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사람들이 서점에 오픈런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책을 사려는 사람으로 서점이 붐비는 요즘인데요. 한강 작가의 책을 시작으로 어떤 책을 더 사볼지 고민하신 적 있으신가요? 여기 작가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책에 대한 책을 모았습니다. 누군가 벅찬 마음을 안고 빛나는 눈으로 자신에게 소중한 책을 소개하는 순간, 당장 그 책을 읽어보고 싶어질 거예요. 오랜만에 책을 읽어보려는 이들의 장바구니를 채워줄 책에 대한 책 3권을 소개합니다.
모든 이의 인생을 담아내는
25편의 시
『인생의 역사』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_신형철, 『인생의 역사』
시집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져가는 요즘입니다. 현대인들은 숏폼에 익숙해서 짧고 얇은 시집에 흥미를 느끼는 것 아니냐고들 하지요. 하지만 시가 사랑받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어떤 삶을 사는 사람에게든 모두 공평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반영해 읽을 수 있는 장르여서가 아닐까 합니다. 정 반대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도, 기분이 좋았던 어제의 나와 기분이 우울한 오늘의 나도 하나의 시를 가지고 다양한 해석을 하며 읽을 수 있으니까요.
오랜만에 좋은 시를 읽고 싶다면 책 『인생의 역사』를 추천합니다. 『인생의 역사』는 신형철 문학 평론가가 사랑한 시 25편 그리고 그 시에 대한 글을 엮은 책입니다. 한강 작가의 「서시」부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 윤동주의 시까지 폭 넓게 다루고 있어요. 제목에 쓰인 인생 그리고 역사라는 단어는 자칫 거창하고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왜 인생의 역사인지 이해가 됩니다. 같은 문장을 읽어도 과거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다르듯, 시는 언제나 우리 경험의 총합인 인생을 반영하니까요. 시는 한 사람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의 인생을 포용하는 역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자는 소중히 여기는 각각의 시를 독자에게 먼저 보여준 뒤 그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데요. 그의 글은 시에 대한 정보라기보다 시를 경유해 풀어내는 그의 인생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읽다 보면 나도 이렇게 나의 인생을 온전히 풀어낼 수 있는 시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치죠. 아름다운 시 그리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거울처럼 비춰낼 시집들을 잔뜩 발견하시길 바라요.
“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 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_신형철, 『인생의 역사』
여름 방학처럼 느긋하게 읽을
5편의 고전 문학
『금빛 종소리』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다. 고전은,
1 (두꺼운 종이책일 경우) 졸릴 때 베개의 역할을 한다.
2 여름방학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읽으면 좋다.
3 독특한 분위기가 있으며 우리는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4 졸리기만 한 것은 아니며 다양한 층위의 즐거움을 준다.
5 세계의 교양에 접속하게 해 준다. 5-1 세계의 교양은 편향되어 있다.”
_김하나, 『금빛 종소리』
꽤나 클래식한 느낌의 제목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자유롭고 쾌락적인 고전 읽기”라는 부제를 단 책, 『금빛 종소리』입니다. 『금빛 종소리』는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고전을 현대적으로 소개하는 김하나 작가의 책입니다. 『금빛 종소리』에서는 교훈을 얻기 위한 고전 읽기가 아닌, 즐거움을 얻기 위한 고전 읽기를 제안합니다. 뉴진스 뮤비에 등장한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올해 황정민 배우가 현대적 감각으로 무대에서 연기한 『멕베스』부터 시작해 『아우라』, 『회상록』, 『변신』까지 총 다섯 편의 고전 문학을 소개합니다.
모두에게 익숙한 작품부터 낯선 작품까지 아우르며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설파하는데요. 그 방식이 얼마나 유쾌한지 고전에 대한 책이 맞나 의심스러워질 정도입니다.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벌레의 외양에 대한 묘사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며, 한국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바퀴벌레 코스튬 카프카 벌레 핼로윈 의상’에 대해 이야기하고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고품격 자기 계발서’와 ‘BL 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웹툰적인 면모들을 유쾌하게 소개합니다.
