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에는 있고
클래식엔 없는 것

서양 클래식 음악의 보편과
그 바깥의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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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에그에서 ‘그레이’ 콘텐츠를 쓰는 시니어 에디터 희량과 유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1) 우리는 각자의 최근 일상과 관심, 예전엔 줄곧 했지만 지금은 좀처럼 하지 않는 일, 언젠가는 닿고 싶은 막연한 꿈에 관해, 마치 우리 삶처럼, 정처 없는 화두들을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그러는 중 희량이 소개한, 우리나라 전통악기 해금을 연주하면서 겪은 몇 가지 일화는 생각해 볼만한 것들이었다. 가령 이런 것이었다. 해금을 연주할 때 정확하게 딱 맞는 음을 소리 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 또한 여러 악기가 합주할 때 각 악기들의 음고가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아서 때로는 이게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었다. 희량의 이와 같은 일화가 내게는 ‘보편’으로서의 서양예술음악에 관한 물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물음은 ‘보편’이라는 것의 속성에 관한 것과도 관계있어 보였다.


평균율과 음들의 평준화

음악을 전문적으로 학습한 것이 아니더라도, 의무교육을 마쳤다면 악기를 다루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일 피아노와 바이올린, 플루트나 클라리넷처럼 서양악기라면, 그 악기들은 모두 ‘평균율’(Equal temperament)이라는 특정한 조율법으로 조율되어 있다. 이 조율은 서양 클래식 음악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대부분의 음악은 평균율이라는 조율법을 따른다. 평균율은 하나의 옥타브를 구성하는 모든 음들의 간격을 똑같이 나눈 조율을 말한다. 아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왼쪽 끝의 C(도)에서 오른쪽 끝 C까지 이르는 하나의 옥타브는 열두 개의 건반(C – C♯ – D – D♯- E – F – F♯ – G – G♯ – A – A♯ – B)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각 건반들은 모두 ‘반음’(half tone) 관계다. 평균율은 이 모든 반음들의 간격이 동일하게 만든 조율이다.

이미지 출처: LoudLands

‘만들었다’는 것은 평균율이 처음부터 존재했거나 자연적 형태이기보다, 어떤 목적에 의해 인위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함의한다. 이때의 목적은 편리한 전조(modulation)를 위한 것이었다. 가령 평균율이 생겨나기 이전에 사용되던 조율법 중 하나인 순정율(just intonation)은 음악에서 자주 쓰이는 특정 화음들을 매우 조화롭게 들리도록 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순정율 조율법의 경우 각 음들 간의 간격이 달랐으므로, 하나의 조에 맞춘 조율은 다른 조에서 적절하게 작동되기 어렵다. 다시 말해, C장조로 연주하다가 G장조로 전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듯 평균율은 음들 사이의 거리를 동일하게 만들어 그 간격을 평준화하는 과정이었다. 이 조율법은 음 사이 간격을 똑같이 만듦으로써 음악에서 빼놓기 어려운 전조를 가능하게 했지만, 그 혜택은 화음들의 조화로운 울림을 얼마간 포기하는 것을 전제해야 했다.

이렇듯 평균율은 그 자체로 온전한 것도 아니고 유일한 정답도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쉬이 듣게 되는 많은 음악이 평균율 조율법을 따르고 있으므로, 때로는 그것이 인류 보편의 조율 체계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희량이 해금을 연주하면서 ‘정확한 음고’를 맞추기 어렵다고 느낀 것은, 어쩌면 그의 귀가 평균율에 익숙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물론 이것은 희량에게만 한정되는 경험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젠가 어느 인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도저히 맞지 않은 음정이 불편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땐 왜 몰랐을까.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란 걸. 무수한 존재들이 언어의 경계 밖으로 미끄러지듯, 그 목소리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균등한 음들 사이를 마음껏 유영하고 있었다.


