸 없이 일에 몰두한다. 이미지 출처: ‘The Devil Wears Prada’, 2006

워라밸을 철저히 지키는 삶이 노동자로써 행복해지는 최선의 선택일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일 때문에 애인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는 안드리아의 걱정에 나이젤은 ’일을 잘 하고 있다는 의미‘라 말한다(That’s what happens when you start doing well at work). 다소 거칠긴 하나, 나이젤의 말처럼 성과나 성장은 오롯이 몰입하는 삶을 살아갈 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많은 기업가들은 삶 따위는 없다는 듯 일에 자신을 기꺼이 갈아 넣는다. 일론 머스크는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트위터를 인수한 후에는 “고강도 업무가 싫다면 트위터를 나가라”며 대량 해고에 나섰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우스갯 소리로 “영화를 볼 때도 일을 생각하고, 일할 때도 일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스티븐 잡스도, 마윈도 모두 일 중독자로 유명하다.

소셜미디어 트위터를 인수한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잔류한 직원들에게 ‘고강도로 장시간 일하기 싫다면 회사를 떠나라’는 사내 메일을 보냈다. 이미지 출처: 로이터

그렇다면 이들은 왜 워라밸을 지키지 않을까? 그들은 삶에서 얻는 행복을 얻고 싶지 않은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이들은 일 자체에서 행복을 얻고 그것을 삶의 동력으로 가져간다. 이런 삶의 패턴을 ‘워라하’(work-life harmony), ‘워라블’(work-life blending),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이라고 한다. 이는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거나 혼합된 삶을 의미한다. 워라밸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일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와 성장, 가족, 공동체, 여가와 같은 가치와 연결해서 사고한다. 워라밸은 시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 개념은 가치를 중시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역시 ‘워라하’를 주장하며 일과 삶은 실제로는 하나의 원(circle)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 워라밸을 지킨다는 착각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퇴직 희망 연령은 60세… 실제 퇴직은 53세 예상”

흔히 ‘워라밸’을 이야기할 때 ‘9 to 6’ 근무 시간을 지키는 일상적인 균형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워크 앤 ‘라이프’의 의미를 고려할 때 노년기를 포함한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실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취업플랫폼 인크루트가 2023년 20∼40대 직장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실제 퇴직할 것으로 예상하는 나이’ 는 평균 53.1세로, 법정 정년인 60세보다 7년 가량 낮았다. 많은 응답자가 “회사 분위기상 정년까지 버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스스로 퇴직하고 싶은 나이’는 평균 60세로 법정 정년과 동일했다. 이는 우리의 노동 의지와 무관하게 실제 경제활동 기간이 전체 인생의 약 1/4에 불과함을 시사한다. 젊은 시절 집중적인 경력 개발과 성장이 오히려 노년의 여유로운 삶을 위한 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점차 낮아지는 노동 소득과 폭발적인 물가 상승으로 젊은 시절의 소득만으로 노년까지 생활하기 어렵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것은 실제 노동 가능 기간은 짧은 반면,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3.6 세로, 예상 퇴직 나이인 53.1세와 비교하면 퇴직 후 약 30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워라밸은 일일 시간 배분이 아닌, 인생 전체의 균형을 고려해야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더 넓고 깊은 시각,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전략적 접근이다.


이제는 새로운
워라밸 개념이 필요하다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난 여기(사무실)에서 이 세상의 어떤 88세보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출처 스트레이트뉴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를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현재 워라밸을 추구하는 이들, 특히 MZ세대는 단순히 여가 시간을 늘리려 워라밸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오르지 않는 임금으로 물가상승을 감당하기 힘들며 무엇보다 정년보장이 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비자발적 일중독도 많아 번아웃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직장을 내려놓자니 삶이 녹록지 않다. 생활비도 필요하고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첨단산업의 이기를 맛보며 중장년층에 비해 많은 것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노동 환경에 대한 불안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세대이다.

따라서 더욱 워라밸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나의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일로 느껴지지 않는 일을 찾는 것이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것에 몰입할 때 우리는 노동에서 얻는 경제적 보상보다 더 큰 행복과 만족감을 맛 볼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워라밸을 해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풍요롭고 균형 잡힌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진정한 워라밸은 시간의 균형이 아닌 삶의 만족도에 있으며, 각자가 자신만의 워라밸을 재정의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칼퇴를 외치며 서둘러 회사를 빠져나온다. 만원 지하철에서 밀린 연락을 처리하고, 집에 와서 넷플릭스를 보며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문득 의문이 든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워라밸일까?’ 워라밸의 본질은 단순한 시간 분배가 아니다. 일과 삶의 조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 어떤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을지, 자신에게 이상적인 일과 삶의 균형은 어떤 모습일지. 당신의 진짜 워라밸은 무엇인가? 그 답을 찾는 여정이 곧 행복한 노동과 삶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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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재

해상도 높게 사랑하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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