‘서울대 필독 도서 100권’같은 리스트에 있을법한 어려운 첫인상을 가지고 있는 책들이지만, 저자의 소개 글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부담감이 있는 분들은 이 책을 통해 힘을 잔뜩 둔 태도가 아닌, 느긋하고 즐기며 고전을 읽는 마음가짐을 얻으실 수 있겠고요. 고전을 읽고 싶지만 어떤 책으로 시작할지 모르겠는 분들 기존 도서 소개보다 조금 더 말랑하고 유쾌한 소개를 통해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실 수 있겠어요. 먼지 쌓인 책장 속 지난 몇 백 년 동안 빛나고 있었던 고전 문학을 알아채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려요.
“고전을 읽을 때는 동시대의 작품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자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감각이 있다. 여름방학의 나른함, 마루에 누워 두꺼운 책을 베고 졸다가 깼을 때 멀리 다녀오기라도 한 듯 얼떨떨한 느낌, 또다시 이어지는 낮이 암시하는 시간의 영속성 같은 감각이 그와 유사한 것을 일깨운다.”
_김하나, 『금빛 종소리』
1월부터 6월까지,
하루에 한 권씩 소개하는 책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2017년 5월 7일 일요일 독서 일기 –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그의 소설은 너무나 쉽고 일상적인 말들만을 사용한다. 나 역시 한 문장도 고르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이 책에는 빛나는 구절들이 많다. 다만 그것이 맥락 속에서만 빛날 뿐이다. 우리 인생 대부분의 행복들이 그렇듯.“
_강윤정·장으뜸,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는 뒷표지에 적힌 ‘책읽기에 대한 책일기’라는 소개 문구로 정확히 요약될 수 있는 책입니다.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고, 책의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는 두 사람, 강윤정 그리고 장으뜸 저자가 각자 하루에 한 권의 책에 대해 쓴 독서 일기 모음집입니다. 2017년 1월부터 6월까지 책의 왼편엔 장으뜸 저자의 글, 책의 오른편엔 강윤정 저자의 글이 위치하고 있는 일기장 같은 구성에 누군가의 교환일기를 읽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집필 당시 두 저자는 매일 같이 책을 만지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북 카페 겸 서점 주인 그리고 편집자로서 일하고 있는 두 사람의 정체성이 이 책을 더 신뢰감 있고 흥미롭게 만들어주죠. 책의 곁에 있는 사람인 만큼 읽는 책의 장르 폭도 매우 넓어서 소설부터 에세이, 인문, 시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 소개를 다루고 있어요. 부부인 두 사람이 서로의 독서 취향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분에서는 취향이라는 단단한 고리로 엮인 로맨틱함도 느껴집니다.
1월부터 6월까지 매일 일기를 쓰며 각자 181권의 책에 대한 글을 담았고, 2명이 함께 썼으니 약 362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읽기 부담스럽지 않은 한 쪽 분량의 가벼운 일기 형식의 책 소개가 가득 담겨있으니 앞에서부터 찬찬히 읽는 것보단 끌리는 페이지를 아무 데나 골라 펼쳐 읽어도 좋겠습니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에 대한 소개 글을 마주쳐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게 될지도요.
더불어, 이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책의 저자인 강윤정 편집자의 북튜버 채널 <편집자 K>도 추천드려요. 매달 출간된 신간 중 읽어볼 만한 책 3~4권을 소개하는 영상이 업로드되는데요. 책의 탄생 과정을 모두 함께 하는 편집자 특유의 밝은 눈으로 좋은 책을 찾아내 주시니, 책 고르기에 큰 치트키가 되어줄 거예요!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구매 페이지
책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은 분들, 처음엔 수많은 책이 꽂혀 있는 서점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서 뒷걸음질 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물러서지 마세요. 사실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책을 읽는 것이거든요. 책 속에는 꼭 다른 책이 등장하기 마련이어서 책을 읽다 발견하는 책을 이어 읽고, 또 이어 읽다 보면 고구마를 캐는 것처럼 읽어야 할 책이 줄줄이 뽑혀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되실 거예요. 일단 펼쳐서 한 페이지만 읽어보세요. 읽기 시작한 한 페이지가 열 페이지가 되고 백 페이지가 되다 계속해서 다음 책의 독서로 이어지는 멋진 경험은 그 한 페이지 읽기에서 시작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