다름을 포용하는 헤테로포니

전통악기 앙상블 연주에서 각 악기들의 음고가 다소 제각각인 듯 들렸다는 희량의 두 번째 일화 역시 앞서 이야기한 조율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 그보다는 음악의 짜임새에 관한 것을 살필 때 서양 클래식 음악과 우리 전통음악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음악의 짜임새는 음악에서 성부들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와 관계있다. 음악의 짜임새는 1) 모노포니, 2) 호포모니, 3) 폴리포니, 4) 헤테로포니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아래 그림은 네 가지 음악의 짜임새를 도식화한 것이다. 파란색으로 표기된 선율을 바탕으로 네 유형의 핵심적 차이를 보여준다.

음악 짜임새의 네 가지 유형. 이미지 출처: Music Theory Academy

1) 모노포니 monophony

‘mono-’는 ‘하나’를 뜻하는 그리스어 ‘monos’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원으로 알 수 있듯 모노포니는 선율이 단 하나인 경우다. 위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모노포니에는 하나의 파란색 선이 존재한다. 모노포니는 한 사람이 부르거나 여러 사람이 부르는 것과는 무관하다. 여러 사람이 부르더라도 하나의 선율을 부른다면 그 음악의 짜임새는 모노포니다. 서양음악에서 모노포니 음악은 단선율로 된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찾을 수 있다. 아래 영상은 가장 유명한 그레고리오 성가 중 하나다. 여러 사람이 한목소리로 하나의 선율을 부르는 모노포니의 짜임새를 잘 보여준다.

2) 호모포니 homophony

호모포니 역시 선율이 하나 존재한다. 그렇지만 호모포니의 ‘homo-’는 ‘모노’와 다르게 ‘하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일한’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homos’에서 유래했다. 위 도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선율 아래는 초록색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것이 호모포니와 모노포니의 차이다. 음악에서 실제로 초록색 면을 차지하는 것은 주요 선율을 뒷받침하는 ‘화성’(harmony)이다. 다시 말해, 호모포니 짜임새는 한 가지 주요 선율과 그것을 화성적으로 보완하는 반주로 구성된다. 호모포니 짜임새의 가장 대표적 예는 찬송가에서 찾을 수 있다. 아래 악보는 찬송가에 수록된 곡 중 하나인 ‘오 신실하신 주’의 전체 악보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네 개 성부로 구성된 이 노래는 최상성부인 소프라노에 주요 선율이 놓이고, 나머지 성부들인 알토, 테너, 베이스는 선율을 화성적으로 뒷받침한다.

호모포니 짜임새의 경우, 주제선율은 모노포니에서처럼 명확하게 들리지만 화성과 함께 울리니 더욱 풍부한 소리를 갖게 된다. 아마도 네 가지 짜임새 중 지금까지도 가장 두루 쓰이는 것이 호모포니 짜임새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 팝 음악은 대체로 호모포니 짜임새를 선호한다. 짐작하건대 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고, 귀에 콕 각인되는 하나의 선율이 부각되는 것이 대중과 연결되기에 가장 용이해서일 것이다.

찬송가에 나타난 호모포니의 예. 이미지 출처: YERAM

3) 폴리포니 polyphony

‘poly-’는 ‘많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polys’에 기원을 둔다. 그렇다면 폴리포니에서 ‘많은’ 것은? 선율이다. 위 도식에서 가장 복잡해 보이는 것이 폴리포니 짜임새다. 폴리포니는 하나 이상의 선율이 동시에 울리면서 만들어지는 음악의 성부 짜임새를 말한다. 서양 클래식 음악에서 폴리포니의 역사는 길고도 길다. 폴리포니 짜임새로 구성된 음악 작곡 기법을 일컫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우리는 이것을 푸가(fugue)라고 부른다. 푸가는 폴리포니 짜임새로 음악을 만드는 ‘기법’ 또는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 (형식)을 일컫는다. 그리고 푸가의 대가로 잘 알려진 것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다.

