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니체는 말했습니다. 2024년, 사람들은 괴물이 되지 않기로 택하며, 꺼지지 않는 자신의 가장 소중하고 밝게 빛나는 것들을 들고 광장에 나섰습니다. 찬란한 연대로 이뤄진 빛의 바다는 자신을 향한 폭력을 집어 삼키는 파도가 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응원봉을 들기 전에는 촛불을 들었고, 촛불 이전의 세대들은 붓을 들어 저항을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저항의 역사는 도구만 바뀔 뿐,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재의 문제와 민주주의를 꽃 피우기 위한 몸부림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던 시대와 호흡하며 소통과 담론, 그리고 애도의 역할을 다했던 민중 미술 작가 3인을 소개하려 합니다.
시대의 분노로 붓을 든 목수
최병수 작가
최병수 작가는 1980년대 민주화를 향한 혼돈의 시기를 거치며 노동자의 얼얼한 마음을 걸개 그림으로 제작합니다. 목수의 일을 해왔던 그가 1986년, 남과 북이 잘 살자는 취지로 그려진 ‘상생도’의 꽃을 그리는 일을 돕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국가 공인 ‘제 1호 관제 화가’가 되는 과정은 그가 한국 사회의 모순을 온 몸으로 체험하며 각성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화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 그는 걸개 그림이라는 분야를 통해 민주화와 노동, 반전과 환경 운동의 현장을 지킵니다.학교 교육으로 미술을 배우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에는 독특한 세계가 강렬하게 담겨 있습니다. 지구별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다움의 근원을 헤아라는 일, 조작되지 않은 온전함을 되찾아 가는 사회 운동에 앞장서 강렬하고 거대한 걸개그림을 그립니다.
그의 대표작인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그가 가진 목수의 기술로 한국 현대사의 사회적 죽음에 대한 애도를 담아냅니다. 그림은 시위에 참여하는 옷 위에 붙여졌고 민주주의를 꽃 피우기 위한 몸부림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복학생들은 예비 군복위에, 의치대생들은 자신의 하얀 가운 위에는 최병수 작가의 판화를 달고 시위에 나섰고 이후, 초대형의 걸개그림으로 만들어지며, 죽음의 기억을 시대와 호흡하며 이어나가게 됩니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다 보면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대의 기억을 기념하고 꺼내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을 어쩌면 예술 또한 선봉에서 이끌 수 있다는 점을요.
연대를 통한 소외된 여성의 목소리들
김인순 작가
소외된 개인의 애정과 섬김을 통한 연대야 말로 거대담론 아래 소외된 개인을 기억하고 꺼내 줄 수 있는 역할을 해내곤 합니다. 민중 미술 운동의 중심에 있던 김인순 작가는 예술을 통해 당시 시대의 억압 아래 있는 연약한 개인들을 연대를 통해 그려냅니다. 그녀는 윤석남, 김진숙 작가와 함께 그림패둥지를 결성하여 다양한 여성의 현실을 포착합니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충분히 주목 받지 못하고 주변부 가장 바깥에 위치해 지워질 여성들을 가감없이 담아냅니다. ‘그린힐 화재에서 스물 두명의 딸들이 죽다(1988)’에서는 제품 도난을 막는다는 이유로 기업이 밖에서 문을 잠근 탓에 탈출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여성들을 아우성을 대리합니다.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말할 수 없는 서발턴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시대의 억압과 가부장적 사회 구조의 틀 아래 이중 삼중으로 억압된 주변부 가장 바깥에 위치한 최하위 약자의 소리 없는 절규를 자신의 작품을 통해 가감없이 고발하고 목소리 냅니다. 자신 또한, 그 시절의 소수자임에도 말할 수 없는 소수에 대한 애정과 섬김을 연대를 통해 투쟁의 주체자로서 재현하였죠.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절의 분노와 슬픔, 그리고 연대의 힘을 느껴보게 됩니다.
예리한 칼날에서 오는 민중의 대변
오윤 작가
오윤 작가는 판화가 주는 예리함과 목판 위에서 느껴지는 칼질의 힘을 통해 예리하게 현실 속 고통 받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새깁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는 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하면서도 전통적인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날선 풍자와 비장하면서도 해학적인 표현과 한국 전통의 한과 흥은 그의 두드러졌던 존재인데요. 이는 그의 고향 부산의 전통 예술인 ‘동래학춤’에서 큰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외가가 동래에서 학춤으로 유명한 집안으로 당시 춤추는 법을 직접 그렸고 그런 경험은 이후 오윤의 작품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판화의 형태이지만, 수많은 고민과 스케치,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을 작품화 하기 보다는 한국의 전통 및 현실과 현대미술을 결합시키는 형태로 전개하는 데요. 이러한 점은 주목 받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보다 더 쉽고 독자적인 형태로 민중들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이를 안은 채 총을 들고 있는 여인을 그린 ‘대지’에서 이러한 정서가 드러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혼란스러운 시기 속, 아이만은 지켜내야겠다는 숭고한 어머니의 모성애가 전통적인 이미지로 그려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불안정한 시기 속 보통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오윤 작가의 판화라는 작업은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날카로이, 그러나 누구에게나 해당된다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역사의 추위 속에서도 국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연대의 힘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사회가 어지럽고 혼란할 때 미술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세상이 이렇게나 불완전한데 미술이 단지 아름다움만을 아야기한다면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행위가 아닐까? 필자는 현대미술을 관람하면서 이런 질문들을 매일같이 떠올리는데요. 물론 당장의 명쾌한 해답은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차갑지만 과거부터 꺼지지 않는 시민들의 의식과 미술은 이 세계를 바꿔 나가는 국민들을 기록하고, 느슨하지만 견고하게 이어주기도, 때론 민중을 이끌고 함께 투쟁하기도, 사회적 죽음의 기억을 기록하기도 함을 여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취약성과 그 불완전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작업에서 당장 바꿔보자는 거창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서도, 우리의 삶과 세계를 비춰주는 역할은 오직 예술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