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앳된 얼굴의 유튜버는 자신이 무기력에 빠진 지 오래되었으며, 우울감에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차분히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용기도 인상 깊었지만, 필자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댓글 창이었습니다. 편지처럼 긴 글들이 가득한 댓글 창에는 유튜버를 향한 위로의 말도 있었지만, 자신이 겪고 있는 또 다른 우울과 힘듦에 대해 고백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회사, 연인, 가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과 음식, 운동, 음악과 영화 등으로 위안받았다는 글들 사이 눈에 띄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남겨준 솔직함에 공감되고, 그래서 위로받는다는 문장이었습니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는 말처럼, 솔직함은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됩니다. 하지만 솔직할 때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너와 나를 ‘우리’로 묶는 힘, 세상을 단단히 연결하는 것은 결국 ‘솔직함’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요?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나와 비슷한 사람을 위해, 혹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위해. 솔직한 마음을 가감 없이 적어 내려간 특별한 기록들. 나의 숨겨둔 마음마저 꺼내고 싶게 만드는, 4권의 책들을 소개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첨벙첨벙
『수영일기』

우리가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습니다. 걷는 것부터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이토록 많은 ‘움직임’은 우리가 온몸으로 터득한 시간의 흔적입니다. 처음으로 걸을 때, 달릴 때, 자전거를 탈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지금 새로운 ‘움직임’을 배운다면, 그리고 그 순간을 기록한다면 어떤 내용을 적게 될까요?
누구나 물빛이 반짝거리는 수영장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사람들을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그 풍경을 그냥 넘겨버리곤 하지만, 작가 오영은은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며 “돌고래 같아!” 감탄합니다. 그 마음은 곧장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결심으로 이어져,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수영에 등록합니다. 첫 수영복을 구매하고 수영용품을 챙기고, ‘수학여행 가기 전’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다음날 처음으로 수영장에 몸을 담급니다. 그렇게 『수영일기』가 탄생합니다.
‘움파’를 배우는 순간부터 자유형, 평영, 접영 등 다양한 영법을 차례차례 배우는 시간, 지쳐서 녹초가 된 날, 수영장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 등. 서툴러도, 가끔은 힘들어도 결국 사랑하게 되는 수영의 모든 것을 담은 『수영일기』는 우리 마음속에 특별한 물보라를 일으킬 것입니다.
새콤달콤한 사계절을 맛볼 때
『식탁 위의 고백들』

솔직히 말하자면, 요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요리는 끼니를 적당히 때우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했기에, 가끔 요리하면서도 “정말 귀찮다.” 중얼대곤 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자주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요리에서 어떤 특별함을 느껴, 요리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요?
“발목을 만져보면 흘러나오는 오래된 과일의 기억. 언젠가 우리도 떨어져 멍든 복숭아였던 적이 있겠지. 복숭아는 우리가 몸속에 지니고 태어난 이름이기도 하니까. 복숭아뼈, 라는 말은 듣기에도 참 예뻐서 발목의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나오는 장면이 그려진다. 상처의 중심을 감싸며 향과 빛이 모여들 듯 복숭아뼈에 휘감겨 소용돌이치는 시간과 걸음. 살과 뼈가 부대끼는 아픔과 서글픔.”
_이혜미, 『식탁 위의 고백들』
옥탑에서 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시인 이혜미는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무른 속을 가진 아보카도, 땅속에서도 선명한 색을 품은 ‘외계인’ 같은 당근. 잔뜩 물러져 뚝뚝 흐르는 복숭아… 계절을 따라 피어난 식재료들을 애정으로 매만지고, 라자냐, 라따뚜이 등 색색의 요리로 변신시킵니다.
작가도 처음부터 요리를 사랑했던 것은 아닙니다. 음식은 공허함을 채우는 수단이었다가, 자신을 미워하게 된 순간부턴 음식을 멀리하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하늘과 가까운 옥탑에서 식물을 가꾸고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하며, 작가는 요리를 사랑하게 됩니다. 요리를 통해 조금 더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식탁 위의 고백들』을 보고 있으면, 이 계절이 얼마나 새콤달콤한지 맛보고 싶어집니다.
엄마, 할머니 말고
‘나답게’ 60살 되기
『나는 맘먹었다, 나답게 늙기로』

