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공감하는 정원
제주 베케

'제주 베케’에서 발견한
공감의 본질과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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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어원은 ‘나다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선조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걸 가장 아름답다고 여겼던 걸까요. 나다운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공감받을 수 있을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런 아름다움을 잊곤 합니다. 화려한 기술과 인위적인 장식으로 나다움을 감추고, 때로는 자연마저 우리의 방식대로 가꾸려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공감하기 보다, 다듬고 꾸미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이 익숙해진 것이죠.

그러나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조경가 김봉찬은 자연과의 공감을 통해 아름다움을 이끌어냅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수많은 한국의 자연주의 정원이 탄생했습니다. 직접 채집한 씨앗부터 길러내며 국내 최초 암석원을 조성한 평강 식물원, 한국의 자생식물을 활용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도심 속에서 야생 숲을 느낄 수 있는 아모레 성수 정원 등이 그의 손에서 가꿔졌습니다.

그의 철학이 담긴 자연주의 정원은 다른 정원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정원 만드는 일은 이주한 생명들이 낯선 서식처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작업”이라고 말하는데요. 이런 가치관이 집약되어 그의 고향 제주에 ‘베케’ 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곳에서 그가 자연의 눈높이에 맞추며 공감해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볼게요.


아름다움의 본질을 발견한
자연주의 정원 ‘제주 베케’

해당 이미지 출처 및 저작권 : 박영채 / 이 외 이미지 출처 : 에디터 정샘물

제주는 돌과 바람,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죠. 그중에서도 돌과 바람은 깊은 관계를 맺으며 제주만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바람이 거센 날이 잦은 제주에서, 사람들은 땅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돌로 담을 쌓아 바람을 막습니다. 그러나 돌은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장애물일 뿐입니다. 밭을 일구다 나온 돌들은 옆으로 던져지고, 그렇게 쌓인 돌무더기는 돌담이 되기도 하고, 오랫동안 방치되기도 합니다.

그저 흔한 돌무더기에서 정원의 가치를 발견한 것, 그것이 ‘제주 베케’의 시작이었습니다. 베케는 돌무더기가 쌓여 언덕처럼 형성된 것을 뜻하는 제주 방언입니다. 표준어에는 이를 정확히 표현할 단어가 없는데요. 그만큼 제주에서는 돌무더기가 쌓인 것이 얼마나 흔하고 당연한 풍경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경가 김봉찬은 이 돌무더기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그는 돌무더기의 뒤편, 그늘 속에서 자라는 이끼를 보며 이곳에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곳, 방치된 듯 보이던 공간 속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생명의 흔적을 본 것입니다.

자연의 눈높이에 맞추며 공감하는 공간

그는 자연에 공감하는 방식으로 ‘눈높이 맞추기’를 합니다. 이는 주변 환경과의 조화로움,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이 공간은 자연이 주인공이라는 듯이 건축물은 그 일부가 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 외관은 짙은 그레이 톤의 콘크리트와 투명한 유리를 사용합니다. 어두운 톤은 자연과 대비되는 동시에 현무암의 그레이 톤과 조화를 이룹니다.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디자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합니다. 또한 넉넉하지만 과하게 높이 쌓지 않은 층고를 갖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주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의도된 주인공은 ‘이끼로 장식된 어두운 땅’입니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이들을 조명하기 위해 돕고 있습니다. 베케 뮤지엄 건물에서는 이끼 정원을 내부 창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요. 독특한 건 실내 바닥을 지하로 파서 반 층 낮게 설계되어 있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통창은 바깥 풍경을 넓은 시야에 담을 수 있도록 높게 설계되는데 말이에요. 이 공간에서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이끼와 땅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봅니다. 낮은 자세로 자연을 보면서 식물과 곤충의 작은 움직임을 살피고 공감하게 합니다. 내부에 너무 밝은 조명을 쓰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적당하게 어두운 감도는 방문객의 시선이 이끼 정원에 집중하도록 유도합니다.

베케 뮤지엄 건물 내부, 땅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이끼정원’

자기다움을 존중하는 정원

베케의 정원은 각 식물의 특성을 고려해 저마다의 자기다움이 드러나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계단 밑에는 습하고 그늘진 곳에는 이끼와 고사리가, 햇빛이 잘 드는 곳에는 수국이 자리 잡았습니다. 토양, 기후, 습도 등 서식처에 맞는 식물을 선택하고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햇빛이 필요한 식물과 그림자가 필요한 꽃과 풀이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정원을 따라 걷는 길도 저마다의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제주 올레길에서 영감을 받아 부드럽게 구불구불한 동선으로 이어진 길은 다양한 테마를 가진 정원을 연결합니다. 나무 테크, 돌, 흙 등 다양한 재료로 구성되어 보는 매력도, 걷는 매력도 더해줍니다. 일부 구간은 식물이 뻗어 나와 흙길을 따라 걷게 되어 자연을 직접 느끼게 합니다.

계단 밑, 그늘진 환경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이 적절한 환경에 자리 잡고 있다.
조경가 김봉찬의 정원에서는 크고 화려한 식물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생명이 공생할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한다.

베케에서는 사람도 정원의 일부가 됩니다. 자연스럽게 놓인 나무 의자와 테이블은 방문객들에게 잠시 쉬어갈 공간을 제공합니다. 정원 한가운데, 나무 사이로 놓인 테이블과 의자는 특별히 격식을 갖추거나 화려하게 꾸며져있지 않습니다.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도 자리를 내어준 것처럼 잠시 머무를 공간이 비어져 있습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서로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조경가 김봉찬은 국내 최초이자 최고 수식어를 갖고 있는 자연주의 정원 대가이지만 자연 앞에서는 겸손한 태도를 강조합니다. “자연 안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주 작다”라고 말하면서요. 제주 베케는 베테랑 조경가의 탁월한 손길과 자연을 향한 깊은 성찰, 제주에 대한 높은 이해를 품고 있습니다. 그의 정원에서는 누구라도 혼자 뽐내지 않습니다. 생태계 전체의 균형과 관계를 존중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자연의 눈높이에 맞춰 진정한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의 공감,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고 싶다면 제주 베케를 방문해보세요.

사람도 정원의 일부가 되도록 배치된 테이블과 의자들.
제주 베케의 정원을 따라 걷는 길도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다.

제주 베케 방문하기


“공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땅이 되고 건축이 되고 심지어 공백이어야 한다.”

정원을 통해 자연에 공감하는 조경가 김봉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한 공감은 대상의 입장이 되어 직접 느껴봐야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감하는 순간, 대상이 가진 본래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자연과 공감해야 할까요?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곧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공감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연과 연결된 우리 자신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주 베케는 자연의 본질에 공감하기 위해 땅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연의 눈높이에 맞추는 법, 그리고 우리 자신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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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샘물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예술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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