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음악은 어떻게
공감대를 형성하는가

새로운 음악 감상 문화
댓글로 쓰는 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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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인류는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시위 현장에서 같은 노랫말로 연대하고, 한 아티스트에 열광하는 팬클럽을 이루고, 비주류 장르 음악을 선호하며 형성된 하위 문화에서 관찰할 수 있듯이, 이들은 음악을 통해 일체감을 느낀다. 물론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서 음악을 즐기는 것만으로 타자와 연결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음악을 여럿이서 함께 즐기는 방식은 다양하다. 다 같이 모여 악기를 연주하거나, 클럽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공연장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처럼. 그리고 또 한 가지, 같은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음악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여기서 공간은 음악 감상을 위해 계획된 LP 바가 될 수도 있고,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누군가의 집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특정 공간에서 음악으로 공감을 나누며 대화한다. 특히 온라인에서 주로 소비되는 요즘 음악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이는 댓글 창에서 드러난다. 마치 같은 음악 아래 여럿이 춤을 추듯이 댓글 창에서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털어내느라 북새통을 이루면서.


소수의 살롱 문화와
다수의 댓글 문화

Anicet Charles Gabriel Lemonnier, “In the Salon of Madame Geoffrin in 1755”, 1812, Château de Malmaison

18-19세기 유럽에서는 왕후 귀족이나 상류층이 모여 음악을 연주하거나, 예술에 대해 토론하는 사교 문화가 발달했다. 주로 귀족 부인들의 주도로 살롱(Salon)에 지식인들이 모여 사상을 나누고 문화예술을 교류하는 ‘살롱 문화’였다. 하지만 음악을 녹음해 보급할 수 있는 기술이 없던 당시, 동일한 음악을 들으며 의견을 나누는 건 소수의 문화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요즘엔 어떨까?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인기 차트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마다 살롱에 모여 대화할 필요 없이 댓글 창을 열어 언제든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같은 음악을 감상하고, 음악을 매개로 공감대를 이루던 소수의 살롱 문화는 이제 다수가 접속하는 댓글 문화에서 재현된다.

오늘날 음악을 듣고 댓글로 소통할 수 있는 채널 중 가장 대표적인 공간은 유튜브다. 애플 뮤직과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전문 서비스에 비해 유튜브는 댓글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유튜브로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선곡한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수 있고, 음악과 영상이 더해진 콘텐츠를 즐길 수 있으며, 댓글을 통해 ‘함께 듣는 음악’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이는 평범한 감상자들이 모여 집단성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과 영상이 재생되는 댓글 창에서는 살롱에 초대된 다수의 감상자가 내밀한 사연을 공유하고 활자로 떼창을 부르며 교류한다.


사적인 경험과
감정의 토로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Nam’

유튜브 댓글 창은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이다. 이 특성은 감상자를 무장 해제시키며 음악에 얽힌 사적인 경험과 감정을 털어놓게 만든다. 공감대가 형성된 익명의 공간에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음악이 재생되는 짧은 시간 동안 연대와 일체감을 느낀 감상자들은 솔직한 이야기를 토로한다. 예를 들어 ‘랜덤 우울 오마카세’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에서는 평소 우울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비슷한 공감대의 이야기에 반응한다. 댓글 창에 각자의 진솔한 고백이 이어지며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는 마음이 기록되는 현상이다. 이처럼 익명의 댓글 시스템은 일종의 긍정적인 연대감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스포티해장국’

10여 년 전에 업로드된 뮤직비디오, 혹은 어느 뮤지션의 라이브 영상을 보다 보면 간혹 최신 댓글을 발견할 때가 있다. 수년이 지나도 생각날 때마다 방문해 음악을 감상한다는 댓글은 종종 높은 공감 수를 기록한다. 대단한 감상평이 아니더라도 흘러간 옛 노래를 지금까지 찾는 이가 또 있다는, 심지어 많다는 사실은 예상외로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사실 기억과 정서는 음악에 반응한다. 우리는 특정 음악을 통해 과거의 한순간을 떠올리고, 이때 재현된 감정을 통해 타자와 강렬히 연결된다. 유튜브에는 추억의 음악을 모아놓거나 첫사랑과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한 플레이리스트가 다수 존재하며, 댓글 창에는 감상자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썰’과 ‘좋아요’가 난무하는 걸 볼 수 있다.


