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럭서스 예술가들이
연주하는 삶의 선율

예술과 삶의 조화를 위한
작지만 단단한 시도들
Edited by

당신에게 예술에 대한 장벽은 얼마나 높은가요? 나의 하루나 일상의 순간들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모두가 예술가다”라고 선언하며 예술의 개념을 재정의했습니다. 플럭서스(FLUXUS) 운동 역시 이 질문을 던지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었죠.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복잡한 학습이나 특별한 경력이 없더라도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읽고 시도해 볼 수 있는 단순한 지시문들로 악보를 만든 이유입니다. 지시문들은 일상의 행위를 다시 들여다보며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올해가 다 가기 전,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이벤트 스코어를 통해 직접 나의 일상을 예술로 바꾸는 실험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나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일상을 재발견할 수 있는 5개의 플럭서스 지시문과 작품들을 함께 만나 보세요.


이 지시문을 연주하시오

조지 브레히트, “드립 음악(DRIP MUSIC)” 1959-62

단 네 줄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악보가 있습니다. 플럭서스(Fluxus) 예술가 조지 브레히트(George Brecht)가 작곡한 ‘Drip Music’이라는 곡입니다. 플럭서스의 수장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가 막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가슴 높이로 든 병에서 가는 물줄기가 떨어집니다. 이곳은 플럭서스 – 국제 신음악 페스티발(FLUXUS-Internationale Festpiele Neuester Musik) 현장입니다. 몇 줄의 지시문으로 이루어진 악보가 연주되는 곳이죠.

조지 브레히트 ‘드립 뮤직(Drip Music)’ 공연 장면
조지 마키우나스, “플럭서스 콘서트 – 거리 이벤트 포스터”, 1964

플럭서스 국제 신음악 페스티발은 1960-70년 대 독일과 미국에서 플럭서스 운동을 주도하던 예술가들이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선보인 실험적인 공연입니다. 1962년 독일 비스바덴에서 조지 마키우나스의 주도로 열렸어요. 플럭서스는 흐름, 변화, 운동성을 의미하는 라틴어 ‘Flux’에 기반하여 스스로를 이름 붙인 예술가 집단이자 운동입니다.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는 삶처럼 한계를 두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예술의 재료로 활용했죠. 백남준, 오노 요코(Ono Yoko),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요나스 메카스(Jonas Mecas), 조지 브레히트 등의 예술가들이 함께했습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시와 소리, 행위의 매개를 실험하는 작품들을 공연, 영화, 음악, 출판, 라디오극 등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예술이라는 이름을 걸고 무대 위에서 피아노에 톱질을 하거나 바이올린을 끌고 뉴욕 소호 거리를 활보하는 파괴적인 소행은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충격을 안겨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술이란 미술관 안을 거닐며 고상하게 감상하는 일부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눈 앞에서 느닷없이 발생하는 사건과 다름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이벤트 스코어:
일상 속 사건을 그리는 악보

백남준, “머리를 위한 선(Zen for Head)”, 1962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우연한 ‘사건(event)’들을 발생시키는 ‘악보(score)’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복잡한 악보를 읽을 줄 모르거나 어려운 악기를 연주할 줄 몰라도 누구나 사건과 행위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죠. 무대 또는 예술적 사건이 펼쳐질 공간에서 퍼포머가 종이에 적힌 지시문을 수행하며 사람들에게 이벤트 스코어를 알리기 시작합니다. 라 몬테 영(La Monte Young)의 지시문 “직선을 그린 뒤 그 선을 따라가세요(Draw a straight line and follow it)”이 대표적입니다.

위 지시문이 쓰인 라 몬테 영의 이벤트 스코어 <Composition 1960 No. 10>은 우리에게는 백남준이 토마토 주스가 섞인 잉크를 머리에 묻혀 길다란 종이에 내리그은 작품 <머리를 위한 선(Zen for Head)>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선(禪)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백남준은 같은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필름을 위한 선(Zen for Film)>의 경우, 마치 명상을 하듯이 흰 스크린을 오래 바라보게 되는 짧은 필름입니다. 간혹 영사기에 묻은 먼지나 필름 스크래치가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무엇인가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같은 악보를 보더라도 연주자의 개성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듯이, 라 몬테 영의 악보는 백남준에 의해 그만의 색깔로 연주되었습니다. 만약 백남준이 같은 악보를 다시 연주하더라도, 그 순간 발생하는 사건은 이전의 것과 다른 고유한 이벤트입니다. 매순간 새로운 사건, 새로운 예술이 발생하는 것이죠.

