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부정에서 자기긍정으로
전진하는 세계

삶의 비의도, 환희도 응원하는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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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을 의미하는 공감이라는 말이 부쩍 흔해진 요즘입니다. 잦은 사회 갈등 속에서 공감을 언어로 소환하려는 역설이 펼쳐지는 듯합니다. 그런데 타인을 전제로 힘을 발휘하는 이 덕목을 생각하다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공감의 방향은 언제나 외부를 향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혹시 우리는 자신을 향한 공감은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자기 부정으로 인해 마음의 병을 짊어지면 상대를 향한 넉넉함을 갖출 여력도 없어지겠지요.

이런 의문의 실마리를 찾는 과정에서 만난 대상은 바로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작품들입니다. 흥미롭게도 데뷔작을 포함해 이어지는 3편의 장편 영화는 한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자기긍정성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토토의 천국>,
과거와 화해하기

이미지 출처: IMDb

노인 토토는 삶을 의심합니다. 태어난 병원에서 일어난 화재로 우연히 부모님이 바뀌면서 인생 역시 뒤바뀌었다고 여깁니다. 이웃집 알프레드가 이룬 것이 곧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고 믿습니다. 넉넉한 가정에서 굴곡 없는 성장기를 지내고 부를 축적한 알프레드의 길과는 대비되는 삶이 토토를 끊임없이 괴롭게 합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실종, 누나의 죽음과 같은 불행이 알프레드와 연관된 탓이라는 마음에 증오는 더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그렇게 토토는 평생을 알프레드라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여유도 모두 잃은 노인이 된 토토는 끝내 알프레드를 죽일 결심을 하고 찾아갑니다. 하지만 알프레드가 토토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다릅니다. 오히려 토토의 인생을 부러워했다는 고백. 어쩐지 무력감마저 들게 하는데요. 덧없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기 위해 토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토록 원했던 알프레드의 모습이 되어 봅니다. 토토는 과거로부터 비로소 해방될 수 있을지 긴장이 고조됩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호했던’ 자기 부정과 연민은 비극적 정서를 지배하지만 ‘마침표’는 약동의 가능성을 남겨 놓네요.


<제8요일>,
현재에 충실하기

이미지 출처: IMDb

공통점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두 남자가 갑작스러운 기회에 서로의 인생에 끼어듭니다. 세일즈 기법을 전수하는 강사 아리는 늘 고객 응대 시 눈을 마주할 것, 웃을 것, 성공한 인상을 줄 것, 열정적일 것이라는 네 가지 원칙을 교육자들에게 주입하는 일중독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가정생활은 원만하지 않습니다. 별거 상태로 지내는 가족과는 가끔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약속도 이행하지 못해 사이가 좋지 않고 외면할 뿐입니다.

한편 다운증후군 청년 조지는 단단한 결심을 하고 생활하던 요양원에서 나와 엄마를 찾아 나섭니다. 사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목적지도 없지요. 이때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아리와 조지의 동행이 시작됩니다. 아리와 조지는 서로의 일상을 점유하게 되고 서서히 변화를 맞이합니다. 특히 무미건조했던 아리의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또 전에는 마주할 수 없던 나무, 풀, 무당벌레, 이런 사소한 주변에, 자연의 ‘살아있음’에 동화됩니다. 아리와 조지가 빠져드는 ‘우리만의 시간’은 관객의 마음에도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는 온전한 1분으로 흐릅니다. 디제시스적 시간과 보는 이의 시간이 동등해지며 지금을 감각하게 만드네요. 덧없지만 행복을 발굴하기에 이보다 탁월할 수 없는 현재라는 재료는 찬란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스터 노바디>,
모든 가능성을 존중하기

이미지 출처: IMDb

죽음을 눈앞에 둔 118세 니모가 한 기자와의 인터뷰를 가집니다. 2092년, 유전 공학의 발달로 모두가 영세를 누리는 시대이기에 니모가 곧 죽는다는 사실은 이례적입니다. 기자 앞에서 그는 삶을 회고하며 이혼하게 된 부모님 중 한 명을 선택해 지낸 일을 털어놓습니다. 그런데 그의 증언은 어머니를 선택했을 때의 삶, 아버지를 선택했을 때의 삶이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일생일대의 선택이 낳은 길이 경우에 따라 세 여자와 각기 달리 결혼해 사는 것으로 나아가고, 갈래 속 분기점들은 또 새로운 인생을 파생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진짜 니모의 삶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에는 어쩐지 ‘만약에’라는 가정이 뒤섞여 있는 듯합니다.

혹은 118세 니모는 아직 ‘아무도 아닌 자’, 미스터 노바디인지도 모릅니다. 젊은 니모가 자신의 선택으로 펼쳐질 경우의 수, 무엇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미래를 그리는 것도 같습니다. 수수께끼를 남기고 미소 지으며 숨을 거두는 니모. 환희마저 느껴지기에 어떤 삶도 후회는 없(었)으리라. 어떤 방향이라도 시련,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끝내 운명의 얼굴을 미소로 빚는 건 선택과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이라고 여겨집니다.


세 작품에는 모두 삶 곁에 죽음이 서려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죽음의 정서가 결코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은 등을 맞댄 게 아닌 서로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고 말하는 해탈적 세계관 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자신의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결국 사랑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따뜻해지고 싶을 때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작품들을 꼭 접해보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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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단면에서 철학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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