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적인 일기로
공감의 연대를 이끄는 작가들

가장 개인적인 치부가
보편적 감정의 연대를 일으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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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가장 연약한 살을 맞대고 있는 사람에게서 잔인함을 겪곤 합니다. 나의 연약한 부분마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이이기에 가장 잔인하게 살을 에는 아픔을 주기도 하죠. 개인의 깊고 복잡한 상처에서 출발한 창작물은 일기와도 같습니다. 스스로를 타자화하면서 고통을 객관화하고 재경험하기도 하죠. 그 과정에서 상처의 진원을 묻어두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상처 받은 자신의 오래된 고백을 듣는 과정에서 흉터와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연약한 치부가 담긴 일기는 우리로 하여금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감정의 전달자이자 치유의 도구로 기능하곤 합니다. 동시에 작품이 담고 있는 가장 사적인 상처와 치부는 관객으로 하여금 가장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되며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이토록 개인적인 상처는 창작으로 승화하는 여정을 통해 향유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희망과 회복의 가능성을 들려주곤 합니다. 가장 사적인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타자의 공감의 연대로 향하는 과정을 담은 자전적인 작품을 통해서 공감의 본질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루이스 부르주아
복잡한 내면을 견고한 감정의 구조물로

이미지 출처: 루이스 부르주아의 개인전 전경

깊숙한 상처 속에서 곪아있는 불안과 분노를 우리는 어떻게 고백할 수 있을까요? 루이스 부르주아는 억압된 감정과 상처를 커다란 조형물 속에 감정의 언어로 풀어내 담아냅니다. 특히 그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불안정하고 폐쇠적인 구조는 심리적 억압과 그녀가 오롯이 느꼈던 감정의 무거움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심리적인 폐쇄감은 단순히 작가의 트라우마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닌 각자만의 감정적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독특한 표현은 그녀가 겪었던 가족사와 그로인한 심리적 영향으로 빚어졌습니다. 어머니의 병약함과 이른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권위주의적 태도와 호색한은 그녀의 작품에서 불안, 상실감, 트라우마, 배신감, 죄책감 등 복합적인 감정은 흉터처럼 떼어 놓을 수 없게 했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 엄마(Maman), 1999년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을 보면 공통적으로 관계에서 비롯된 불안과 트라우마를 차갑고 견고한 질감을 통해 시각적으로 풀어냄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 엄마(1999)를 보면 커다랗고 얇고 불안정한 듯 견고한 거미 형상이 배에 알을 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미는 섬유를 다루는 일을 하던 그녀의 어머니와의 복잡한 감정적 유대를 상징합니다. 재질로 하여금 차가우면서도 견고함을 불러일으키며 갸냘픈 긴 다리는 불안정함을 선사하며 양가적이며 복잡한 감정을 탄생시킵니다. 보호자인 동시에 언제 쓰러질 지 모르는 불안함, 그럼에도 아이를 지켜내기 위한 강인함이 느껴지는데요. 이는 단순히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모성의 강인함과 불안정성은 이 작품을 보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 아버지의 파괴, 1974년
루이스 부르주아, Cell XXVI, 2003

작품의 형태와 재료뿐만 아니라 그녀의 작품에서 공간의 구조는 그녀의 심리적 억압과 감정의 무거움을 토로하는 장치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의 파괴(1974)와 Cells 시리즈 (1989–1993)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요. 각각의 작품은 어둡고 음침한 공간 안에 유기적인 작품과 의자, 거울, 침대와 같은 사적인 오브제들이 배치되어 있는 설치 작품들입니다. 폐쇄되어 있는 공간으로 하여금 그녀가 느꼈던 심리적 폐쇄감과 불안정성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요. 그녀 또한 작품을 제작하면서 여러가지 감정들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억압된 감정과 상처를 폐쇄된 공간 안에서 마주하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그녀의 솔직함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마주하고 진정한 공감의 확장을 보여줍니다.


프리다 칼로
아픔과 회복의 자화상들

프리다 칼로, 가시나무 목걸이와 벌새가 그려진 자화상, 1940

때로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용기이기도 합니다.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상흔과 함께 살아내기 위한 용기가 켜켜이 쌓여가고 있는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아름답습니다. 이 모든 삶의 과정을 통틀어 자화상으로 담아낸 작가 프리다 칼로가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기 자신’입니다. 어린 나이부터 신체적 고통을 수반한 채로 겹겹이 다가오는 사고로 더더욱 신체적으로 몸은 망가졌고,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홀로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너무나 자주 혼자였기에 자신을 제일 잘 알게 되었고, 자신의 상처 또한 낱낱이 서술합니다.