이벤트 스코어는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예술가와 관객의 경계 역시 무너뜨립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관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했습니다. 관객의 반응과 참여로 인해 발생하는 사물과의 우연하고 낯선 마주침 역시 하나의 사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연주들은 예술가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일상적인 사건들이 예술과 매개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니 플럭서스 예술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벤트 스코어를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백남준의 ‘필름을 위한 선(Zen for Film)’

조지 브레히트의 스코어:
램프를 껐다 켜시오.

조지 브레히트, “세 개의 램프 사건(THREE LAMP EVENTS)”, 1960–61

조지 브레히트는 ‘이벤트’라는 말을 행위 예술에서 가장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입니다. 몇 개의 문장으로만 구성된 지시문을 만들어 친구들이 자신만의 의미로 표현할 수 있도록 했죠. 예술이란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십여 개의 이벤트 스코어를 남겼습니다. 그 중 간단한 스코어 하나를 소개합니다. 오직 세 개의 지시문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끄시오. 켜시오. / 켜시오. 끄시오. / 램프.”

전등을 끄고 켜는 것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위입니다. 퇴근하고 돌아와 스탠드 램프를 켜고, 깊은 밤 잠들기 전 끄기 마련이죠. 조지 브레히트는 이처럼 가볍고 일상적인 행위들을 조금 허무하리만큼 유머러스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합니다. 지시문 아래 인용된 문구가 의미심장합니다. “눈을 감으면 분명 어두울 거야(It is sure to be dark if you shut your eyes).” 이제 눈꺼풀을 깜박여 봅니다. 감았다가 떴다가, 떴다가 감아봅니다. 램프를 끄고 켜면서 일상의 사물과 상호작용하던 행위들은 이제 신체의 행위로 전환되고, 나와 한결 가까워집니다. 눈꺼풀의 반복적인 깜빡임은 더 이상 자동반사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두 눈의 윙크가 음표로 변모하여 나만의 고유한 리듬을 만들며 세상과 공명하는 것이죠.

플럭스콘서트(FLUXCONCERT)의 조지 브레히트 “세 개의 램프 사건” 오마주 공연

오노 요코의 스코어:
오늘의 하늘은 어제와 같던가요?

오노 요코, “Grapefruit”, 1964, 이미지 출처 : Artsy

일본에서 태어난 오노 요코에게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동양적 사상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전쟁을 겪은 후 뉴욕으로 건너가 조지 마키우나스, 백남준과 친분을 쌓으며 플럭서스에 합류합니다. 오노 요코는 여러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타인이 가위로 잘라내는 <컷 피스(Cut Piece)>라는 예민하면서도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하고,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과 결혼한 뒤 침대 위에서 함께 평화를 노래하기도 했죠. 1964년 요코는 자신의 개념 예술을 총망라한 저서 『Grapefruit』를 출간합니다. 스스로를 일본과 미국의 하이브리드로 여긴 것을 레몬과 오렌지가 합쳐진 과일 자몽에 빗댄 것입니다.

존 레논은 “Imagine”을 작곡할 때 『Grapefruit』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결혼 후 출간된 새로운 에디션에 직접 서문을 쓰기도 했죠.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인연도 짧은 지시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우연히 요코의 개인전에 방문한 레논은 ‘Yes’라고 쓰인 작은 글씨를 발견하고 그에게 반했다고 하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장에 돋보기를 갖다 대는 <Yes Painting(Ceiling Painting)>이라는 작품입니다.

