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영화가 아름답고 즐거운 순간을 담아내지만, 어떤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릅답지도, 즐겁지도 않은 순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비극을 이야기하는 데 집중합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 치하 아래서 행해졌던 유대인 대학살을 그린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죽어가던 잔혹한 공간을 ‘천국’이라고 부르는 가족, 자신의 살인 행위를 웃으며 말하는 이들… 평범한 얼굴을 한 그들은 잔혹하리만큼 악과 죄에 무심합니다. 그렇게 악인이 탄생합니다. ‘악인’이 된 이들의 선택과 무심함은 우리에게 커다란 물음을 던집니다. 악의 무감각을 그린 영화 4편을 통해 우리의 역할까지 되새겨봅니다.
악인의 어느 평범한 나날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아우슈비츠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많은 이들이 나치가 세운 아우슈비츠의 강제수용소와 그 안에서 죽어간 수많은 유대인을 떠올릴 것입니다. 학살, 비극이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아우슈비츠는 ‘지옥’이라고도 이야기 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우슈비츠를 ‘천국’이라고 부릅니다. 아우슈비츠의 소장,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들이 사는 집은 넓고 안락하고, 루돌프의 부인 헤트비히가 시간을 들여 정성껏 가꾼 아름다운 정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풍경은 관객에게 조금도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데, 거대한 회색빛 수용소 담장이 집을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담장’으로 루돌프 회스 가족들의 삶과 수용소의 삶을 구분하지만, 담장 안의 삶을 지워내지는 않습니다. 어디선가 가져온 모피 코트를 걸치고,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립스틱을 꺼내 바르는 헤트비히의 모습에서 우리는 코트의 주인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가족들의 평화로운 일상 뒤로 펼쳐지는 검은 연기는 담장 너머에서 불타는 시신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안온한 일상을 이어가는 회스 가족은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 양 행동합니다. 아우슈비츠를 ‘꿈꿔 왔던 삶’이라고 부르는 회스 부부의 무심한 대화는 죄의 무감각을 보여줍니다.

담장 밖의 비명에 무감했던 회스 부부처럼,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통해 우리도 주위의 비극에 무감하지 않았나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학살자의 살인 연극
<액트 오브 킬링>

1965년, 인도네시아에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군부 정권이 들어섭니다. 이후 정부는 반발하는 지식인과 시민들을 공산주의자로 명명하고 처단합니다. 무려 100만 명 이상이 살해된 대학살.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된 안와르 콩고는 ‘판차실라 청년단’이라는 무장 단체에서 당시 대학살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안와르 콩고는 학살자가 아닌 국민 영웅으로 카메라 앞에 섭니다. 가해자들이 승리자가 되어 역사를 썼기 때문입니다.

안와르 콩고와 그의 측근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업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자는 감독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캐스팅부터 대본 작성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카메라 앞에선 그들은 사람들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잔인한 고문을 했던 일, 살인했던 과정 등을 상세히, 그리고 즐겁게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때려죽였지만 그렇게 하면 피가 너무 많이 났다”라며 자신이 개발한 또 다른 살해 방법을 이야기하는 안와르 콩고의 얼굴에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시종일관 웃습니다.
하지만 영화 촬영이 진행되며, 학살자들은 자신들의 진짜 과거와 마주하게 됩니다. 조연으로 캐스팅한 마을 주민들이 실제 학살의 피해자임을 알게 되고, 촬영된 장면이 잔인하게 보인다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14살 아이를 강간한 일을 말하면서도 웃던 그들의 얼굴에서 점차 사라집니다. 학살 피해자 연기를 한 안와르 콩고는 구토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액트 오브 킬링> 속 학살자들은 진솔한 사과와 후회 대신 “해야 했던 일”이라는 자기변호를 반복합니다. 과거를 덮으면 죄도 사라지는 것일까요? <액트 오브 킬링>이 학살자들에게 묻고 싶은 유일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무엇을 좇고 있는가?
<타인의 삶>

베를린 장벽이 굳건하던 시절, 동독은 비밀경찰을 통해 민간인들을 사찰합니다. 비밀경찰 비즐러는 국가의 신념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은 인물로, 자백을 받기 위해 심문 대상을 48시간 동안 재우지 않는 등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 모습을 보입니다. 비즐러는 동독의 유명 극작가인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인 배우 크리스타를 수상하게 여겨 감시합니다. 그들이 사는 집 전체에 도청 장치를 설치해, 모든 순간을 기록합니다. 연인이 스킨십을 하는 것까지 상부에 일일이 보고를 하는 비즐러의 모습에선 어떤 죄의식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극작가 드라이만은 국가와 체제에 순응한 예술가로 보이지만, 점차 국가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검열과 압박으로 예술 활동을 금지당한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이에 분노하며, 동독의 높은 자살률을 폭로하는 글을 작성해 잡지사에 기고합니다. 감시와 밀고, 검열과 압박이 일상이 된 국가가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드라이만의 애인 크리스타는 문화부 장관 헴프에게 성폭행까지 당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삶과 슬픔은 비즐러에게 충격을 안기고, 비즐러는 점차 두 사람에게 동요됩니다.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비즐러의 모습과 그의 선택을 통해, 우리다운 삶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용기를 선택한 삶
<히든 라이프>

영화 <히든 라이프>는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를 위해 싸우기를 거부한 농부, 프란트의 실제 삶을 담아냅니다. 푸른 풀밭이 펼쳐진 소박한 집과 사랑하는 아내, 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프란트는 나치에 징집됩니다. 훈련소에 징집된 후에도 프란트는 밝은 모습을 유지합니다. 아내 파니에게 그립다는 편지를 보내고 훈련소에서도 친구를 사귀고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훈련소에 온 이유를 점차 깨닫게 됩니다.

당시 나치는 여러 국가를 침략하며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모든 병사는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습니다. 나치의 폭력적인 체제 속에서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됐을까?”라고 고뇌하던 프란트는 고심 끝에 병역을 거부합니다. 체제에 순응하는 것은 프란트가 가진 도덕적인 양심과 종교적 신념, 즉 인간 ‘프란트’를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타 훈련병들이 나치의 선전용 영화를 보며 박수칠 때, 끝까지 침묵을 지키는 프란트의 모습이 눈에 띄는 이유입니다.
병역 거부는 반역으로 여겨져 프란트는 즉시 수감되고, 마을 사람들은 프란트의 아이들까지 비난하고 박해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프란트와 함께 고난의 길을 택합니다. 죽음을 불사하면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신념과 평화를 위한 용기. 무엇보다 강한 ‘선함’을 되새깁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실제 주인공이자 나치 친위대의 중령이었던 루돌프 회스는 전쟁 후 전범 재판에서 “나는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악행에 대한 반성과 후회보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이죠. 루돌프 회스의 변명 위로 수많은 악인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순응하지 않는다면, 분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렇게 악에 무감각해지지 않는다면, 미래는 달라질 수 있을까요? 이미 일어난 수많은 비극은 되돌릴 수 없지만, 또 다른 슬픔은 반복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양심을 지키고, 정의를 말하며, 그렇게 선함을 택하는 용기가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