프리다 칼로, 떠 있는 침대(헨리 포드 병원), 1932

칼로의 자화상에는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초현실적인 한 편의 시처럼 써내려갑니다. 떠있는 침대(헨리포드 병원)(1932)에서 그녀는 유산을 경험한 순간을 적나라하게 그려냅니다. 건조한 하늘과 삭막한 땅 사이에 존재하는 자신과 흩어져 있는 신체의 일부와 유산된 아기가 떠다닙니다.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1939

신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도 켜켜히 묘사하는데요. 두 명의 프리다(1939)작품에서는 두 자아를 통해 자신의 복합적이고 충돌하는 감정을 묘사합니다. 이혼 이후 그녀의 남편인 디에고를 사랑하는 자신과 디에고를 거부하는 자신의 손을 서로 붙잡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깨달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각조각 파편화된 마음을 하나로 규정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모순된 감정의 한 구석을 도려내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요. 이처럼 칼로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시는 모든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상실의 경험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그녀의 자화상은 그저 칼로 개인의 얼굴이 아닌, 우리 모두 경험하는 아픔과 회복의 과정에 대한 은유를 반추할 수 있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인 듯 합니다.


상처와 사랑이 뒤섞인
트레이시 에민의 캔버스

트레이시 에민, My Bed, 1998

침대 시트 위로 신체 분비물로 얼룩져 있고 생리혈이 묻은 속옷은 적나라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빈 술병, 속옷, 사용한 콘돔, 담뱃갑, 슬리퍼, 쓰레기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모습의 작품, 바로 트레이시 에민의 My bed(1998)입니다. 침대 위로는 일상적인 사물들이 그녀의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을 적나라하게 공유합니다.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는 작가의 가장 밑바닥 상태를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 전시해두었는데요. 작품을 보다 보면 무기력의 심연에 빠진 우리의 취약하던 순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트레이시 에민, My Bed, 1998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은 시절의 증언이자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한 구원이였을 지도 모릅니다. 유년기의 트라우마와 관계에서 비롯된 만성적 우울증과 불면증은 에민의 일기 곳곳에 떼어 놓을 수 없는 주제입니다. 그녀의 작품은 감추고 싶은 상처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용기에서 시작되는데요. 삶 속에 녹아든 일상품은 작가의 다짐을 전달하고 관객이 가진 불온전한 시절을 불러내는 향수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트레이시 에민,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
트레이시 에민,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

작품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95)에서 이러한 장치가 선명하게 드러나는데요. 단순해 보이는 텐트 위로는 1963년부터 1995년 까지 작가와 함께 잔 102명의 사람의 이름을 보여줍니다. ‘같이 잔’ 사람은 꼭 성관계를 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같이 잠을 잔 사람도 포함됩니다. 그 때문에 이름에는 가족, 친구, 술자리 파트너, 연인, 태아와 같이 다양한 관계가 나열됩니다. 사랑하면서도 자신에게 상실감을 전달한 애증의 관계 모두 가감없이 버무려 냅니다. 이처럼 작가에게 일상적 오브제인 텐트는 친밀함과 취약함, 상처와 사랑이 뒤섞인 기억의 캔버스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트레이시 에민, I Want My Time with You, 2018

또한 작가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텍스트 역시도 감정을 명확하고 직설적으로 시각화합니다. 네온 사인 작품 I Want My Time with You (2018)는 짧은 문장이지만, 붉은 네온 사인 문구는 과거의 사랑과 그리움을 짧지만 강렬하게 비춰냅니다. 직설적으로 써내려간 그녀의 고통과 슬픔의 재현은 단순히 과거를 서술하기 보다는 충분히 그 시절을 반추하고 보편적인 사랑과 상실의 감정을 유심히 지켜보고 받아들이는 삶의 취약하고도 아름다움을 서술합니다.


이토록 연약한 개인의 상처의 고백은 각기 다른 형태를 띄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감정의 흔적을 비춥니다. 말하지 못했던 상처와 감정을 예술이라는 감정의 언어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묻어두었던 치부를 되돌아보고, 공감하며, 치유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감정의 일부라는 점에서 공감의 연대를 불러일으킵니다. 어쩌면 예술은 감정을 공유하는 교환 일기와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사적인 치부를 담아낸 작가들의 일기를 통해 작가 스스로와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에 대한 감정의 연대로 각자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이와 함께 살아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충분히 반추한 과거와 덕분에 탄탄해진 현재가 우리의 미래를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필연적으로 다가올 상처 앞에서도 의연해질 수 있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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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바람들을 느끼며
예술의 향유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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