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 예술가 아니카 이의
까끌한 경계의 실험

나와 타자의 경계없음을 탐구하는
감각 미술 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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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더불어 살아가지만, 다양한 존재는 우리의 눈에 띄지 않기에 쉽게 잊혀집니다. 그렇게 우리가 망각했을 때 겹겹이 쌓이는 무지의 결과는 상상 그 이상이기도 합니다. 기술 발전으로 무장한 인류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신의 영역을 기웃대는 현재, 혐오와 공포 이기주의 또한 마찬가지로 무지의 결과 중 하나로 꼽힐 수 있죠. 이제 우리는 가 보지 않은 낯선 길 속에서 서둘러 적응해가야만 한다고 서로에게 종용합니다. 보이지 않는 이면일지라도 무수한 현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하는 노력이 절실한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야만 합니다.

최근 예술계에서 다양한 예술적 성찰이 시작된 것도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니카 이(Anicka Yi)의 전시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 같습니다. 전시의 제목부터 필자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시 제목은 불교 선종의 수행법 중 하나인 간화선(看話禪)에서 사용되는 화두의 특성을 차용했는데요. 논리적으로 풀 수 없기에 자아를 초월한 깨달음으로 향했다는 이 문구는 작가의 전체적인 세계관과 작품에 대해서 모두 함축합니다. 이번 아티클 작성을 통해서 작가의 강연과 더불어 리움 미술관에 직접 다녀온 필자가 그녀의 실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티클을 열어보려고 합니다.


창의적 유목민 아니카 이의
공상과학 미술 실험 촉매

‘켈프 조각’ 연작과 ‘방산충’ 연작 앞에 있는 아니카 이(Anicka Yi), 이미지 출처: 이재안, 리움미술관

아니카 이는 경계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불협화음같은 경험을 촉매 삼아 자신의 작품을 전개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하고 패션 관련 일을 하다가 30대 중반에 미술로 자신의 경험을 담아내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처 없는 유목민과 같았던 작가는 소속감이 획일적이고 정적인 구조가 아닌 자아와 세계 사이에 진화하는 대화로서 존재함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작업을 위한 촉매였다고 회고하기도 합니다. 변두리에 살면서 이방인처럼 느껴진 작가는 정체성이 화폐처럼 취급되는 세상에서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안정된 정체성을 통해 타인을 평가하는 세상을 탈피하고 경계가 모호하고 유동적인 자신 스스로를 수용하며 고유한 작가로서 회복하게 됩니다.

한 때 진정한 소속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느꼈던 이질감은 작가로 하여금 예술과 삶 속에서 도전 과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의적인 가능성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건축, 디자이너, 과학자, 조향사와 함께 예술가의 창의적인 피와 과학자의 차가운 이성이 흐르는 유기체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시험관으로 이루어진 조각들, 소름이 돋아 털이 곤두선 긴장한 동물의 피부를 연상시키는 작품, 유충으로 덮인 곤충의 집처럼 보이는 ‘네스트(Nest)’ 시리즈, 만개한 꽃을 튀겨버린 작품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아니카 이가 창조한 고유한 생태계처럼 보입니다.


경계를 아우르는
실험의 조력자들

아니카 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실험의 조력자로 삼아 작업을 전개합니다. 개미나 흙 속의 미생물과 박테리아, 향기 등 보이지 않지만, 지구를 구성하는 요소와 협력을 통해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 전시 전경, 이미지 출처: 리움미술관

리움 M2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톡 쏘는 듯한 독특한 향, 보지 않고 맡아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후각은 그녀가 공기에 아로새긴 작품을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감각입니다. 향과 냄새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요소입니다. 대개 많은 오해를 사기도 하고 그 자체로 정치적인 면을 가지기도 하죠. 그렇기에 어떤 향은 사람들이 거부하고 저항하고 불편한 선을 긋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서 계층의 경계를 나타내는 장치였던 ‘지하실 냄새’와 같이 말이죠. 그렇기에 작기는 매 전시마다 향을 주제로 한 작업물을 등장시킵니다.

이번 전시를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 향 작품은 생물화된 기계 고대의 수생생물, 원시 환경에 대한 상상을 담아 조향사 바나베 피용과 협업하여 만든 작품인 “두 갈래 길을 한번에 걷기(2023)”인데요. 전시장은 안전하고 권위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두 장의 커튼을 걷어내고 등장하는 시큼한 낯선 향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의 질서에 무뎌졌던 감각들을 일깨워 새로운 의구심과 이질감을 기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듭니다.

아니카 이, “또 다른 너”, 2024

박테리아를 사용한 신작 “또 다른 너(2024)”는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살아있는 박테리아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아크릴 판에 존재하는 작품입니다. 인공적인 환경 안에서 존재하는 박테리아는 사실 존재하지 않던 미생물입니다. 컬럼비아 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연구실과 협업하여 대장균의 DNA와 해파리의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었습니다. 이는 합성 생물학을 통해 만들어진 인공물이면서 동시에 해양 생물의 유전자를 가진 해양 생물의 친족이기도 한 존재인데요.

바다를 기반으로 한 고대 친족 관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친족과 혈통에 대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해양 생물의 친족이면서 동시에 인공물인 작품은 전지구적 역사의 깊은 뿌리로부터 발생한 절단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환영과 같은 경계선에 위치합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비인간과 생명체, 지구 환경, 생명공학 등에 대해 고찰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환영을 만들어내는 인피니티 미러 형태 안 속, 재탄생된 미생물을 통해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두지 않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말이죠.