우리는 자주 “나잇값 좀 해라”는 말을 듣습니다.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할 때도 “나잇값 좀 해라!”, 몽상을 자주 할 때도 “나잇값 좀 해라!”, 심지어는 후드티 입는 걸 좋아한다고 말해도 “나잇값 좀 해라!”는 소리를 듣곤 하죠. ‘나잇값’은 무엇일까요? 있는 그대로 나이 들어가면 잘못된 것이고, 우리는 나이에 따라 반드시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작가 박혜란을 설명하는 단어는 많습니다. 여성학자, 세 아이의 엄마이자 다섯 아이의 할머니… 하지만 박혜란은 자신을 숏컷을 한 사람, CSI 드라마의 광팬이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그런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는 ‘특이한 할머니’로 보일 수 있지만, 작가는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작가는 자신 또한 한때는 제대로 나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합니다. 쉰 중반에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성숙해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순 살 중반이 된 후, ‘나이 듦’을 너무 비장하게 받아들인 것을 깨닫습니다. 40살이라고, 60살이라고, 엄마라고, 할머니라고 전혀 다른 ‘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도 그랬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엄마 노릇은 여러 모로 내 능력을 뛰어넘는 것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나는 결국 내가 생각하는 대로의 엄마 노릇을 하기로 했고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아이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난 엄마답게 살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나답게 살았던 것뿐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슬그머니 ‘시어머니다움’이나 ‘할머니다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고 그냥 내가 생각하는 대로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할머니 노릇을 하기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즉 나는 맘먹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냥 나답게 살기로. 그러자 나이듦의 무게가 한결 줄어들었다. 사는 게 그럴 수 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_ 박혜란, 『나는 맘먹었다, 나답게 늙기로』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은 작가는 젊은 여성들의 파티에 초대받고, 혼자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할머니가 됩니다. 나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늘어갈 때 『나는 맘먹었다, 나답게 늙기로』를 펼쳐보세요. 지금보다 즐겁고 가벼운 마음을 가진 60대의 우리가 궁금해지게 될 것입니다.
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아침의 피아노』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삶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것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_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길었던 영화, 두터운 소설에도 끝이 있듯이 우리도 언젠간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운 죽음의 순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해야 할까요?
『아침의 피아노』는 철학자 故 김진영의 암 선고와 함께 시작됩니다.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환자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작가는 좌절하는 대신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적습니다.
『아침의 피아노』는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잊지 않았던 세상과 삶에 대한 애정, 사랑의 고백입니다. 작가는 암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아내와 아이를 배웅하고, 때때로 산책하고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들고, 계속된 치료에 힘에 부칠 때도 힘들다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모든 일기마다 사랑의 주체인 나를 되새기며,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겠다고 적어 내립니다. 어떤 순간에도 사랑을 잃지 않던 이의 일기는 “내 마음은 편안하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일기를 덮은 뒤에도 사랑을 노래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오래도록 생각나는 이유일 것입니다.
새해가 돌아올 때마다 몇 가지 다짐들을 다이어리에 적습니다. 올해는 좀 더 많은 것을 읽고, 좀 더 좋은 곳에 가고, 조금 더 많은 것을 모아야지 다짐했습니다. 이뤄야 할 것들로 가득한 목표들 속에, 정작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빠져 있었음을 타인의 일기들을 읽다 뒤늦게 깨닫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나를 기록하는 것을 잊다, 나에 대해선 차츰 까먹고 있지 않았나 하고요.
어느새 새해의 첫 달이 지났습니다. 곧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여름이, 가을이 다시 또 다른 겨울이 오겠죠. 지금 이 순간의 우리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 오늘부터 나를, 마음을, 내 안의 솔직함을 기록해보면 어떨까요? 그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면. 일 년 뒤 지금보다 깊어진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