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를 만드는 사람에게 소재는 제약이 되기도,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투명하거나, 불투명하거나, 강도가 높거나, 경도가 높거나, 온도에 강하거나, 취약하거나, 가공이 쉽거나, 어렵거나. 소재의 다채로운 특성은 가구의 제작과 디자인에 모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소재의 물성은 가구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되곤 합니다. ‘레어로우’에는 트렌디한 스틸의 이미지가, ‘스탠다드에이’에는 따뜻하고 묵직한 나무의 이미지가 떠오르죠. 가구 안에는 소재를 탐구하고, 소재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브랜드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그 브랜드는 어떻게 소재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을까요? 시작은 우연하더라도, 인연은 깊습니다. 소재와의 우연한 만남이 브랜드를 생각지 못한 길로 안내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만나볼 4곳의 국내 가구 브랜드는 각각 나무, 철, 아크릴, 종이로부터 영감을 얻어 가구를 디자인합니다. 네 브랜드의 히스토리를 통해 소재의 활용에 대한 무한한 상상과 애정을 발견해보세요.
목재와 스탠다드에이
Standard-a
가구 브랜드 스탠다드에이는 스스로를 나무가 지닌 아름다움, 온기, 질감을 좋아하는 팀이라고 소개합니다. 목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소개에서 예감할 수 있듯이, 나무를 활용한 가구에 있어 폭넓은 스펙트럼의 확장성을 보여줍니다. 주거 공간의 생활 가구뿐만 아니라, 오피스, 교회, 호텔에 이르기까지 여러 공간 프로젝트에 필요한 목재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합니다. 브랜드의 시작부터 이런 스케일을 예상하진 않았다고 하는데요. 우연한 기회로 나무라는 소재를 발견한 세 사람이 스탠다드에이를 만들었습니다. 목조형 및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류윤하 대표는 오래 지속되는 디자인을 찾아 목재 가구를 만나게 되었고, 같은 전공의 안민규 대표, 취미로 목공을 시작한 이학준 대표가 합류해 브랜드로까지 나아갔으니 말입니다. 공장 발주를 위해 마련한 작은 샘플실은 디자인과 설계, 제작을 아우르는 목가구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목재 가구는 핸드 크래프트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데요. 스탠다드에이의 구성원들은 가구 디자이너면서 동시에 목수이기도 합니다. 독특한 점은 구성원들끼리 때때로 판매가 아닌, 재미에 중점을 둔 작업물을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를 ‘취미생활 프로젝트‘라고 소개하는데요. 자투리 목재를 모아 새로운 용도를 탄생시키기도 하고, 탁구, 스테이셔너리, 고무동력기 등 예측 불가한 주제로 목재 작업물을 만듭니다. 공장의 대량생산을 벗어나 사람의 손길로 완성된 목재 가구는 만드는 사람의 성격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가구를 대하는 진지한 열정에 곁들인 유연한 위트는 스탠다드에이의 문화와 제품에서 동시에 찾아볼 수 있습니다.
WEBSITE : 스탠다드에이
INSTAGRAM : @standard.a_furniture
철재와 레어로우
Rareraw
레어로우라는 브랜드 이름에는 철재의 인상이 강하게 녹아 있습니다. 드물다는 뜻의 레어Rare와 날 것 그대로를 뜻하는 로우Raw를 합쳐 만들어진 이름이죠. 날 것 같은 철의 이미지를 브랜드의 얼굴로 삼은 레어로우는 철제 가구 실험을 지속해왔습니다. 가구를 통해 단단하고, 거친 철재의 매력을 극대화하기도, 차갑고 직선적인 철재의 이미지를 유연하고, 귀여운 것으로 전복시키기도 합니다.
