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이한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질 때, 조금은 질리는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지는 않으신가요? 매일 똑같은 버스를 타고, 똑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공간에 들어서서 반복되는 일을 하거나 공부하곤 하죠. 밀려오는 따분함과 지루함, 지겨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특별함과 새로움을 찾아 나서곤 하지만, 의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고 일상을 영위하게 하는 힘은 작고 우연한 만남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권태로움’이 느껴질 때, 익숙한 풍경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시선으로 우연한 만남을 찾아내는 화가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길가에서 만난 식물에게서
위로를 읽는 김연우 작가
화사한 파스텔톤 색감이 가득한 화면에서는 봄의 정취가 느껴지기도 하고, 한여름의 따사로운 햇볕이나 시원한 가을 하늘이 엿보이는 듯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따뜻함과 화사함, 포근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듯한 이 그림들이 정갈하게 정리된 꽃을 담은 화병, 반짝이는 과일, 깨끗한 접시 등을 그리는 일반적인 정물화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시나요?
김연우 작가의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면, 화분들이 정돈되지 않은 모습입니다. 깨끗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화병에 담겨 있는 화려한 꽃송이들이나 아주 잘 가꾸어진 봄날의 어여쁜 정원과 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그림 속 식물들은 수형이 곧지 않고 제멋대로 자라나고 있는 모양새죠. 어떤 화분은 무성하게 자란 잡초 위에 놓여있기도 하고, 심지어 기울어져 놓인 듯하기도 합니다. 사실, 김연우 작가의 작품 속 식물과 화분들은 버려지거나 방치된 것들입니다. 그는 우리가 한 번쯤은 길가에서 마주쳤을 법한 버려진 식물들에게 조금 더 눈길을 주고, 이들에게서 위로를 찾아냅니다.
유년 시절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매번 새로운 공간이나 관계에 적응해야 했던 작가는 스스로가 새로운 환경에 어울리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을 그림에 투영하며 주류공간에서 배제되어 버려지고 방치된 식물과 화분에 주목했습니다. 본래 화분에 담긴 식물은 집 안에서 키우거나 집 앞에 내놓고 잘 가꾸는 대상이죠. 그런데, 집 안에서 쫓겨나고 주인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난 식물들은 주류에서 배제된 존재가 됩니다. 주류에 어울리지 못하는 식물들은 길가에서 겉도는 사물이 되죠.
그런데, 김연우 작가는 이들을 생기 없거나 죽어가는 식물로 그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바깥 자리 어딘가에서 그 나름대로 고요하게 생명을 이어갑니다. 주류가 아닌 공간에서도, 배제되어서도 식물 그 자체로 존재하며 ‘주류가 아니어도 괜찮아’, ‘겉돌아도 괜찮아’하는 위로를 건네죠. 어디선가 우연히 만날지도 모르는 식물들이, 김연우 작가의 작품을 만난 우리에게 이제는 작은 위로가 되겠죠.
빌딩 벽면에서 오늘을 발견하는
염수윤 작가
필자는 “붓질, 나의 연구”를 처음 마주했을 때, 색감과 물감의 질감, 붓질 등이 내는 효과를 실험하거나 다양한 색면으로 미적인 즐거움을 전달하는 추상화인 줄 알았습니다. ‘작가가 실험적으로 추상화를 시도했구나’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붓질, 나의 연구’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빌딩의 벽면을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그림은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감이 가득한 화면만으로도 보는 이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효과를 내곤 하죠. 염수윤 작가는 일상적인 장면들을 포착해 분수 연작이나 강, 하늘 등을 그린 풍경화에서 선명한 색감을 연출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아름다운 색감만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벽면 블록 한 칸 한 칸에는 알록달록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창문 역시 선명한 빛을 반사하고 있어 사각형의 경계가 뚜렷합니다. 규칙적으로 사각형이 나열된 모습에서는 통일감마저 느껴지는 듯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각 칸의 붓질 방향, 색, 질감 등이 모두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가는 빌딩 벽면이라는 풍경화적인 요소에 추상화적 연출을 시도해 일상적 장면을 새롭게 그려냈습니다.
물감이 쌓이며 연출되는 시각적 질감, 덧바르며 달라지는 물감의 두께와 색감, 붓을 갖다 대는 방법에 따라 달리 찍히는 붓질의 면적 또는 점의 크기.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며 작가는 사실적인 풍경을 묘사하는 동시에 추상화적인 시도와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작가는 사각형 한 칸 한 칸 다르게 연출하며 삶의 희로애락과 하루하루가 다른 ‘오늘’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창에 비친 월화수목금토일”과 “emotion in windows”도 짧은 순간이 모여 하루, 한 달, 일 년, 긴 시간이 축적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시끌벅적한 도심에서 염수윤 작가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특별한 것 하나 없는 건물 벽면에서 하루하루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을 마주했죠.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하늘이 비치는 창문, 우뚝 선 높은 건물.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하늘 풍경에서 염수윤 작가처럼 새로운 발견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익숙함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타인의 시선에 기대어 본다면,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올 수도 있죠. 어쩌면, 우연히 마주하는 장면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두 작가의 시선이 여러분의 일상을 새롭게 바꾸고 환기하는 우연한 만남으로 데려다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