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서 건축이라는 분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해외 건축가의 유입이 눈에 띄게 증가했기 때문이지요. 특히,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 총감독에 영국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의 선정, 부산시 명예 자문건축가에 네덜란드 건축가 위니마스가 위촉은 최근의 경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해외 건축가의 국내 활동은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DDP의 건립 당시 지역성과 역사성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있었고, 최근 노들섬과 같은 국가 차원의 사업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이뤄지곤 하지요.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나 관습 따위에 대한 고려 없이 화려하고 상징적인 디자인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비판과 논란 없이 한국에서 작품활동을 지속하는 건축가, 마리오 보타. 우리나라에 8개의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지어질 예정인 미술관을 포함하면 9개의 작품을 남겼지요. 이는 서양의 건축가 중에서는 가장 많은 국내에서의 활동을 이어가는 인물입니다. 그가 꾸준히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지역과 정서를 파악하고, 그 덕분에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건축적인 철학과 국내의 대표작품을 함께 만나보시죠.
마리오 보타
마리오 보타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사무소는 스위스 남부 티치노 지방에 있으며, 이곳은 그의 주된 작품활동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그의 초기 작품 대다수는 해당 지역의 크고 작은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이었으며, 소위 동네건축가와 같은 이미지였죠. 시간이 흘러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 전 세계를 누비며 건축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이지만, 여전히 티치노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의 고향이기도 한 티치노의 멘드리시오에 건축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방향과 철학을 정립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요. 저명한 영국의 건축학자 케네스 프램튼은 이러한 그의 건축활동을 통해 일찍이 그를 지역주의 건축가로 평가한 바 있지요.

한 지역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그의 건축은 왜인지 정감 있고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전통적인 건축의 방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주로 벽돌이나 석재, 테라코타 등 친숙한 재료를 외장재로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형태에 서도 대칭이나 반복과 같은 간결한 기하학적 어휘를 사용합니다. 그의 50여 년간의 포트폴리오를 훑어보면 장소나 규모, 용도에 구애받지 않고 늘 유사한 디자인의 특성이 발견되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교보강남타워
강남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교보타워는 마리오 보타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2003년에 준공된 이 건물은 100m가 넘는 높이를 자랑하는 마천루임에도 벽돌의 외장재가 사용되었다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현대의 대도시를 상징하는 유리와 철로 지어진 고층 건물들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보이지요. 당시 건설기술로는 고층건물에 벽돌을 사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도전이었습니다. 교보타워의 영향으로 이후 우리나라에도 고층의 벽돌건물이 지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를 만큼 기술적으로도 대단한 건물이지요.

형태는 소박하고 묵직한 두 개의 거대한 비석이 나란히 올려 놓인듯한 인상을 줍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자칫 쌍둥이 빌딩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교보타워에도 그가 자주 사용하는 대칭적인 표현이 적용되었지요. 당시 준공사진을 살펴보면 강남이 지금만큼 개발되지는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통행량이 가장 많고 지리적으로 중요한 교차로의 대지에 설계를 의뢰받은 그는 랜드마크적인 디자인을 펼칠 기회가 마련된 셈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절제된 형태미와 친숙한 벽돌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였고, 이러한 태도에서 그의 건축적인 철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오히려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고층빌딩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죠. 교보타워가 놓인 신논현역의 사거리는 교보타워 사거리라는 정식 명칭을 갖게 될 만큼, 강남 내에서 그 입지를 굳건히 지키게 되었으며, 우리에게도 친숙한 건물로 인식되는 듯합니다.