아래 악보는 푸가의 대가로서, 바흐가 푸가의 모범을 보여주려는 듯 만든 작품 《푸가의 기법》(The Art of Fugue, BWV 1080)에 수록된 첫 번째 곡의 도입부다. 파란색 사각 박스는 이 곡의 주제 선율이다. 주제 선율은 처음 알토 성부에서 제시된 후 소프라노, 베이스, 테너 순으로 시차를 두고 먼저 제시된 선율을 똑같이 모방하면서 등장한다. 돌림 노래다. 주제 선율이 두 번째로 등장하는 순간부터는 주제 선율 외에 다른 선율들이 점차 추가된다. 초록색으로 표시된 알토, 노란색으로 표시된 소프라노, 붉은색으로 표시된 베이스에서 주제 선율과는 다른 선율들이 차츰 포개지기 시작한다. 선율이 여러 개다. 이와 같이 여러 선율이 동시에 울리는 폴리포니 짜임새의 음악은, 물론 복잡하게 들리지만, 그것이 함께 울리면서도 이질적이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특징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푸가의 기법》 중 1. Contrapunctus 1. 이미지 출처: Barenreiter

4) 헤테로포니 heterophony

서양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 것이 헤테로포니 짜임새다. ‘다른, 차이가 있는’을 뜻하는 그리스어 ‘heteros’에서 유래한 ‘hetero-’는 ‘같은, 동일한’을 뜻하는 ‘homo-’의 반대말이다. 서양음악을 배운 나로서는, 학생 시절 가장 잘 와닿지 않던 개념이 바로 이 헤테로포니였다. 나머지 셋은 서양음악에서 얼마든지 예를 찾을 수 있지만 헤테로포니의 경우 그 음악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짜임새가 헤테로포니라는 것을 알고, 그 음악을 듣고 난 후에야 헤테로포니를 이해했다. ‘hetero-’가 ‘다른’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 폴리포니에서 ‘poly-‘의 ‘많은’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도 선명해졌다.

위 영상은 국립국악원의 정기공연 <정악풍류 ‘영산회상’>의 전체 공연 영상이다. 1시간 20분가량의 긴 영상이지만, 이 영상의 도입부를 조금만 들어도 헤테로포니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선율악기인 피리, 대금, 해금, 가야금, 거문고, 단소, 양금은 하나의 선율을 연주하지만, 그 결과적인 소리는 모두 다르다. 각 악기가 가진 고유의 소리에 따라, 하나의 선율을 연주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로써 들리기보다 조금씩 다르게 들린다. 이질적인 것을 정교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오랫동안 서양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중요한 가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서양 클래식 음악의 환경에서 헤테로포니적 접근은 상상하기 어렵거나, 혹 그렇게 하더라도 ‘틀린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남달리 귀가 민감한 희량이 전통음악 앙상블에 연주자로 참여하면서 느꼈을 부정확한 소리들은 그것이 ‘틀렸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서양 클래식 음악에서 오랫동안 추구해 온, 그리고 지금도 가장 널리 통용되어 음악적 짜임새의 보편으로 인식되는 호모포니에 적응된 우리 귀가 헤테로포니의 차이들을 낯설게 감각한 데서 생겨난 것일 터다.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서양 클래식 음악이 기준으로 삼은 것들의 환경에 놓여있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사유나 태도만이 아니라, 평균율 조율이나 음악의 짜임새 같은, 음악의 내재적인 차원에서도 벌어진다. 이 글에서 짤막하게나마 살핀 것처럼, 여전히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평균율 조율은 특정한 시기에 구체적인 목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음악의 짜임새 역시 동일성의 원리라는, 이질적인 것이나 부정적인 것을 제거한 동질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태도와 함께 형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질적인 것들은 통제되고 관리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서양 클래식 음악이 ‘정상’이라고 구분해 놓은 경계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연한 것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그 보편의 당위를 강화하므로. 보편적이고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을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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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인

음악과 음악활동을 하는
우리에 관해 생각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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