어떤 계기로 레어로우는 철재와 만나게 되었을까요? 브랜드를 만든 양윤선 대표는 공간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 시절, 우연히 아버지의 철제 공장에서 철의 물성을 가진 사물이 만들어지는 생생한 과정을 보고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철물 제조 기업 심플라인은 철제 가구 브랜드 레어로우로 이어졌습니다. 우연히 만난 철제 공장의 광경이 철을 전문으로 다루는 가구 브랜드의 탄생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레어로우의 가구에는 철재의 물성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엿보입니다. 얇고, 직선적이고, 샤프한 형태가 철재 가구에 기대하는 점을 충족시켜주는 한편으로, 쉽게 휘어지는 철의 성질을 이용해 둥글고 유연한 형태를 만들기도 합니다. 철재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다양한 브랜드, 스튜디오와의 콜라보를 통해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레어로우의 행보를 볼 때, 소재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브랜드를 더 멀리 뻗어나가게 한다는 점을 확신하게 됩니다.
WEBSITE : 레어로우
INSTAGRAM : @rareraw_official
아크릴과 빌드웰러
Builddweller
다양한 투명도의 아크릴이 스틸 하드웨어와 조합된 모듈 가구는 빌드웰러의 대표적인 가구 라인으로 떠올리는 형태입니다. 다만, 빌드웰러의 출발점은 특정한 형태나 소재보다는 관점과 아이디어에 있습니다. 건축을 전공한 김유석, 정우열 두 대표는 애초 가구보다 공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요. 많은 자원을 들여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건축 사이클에 회의감을 느끼고, 지속가능한 공간의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가장 처음 찾은 솔루션은 볼트와 너트로 조립과 해체, 확장과 축소가 용이한 모듈 구조의 가구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공간을 전부 뜯어 고치지 않아도 모듈 가구만으로 충분한 변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때 아크릴은 연결부의 하드웨어를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빌드웰러가 지향하는 모듈 개념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합니다. 게다가 아크릴은 가볍고, 견고하며, 유리처럼 파편화되어 깨지지도 않으니 안전합니다. 다양한 컬러와 투명도로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자원으로 공간에 변화를 주기에도 적합합니다.
이제는 아크릴의 컬러와 질감이 소비자가 빌드웰러를 선택하는 심미적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요. 구조적이고 효율적인 소재 선택이 미적 아이덴티티가 되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WEBSITE : 빌드웰러
INSTAGRAM : @builddweller
종이와 툭
TUUK
친환경적인 가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소재를 만난 브랜드도 있습니다. 가구 브랜드 툭의 두 대표, 조현우와 강형석은 가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파괴되는 과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생산과정에서의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골몰했습니다. 그렇게 발견한 소재가 종이였는데요. 고강도 골판지를 연구해 가구로 제작하며, 생산, 조립, 분리배출까지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는 가구 브랜드, 툭이 탄생했습니다.
툭은 특히 1인 가구를 위한 가구로 주목받습니다. 가볍고, 저렴하고, 접착제 없이 종이 부품만으로 조립이 가능하고, 해체해 이동하거나, 버리는 과정까지 쉽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짧은 기간을 두고 집을 옮겨야 하는 데다가, 주어진 주거 공간의 면적이 좁은 1인 가구에게 툭은 폭넓은 가구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좁은 공간에도 배치할 수 있는 작은 사이즈부터 가구를 제작하고, 종이다운 개성의 크라프트 컬러를 비롯해 선명하고, 채도 높은 컬러 옵션을 제공하기 때문이죠. 제한된 공간에서 디자인 가구를 꿈꾸는 1인 가구에게 툭은 훌륭한 대안이 되어줍니다. 일반적으로 가구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종이는 툭의 지난한 연구와 통통 튀는 디자인을 거쳐 새로운 세대에게 사랑받는 매력적인 소재로 거듭납니다.
친환경 가구부터 1인 가구를 위한 솔루션까지, 툭이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핵심에는 종이의 속성이 있습니다. 소재는 이토록 가구 브랜드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발전합니다.
WEBSITE : 툭
INSTAGRAM : @tuuk.kr
소재를 통해 가구를 바라보는 과정은 어땠나요?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소재와의 만남은 가구 브랜드에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소재의 본질과 쓰임에 대한 연구와 실험은 브랜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소재의 물성은 브랜드를 상징하는 아이덴티티가 되었습니다.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가구 브랜드는 어떤 것이었나요? 다채롭게 변주되는 소재의 활용을 찬찬히 살펴보며 독자들도 취향에 꼭 맞는 소재와의 우연한 만남을 겪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