오노 요코 ‘컷 피스(Cut Piece)’ 공연
오노 요코, “지도 조각(MAP PIECE)”, 1964

오노 요코는 『Grapefruit』을 다양한 이벤트 스코어들로 채웠습니다. 짧은 지시문들을 상상력을 동원해 직접 행해 볼 것을 제안하죠. 페이지를 넘기면 ‘지구가 공전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투명해질 때까지 또는 잠들 때까지 저녁 빛 속에 서있습니다’ 같은 문장들이 이어집니다. 지시문들을 읽다보면 고요하고 영원한 순간에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캔버스에 구멍을 뚫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처럼 직접 사물을 이용해 시도해볼 수 있는 지시문도 있지만, 보다 자유롭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지시문도 있습니다. 길을 찾기 위한 지도가 아니라 잃기 위한 지도를 그려 봅니다. 음표가 아닌 문장으로 그려진 이벤트 스코어처럼 반드시 지도 모양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실제로 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핵심은 스코어를 읽는 순간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벤자민 패터슨의 스코어:
세수를 합시다.

벤자민 패터슨, “지시문 No. 2 (Instruction No. 2)”, 1964, Walker Art Center 영구 소장품

조지 마키우나스는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오브제들을 모아 담은 플럭스키트(Fluxkit)를 만들었습니다. 오브제들을 한 번에 담아 들고다니면서 언제든 열어 플럭서스 작품을 감상하고 수행할 수 있는 여행용 가방이 플럭스 키트입니다.당시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성냥갑 크기 접힌 손수건까지 다양한 크기로 오브제를 만들었거든요. 벤자민 패터슨(Benjamin Patterson)의 “지시문 No.2”도 포함되었죠. 미니 케이스를 열면 레몬 모양의 작은 비누와 함께 냅킨이 한 장 들어있습니다. 냅킨 위에는 “당신의 얼굴을 씻으세요(Please wash your face)”라는 지시문이 적혀있어요.

패터슨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연에서 이 스코어를 연주해보자고 제안합니다. 당시 뉴욕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개인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주저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앞으로 나와 얼굴을 씻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패터슨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저항하는 몸짓에 주목합니다. 매일 당연하게 하는 세수라는 사소한 행위를 한 장의 지시문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벤자민 패터슨, 이미지 출처 : MoMa

벤자민 패터슨은 플럭서스의 창립 멤버이자 유일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입니다. 패터슨은 예술가란 먼저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발견한 것을 알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격한 클래식 음악에서 관객과의 간극을 경험한 그는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죠.

저마다의 다양한 형식으로 예술을 실현하는 플럭서스 예술가들을 단 하나의 성격으로 설명하거나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공통점이 있죠. 기존의 미술관이나 공적인 전시 공간이 지닌 제약에서 벗어나 대중들에게 드러나는 기회를 스스로 기획하고, 예술과 삶의 조화를 꿈꿨다는 점입니다. 플럭서스 정신은 여전히 관객들의 삶에 예술을 끌어들여 누구나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벤자민 패터슨의 ‘종이 뮤직(Paper Music)’ 공연

<트렌드 코리아 2024> 필진은 ‘분초사회’, ‘육각형 인간’과 함께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us)’라는 키워드를 제안했습니다. 컴퓨터 전용 언어로 입력되어야 했던 프롬프트는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어 이제 누구나 구사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법이 되어가고 있죠. AI 기술의 발달로 자연어 처리가 가능하게 된 덕분입니다. 명령을 지시하는 프롬프트가 구체적일수록, 충분한 맥락을 제공할수록, 원하는 답변의 형식을 명확하게 지시할수록 AI의 답변은 유용하고 정확해집니다.

AI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프롬프트와 이벤트 스코어는 명령문의 형태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학습된 응답을 일관적으로 출력하는 AI와 달리 예측하거나 계산할 수 없는 삶의 사건들을 창발해낸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죠. 타인을 덜 거치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된 이 시점이야말로, 우연을 만드는 유희가 가장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그 시도들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을 미묘하게 차이나는 리듬과 고유한 선율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과 삶의 조화를 시도하는 당신께 또 하나의 지시문을 제안합니다.

이벤트 스코어: 마음 가는 대로 짧은 악보를 만들어 봅니다. 가볍게 연주합니다.


Picture of 서희

서희

삶을 신비롭게 하는 우연을 사랑하고,
예술의 효용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과 협업하고 싶다면

지금 ANTIEGG 제휴소개서를 확인해 보세요!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