아니카 이의 작품 “느낌은 기술이다”, 이미지 출처: 김진희

병원이나 실험실에서 볼 법한 스탠드 위에 늘어진 가죽 작품은 실제 동물의 가죽이 아닌 콤부차를 굳혀서 만든 가죽입니다. 홍차에 설탕을 넣어 발효시켜 만드는 과정에서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진 가죽 모양의 막을 모아 굳혀서 만든 작품입니다. 미생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생물의 신진대사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전시장의 온도나 습도 조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기도, 물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죽은 사물처럼 보이는 작품이 실은 살아있는 상태임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가 제각기 다른 시간의 척도를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더불어 인간중심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 사실은 매우 부정확하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 중심적 시간 개념에서 벗어나 전지구적인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아니카 이, ‘생물오손 조각’ 연작 중 “절단”, 2024

아니카 이의 작품에서 부패는 또 다른 창작자입니다. <덴푸라 꽃 튀김 패널>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신작 <생물오손 조각>연작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요. 작가는 튀긴 꽃들로 따개비가 잔뜩 붙은 채 해양 속에서 부유하는 잔해를 연상시키는 조각을 만드는데, 그 형상이 물에 잠긴 기계 장치가 표면의 미생물로 오작동이 일어나는 생물 오손과 의미가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물오손 조각’ 연작 중 “절단” 이미지 출처: 김진희

튀겨진 꽃들로 뒤덮인 기름진 표면은 자연스럽게 부패하면서 시큼한 향으로 전시장 곳곳을 채웁니다. 튀긴 꽃의 기름진 외형과 시큼한 부패 냄새는 일반적으로 꽃이 상징하는 아름다움과 충돌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내적 경험과 작품의 인식의 충돌을 통해 영속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 재고하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믿어왔던 것들과는 다른 급진적 가능성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들면서요. 또한, 부패하는 꽃에서는 생명의 소멸과 동시에 미생물의 탄생을 인지하게 됩니다. 유기적인 재료로 이루어진 작품이 살아있음과 동시에 죽음으로 향하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변화 과정은 자연의 순환에 대해서도 떠올리도록 합니다. 무엇보다도 부패라는 현상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와 같은 요인들을 작가가 작품의 공동 저자로 삼는다는 점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신진대사가 가능한
프랑켄슈타인 개발 실험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 전시 전경 중 ‘방산충’ 연작들과 ‘켈프 조각’ 연작들, 이미지 출처: 리움미술관

아니카 이는 기계와 양립 가능한 방식을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존재를 개발하며 제시합니다. 기계가 조금 더 양립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된다면, 혹은 기계를 하나의 생물처럼 만든다면 더 넓은 세계의 촉매제가 되리라는 기대감과 함께 꾸준히 실험합니다. 전시장의 곳곳에 매달려 있는 해파리 혹은 플랑크톤을 연상시키는 기계 작품인 <방산충>(2023) 시리즈는 5억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최초로 등장한 단세포 중, 동물성 플랑크톤인 방산충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15,000종이 넘는 방산충처럼 다양한 모습을 가진 기계들은 촉수를 접었다 펴며 마치 살아 숨쉬는 생명체처럼 부유합니다. 분명 인공물이지만 고대의 자연물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들은 ‘기계의 생물화’를 연구해 온 아니카 이의 관심사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산충’ 연작과 ‘켈프 조각’ 연작들, 이미지 출처: 리움미술관

연작 <방산충>(2023) 뒤로 놓인 <켈프 조각> 연작도 바깥 세상과는 다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존재하는 멀티버스 풍경을 연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바닷속 숲을 형성하는 해조류의 일종인 켈프를 이용한 작업인데요. 고대 인류가 유리사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할 때 해조류 숲을 따라 이주했다는 ‘켈프 하이웨이’ 학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청각 요소를 더해 고치 안에 쉬지 않고 날아다니는 곤충의 그림자와 더불어 날개 소리까지 더해져 고치를 뚫고 나올 것만 같은 생생함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진짜 곤충이 아닌 회전하는 기계로, 작품을 통해 선형적인 사고와 익숙한 경험에서 탈피하기를 제시합니다.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 전시 전경 중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 작품, 이미지 출처: 리움미술관
아니카 이,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 2024

나아가, 아니카 이는 기계를 인간과 함께 살아갈 동반자로 인식합니다. 이를 대표하는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공개한 신작인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 Each Branch of Coral Holds Up the Light of the Moon(2024)”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사후에도 작업이 계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죽음 이후를 탐구하는 <공(公)>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소프트웨어 ‘공(公)’은 작가의 스튜디오가 생산한 작업물을 데이터 삼아 훈련된 알고리즘으로 작가의 ‘디지털 쌍둥이’, 다시 말해 작가의 예술 작품을 넘어 살아있는 가상 생물로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코드 기반의 협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공(公)’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여 살아가는 미래를 제시합니다. 또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이 의식의 상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온전한 답이 없음을 시사하며, 이 미지의 영역이 우리에게 새로운 공간임을 암시합니다. 삶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변화와 변형을 동반하는 상호작용의 공간임을 말이죠.


작가의 작품은 예술과 과학이 촘촘하게 엮여 포스트 휴머니즘을 해석할 수 있는 문법 자체로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전환하는 가능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열어줍니다. 미지의 영역이 점점 많아질수록 불안감이 증폭하는 현재, 그녀는 이런 미지의 영역을 가시화하며 미술관을 실험실로 만들면서 제시합니다. 지구에 묶인 ‘우리’의 경계는 항상 흐르며 살아 숨 쉬는 다공성의 존재라는 것을 말이죠. 그렇기에 그 빈 공간에 존재하는 우리들이 ‘나’에 집중된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 또한 시사하면서요.


Picture of 김진희

김진희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바람들을 느끼며
예술의 향유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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