과몰입 담론과 놀이 문화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때껄룩TAKE A LOOK’

유튜브 채널에서 댓글은 음악과 더불어 한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담론을 형성한다. 음악을 만든 작곡가와 플레이리스트를 선곡한 유튜버의 의도와 무관하게 감상자들끼리 향유하는 담론이다. 그리고 담론은 놀이 문화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사극 과몰입 플리’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사극에 어울릴 법한 음악들이 연이어 흐른다. 이때 몇몇 댓글이 눈에 띈다. 갑자기 소설을 써달라는 댓글과, 이에 주저 않고 시와 소설 한 편을 뚝딱 써내려가는 댓글들. 플레이리스트 댓글창에는 어느새 조선시대 명필들이 모인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댓글창은 일종의 백일장이 되어 ‘누가 더 창의적인지, 더 많은 공감을 받는지’ 겨루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같은 음악을 들으며 주고받는 댓글과 2차 창작은 새로운 형태의 음악 감상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살롱에서 부유한 계층이 예술가를 초대해 후원하듯, 오늘날의 댓글창에선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이에게 ‘좋아요’를 부여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들은 음악을 듣고 나누며 끊임없이 새로운 즐길 거리를 찾는다.


방구석 평론과 해석의 장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zboy0’

과거 살롱 문화를 이끌었던 건 대부분 상류층의 지식인들과 예술가였다. 반면 요즘 댓글 문화는 입장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 가운데에는 방구석 평론가도 존재한다. 평론하기 위해 전문적인 코스를 밟고 위임받은 것은 아니지만, 음악이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며 개인적인 의견을 남기는 것이다. 이때 충분히 설득력 있는 평론은 많은 공감을, 그렇지 못한 평론은 비판과 반대 입장의 대댓글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방구석 평론가의 의견은 타당성과 무관하게 존재 자체에도 의의가 있다. 음악을 탐구한다는 건 음악가와 감상자가 공통된 관심을 갖게 된다는 의미인데, 이때 감상자는 존재감과 행복을 느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네덜란드 출신 음악가이자 교육자 크리스토퍼 스몰은 이들의 ‘공통 관심’이 곧 이상적인 사회관계를 구축한다고 믿는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희죤’

방구석 평론가는 유튜브에 업로드된 음악이나 뮤직비디오의 숨겨진 메시지를 파헤치고, 구간별로 해석을 남기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음악을 즐긴다. 서로의 해석이 갖는 오류를 지적하거나 공감되는 평론을 지지하는 등의 형태다. 비록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이와 같은 평론과 담론은 현재까지 살롱 문화가 현존한다는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살롱은 시공간을 초월한 비대면이지만.


같은 시간에 라디오를 켜놓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서로의 사연에 공감하던 사람들. 그들에게 CD플레이어와 MP3플레이어가 보급되면서부터 음악 감상은 한동안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음악에 코멘트를 남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함께 듣고 즐기는 문화가 다시금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댓글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댓글 창은 음악을 매개로 공감대를 나누는 새로운 문화이자 공간이 되어준다.

책 『음악은 왜 중요할까?』에 따르면 누군가와 함께 콘서트에 가거나, 어떤 가수와 음반이 훌륭한지 논하는 수준의 대화에서 얻는 즐거움은 ‘긍정적인 음악 사회성’을 형성한다. 이처럼 음악을 함께 듣고, 이야기 나누는 행위는 언제나 좋은 감상 문화로 이어져 왔다. 어쩌면 요즘 시대 음악과 댓글은 장작과 불처럼 만나, 같은 공감대를 가진 감상자들을 초대하는 모닥불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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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

좋아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걸 조합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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