리움 미술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자리 잡은 리움 미술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 중 하나입니다. 매번 새롭고 흥미로운 전시가 진행되어 많은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또한, 삼성가의 수준 높은 소장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양한 문화·예술적 가치에 대한 향유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리움 미술관은 3명의 건축계 거장에 의해 설계되어 2004년에 준공되었습니다.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되어있지만, 주요 건물은 3개의 건축물 ‘M1, M2, 아동교육문화센터’로 나누어진 셈입니다. 그 중 마리오 보타는 M1의 건물을 디자인하였고, M2는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 아동교육문화센터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에 의해 설계되었지요. 이러한 유명 건축가가 모인 대형 프로젝트는 전무후무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각 건물은 그들의 명성에 맞게 훌륭하게 설계되었습니다. 자신의 스타일이 뚜렷한 3명이 각각 한 동씩 나누어 디자인했기 때문에 조화롭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독특한 미술관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배경이 되기도 하지요. 또한, 각 건축가는 한국적인 요소를 나름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하여 디자인했습니다. 특히 마리오 보타의 M1의 전체적인 형태는 전통 도자기의 곡선을 연상시키고, 내부의 중심공간인 원형 계단은 전통마당을 수직적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평가받지요. 물론, 재료는 벽돌로 선정하였고요. 이러한 디자인적인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그가 가진 지역주의 건축가의 면모는 시공 과정에서도 발견됩니다. 세 명의 건축가 중에서 유일하게 시공 과정까지 참여한 인물이라는 것이지요. 그는 벽돌을 쌓는 방식에서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을 고집하였고, 곡선의 벽면을 벽돌로 시공하는 것에 대한 조율을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현지의 실무자들과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우수한 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건축문화대상 등 다양한 수상을 돕는데에도 큰 역할을 하였지요.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남양성모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입니다. 조선 후기의 병인박해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이며, 교황청에서 선정한 대표 성지 30곳 중 하나로 선정된 의미 있는 지역입니다. 1980년대 후반에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곳을 한국의 대표적인 성모 성지로 만들 것을 기획합니다. 성지를 기획하던 이상각 신부는 기존의 평범한 성지가 아닌, 자연과 가깝고 더욱 대중적인 장소로 만들기를 희망했습니다. 이에 직접 유럽 건축기행을 다녀오고, 많은 유명 건축가들과 함께 마스터 플랜을 꾸려나갔습니다. 그리고 2011년에 대성당 건립을 추진하였고, 마리오 보타에게 설계를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이상각 신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빛과 음향이었습니다. 종교건축에서 특히 중요한 이 두 가지 요소는 특별한 기계적 장치가 아닌 건축적인 설계의 기법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였습니다. 가령, 지하의 공기터널을 통해 자연스러운 환기 시스템을 구축하고, 바람의 방향에 따른 개구부의 위치선정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또한, 높게 솟은 두 개의 탑은 최소한의 상징성을 가지면서도 빛과 음향을 조절하는 거대한 장치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면밀한 설계는 대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였고,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는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설계를 진행하게 되었지요. 무엇보다 단순한 재료인 벽돌을 다양한 쌓기 기법을 활용하여 색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지형에 순응하며 얹힌 대성당의 형태는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합니다.

마리오 보타는 유독 많은 종교건축물을 설계했습니다. 물질적인 것을 뛰어넘는 인간의 영적인 감각을 다루는 것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지요. 교회, 성당, 이슬람 사원 등 다양한 종교를 넘나들며 말이죠. 그가 종교와 관련된 건축물을 대하는 태도와 설계과정은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오 보타:영혼을 위한 건축>(2020)에서 자세히 표현되었습니다. 특히, 영화 내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은 그의 많은 노력이 담겨있음을 보여줍니다. 눈 내리는 겨울날에도 현장에 방문하여 직접 실무자와 소통하고, 성지에 대한 역사, 종교적 가치를 평가하며 건축가의 책임을 강조하지요.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작품활동을 한 해외 건축가는 안도 타다오, 그리고 그 두 번째인 마리오 보타. 앞서 언급한 교보타워와 리움 미술관과 같이 유명한 건축물을 남긴 그이지만, 대중들에게 인지도는 다소 부족한 듯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건축물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소탈하게 도시에 자리 잡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리오 보타의 건물은 화려한 장식과 독특한 형태를 통해 도시 안에서 주인공이 되려는 의지 없이, 평범한 조연과 같은 모습으로 스며듭니다. 이는 그의 건축이 우리에게 친근하고 익숙하게 다가오고, 공감을 일으키는 공간이라는 것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