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켄드릭 라마의 슈퍼볼 하프타임쇼 공연이 화제입니다. 장르 특유의 ‘디스전’도 인상적이었지만, 그가 담아낸 비판, 풍자, 투쟁 등의 의미 있는 메시지가 더 큰 울림을 주며 기억에 남는 무대였습니다. 어쩌면 지금 미국 사회는 평등의 역방향으로 폭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억압받던 과거, 여전한 차별을 비판하고 투쟁하려는 의지’를 녹여낸 그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수 세기에 걸쳐 자유를 부르짖어 온 이들의 목소리를 다룬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소설이라는 무기를 들고 당대 사람들이 흑인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낸 수작들입니다. 단순한 흑인 역사 기록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우리 주변 곳곳에 스며든 사회 불평등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할 만큼 울림이 큰 작품들이죠. 한 나라의 전쟁을 촉발하기도 하고, 거대한 자유 운동의 불씨가 되기도 했던 3권의 흑인 문학 작품을 소개합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이 소설이 미국의 남북전쟁을 일으켰다’는 말까지 나올 만큼 파장이 컸던 작품,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소개합니다. 작품은 미국 남부와 북부 간 갈등이 곪을 대로 곪아 있던 1852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갈등에서도 가장 민감한 논쟁거리 중 하나였던 노예 제도에 대한 여론에 크게 불을 질렀던 소설이죠. 출간되자마자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올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노예제도의 비인간적인 실상을 깨닫고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인에게 충직한 흑인 노예 ‘톰 아저씨’는 자비로운 백인 농장주 아서 셀비의 농장에서 일합니다. 노예 상인에게 팔려 떠나면서 잔인한 학대와 노동을 견디고, 악랄한 농장주에게 고통받으면서도 주변 노예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폭력을 견디다 못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독자들이 주목한 점은 이 단순한 줄거리가 아닙니다. 다양한 인물의 시선을 바탕으로 당시 노예제도의 참상을 비참하게 그려낸 점이 화제였습니다. 자유를 찾아 도망치는 가족들과 노예제도를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까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가치관을 통해 노예제도가 낳은 사회 구조적 폐해를 선명하게 느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는 ‘악한 백인 농장주는 일부일 뿐 인간적인 노예주도 있다’고 반박하거나 흑인 노예인 ‘톰’의 행동이 지나치게 수동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개인의 선량함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노예 제도의 문제입니다. 선량하고 친절한 백인 노예주도 분명 등장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그들 또한 개인의 문제 때문에 흑인 노예들을 상인에게 팔아야했기 때문이죠. 흑인 노예는 순전히 착한 주인을 만나는 개인의 운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노예라는 신분에서 처절한 학대만 받고 있었던 흑인들에게 더 격렬하게 투쟁해야지 ‘너무 수동적’이라고 비난하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작품이 쓰였던 당시의 사회 인식 수준을 고려해야 하죠.
이처럼 당시 배경을 고려하며 읽으면 훨씬 납득되는 지점이 늘어납니다. 당대 현실과 비교했을 때 오늘 날의 사회상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체감할 수 있고요. 하지만 두 세기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특정 인종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싸워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우리 사회 진보의 속도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게 만듭니다. 톰 아저씨가 현실에 순응하고 신앙을 지키는 데 만족해야 했던 때와는 다른 시대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불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오늘 날 다시 읽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제임스 웬든 존슨은 미국 흑인 문학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당시 흑인 인종 문제를 다룬 소설들을 출간했지만 다수의 백인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자서전’이라는 옷을 입고 1912년에 이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죠. 대부분의 흑인 문학 작품이 노예 제도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흑인이 백인으로 살아가는 선택’이라는 더욱 복잡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다뤄 관심을 받았습니다. 노예해방 이후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들이 어떤 삶의 양태를 지녔는지, 그리고 흑인 대중예술문화의 면면은 어떠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입체적인 책입니다.

작가는 흑백 혼혈인이 ‘검은 미국인’으로서 겪는 정체성 문제를 진솔하게 담아냈습니다. 소속된 집단에서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받지 못하는 사람은 불안정성, 소외감을 기반으로 한 땅을 딛고 위태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렇습니다.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밝은 피부색으로 백인 사회에 받아들여졌지만 흑인이라는 자신의 출생 배경을 알게 되는데요. 미국 사회가 흑인에게 가하는 차별, 폭력, 불평등을 체험하며 그는 흑인이면서도 백인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정체성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고 소개할 것인지가 재능이자 생존력이 되었죠. 자기 향상을 위한 그 노력조차도 사회적 억압 차별로 치부되는 작품 속 세상의 모습을 보며, 자기 향상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조금이라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 깊은 연민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흑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리하게 지적하는 중에도 흑인 문화와 대중예술에 관한 생생한 묘사가 돋보여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빌러비드』

충격적인 소재와 서술 방식으로 화해를 부르짖는 작가 토니 모리슨은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006년에는 뉴욕타임스에서 선정한 1980년 이후 최고의 미국 소설 1위로 뽑혔고, 2012년에는 버락 오바마에게 자유의 메달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빌러비드』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미국 남부의 흔한 농장 ‘스위트홈’에 사는 흑인 노예 ‘세서’와 가족들이 핵심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백인 농장주 가너 부부는 흑인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드문 사람들이었지만, 가너 부부의 죽음과 질병 문제로 새로운 농장주가 된 백인들은 악질이었습니다. 흑인 노예를 함부로 학대하는 악질 농장주에게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세서는 그 중 한 아이를 자기 손으로 살해할 수밖에 없는데, 이 후 그녀의 집에는 가족들을 괴롭히는 어린아이의 원혼이 맴돈다는 소문이 돌게 되죠.

『빌러비드』는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흑인 노예제도의 문제를 첨예하게 고발합니다. ‘유령’처럼 신비로운 소재를 활용해 흑인 여성 ‘세서’의 비극적인 삶을 극적으로 묘사했죠. 독특한 서술방식, 아름다운 문장으로 노예제도의 본질적 문제와 악의 추악함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매우 섬세한 작품입니다. 얼어붙는 경기 속 서로를 밀어내며 각박한 생존게임을 하듯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끔한 주사를 놓는 것 같은 책입니다.
약 40년 전 출간된 작품이지만 지금 읽기에도 적절합니다. 미국 사회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흑인, 그 중에서도 약자에 해당하는 여성의 삶이 묘사된 방식이 충격적이기 때문이죠. 사건이 끝난 후에도 학대의 기억은 한 사람에게 평생 각인되어 유령처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닙니다. 제도가 폐지되었고, 모두 과거가 되었다는 말로 덮어둘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살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이상해지지 않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차별이 묵인되고, 차별을 기반으로 한 제도가 만들어지는 동안 그 대상인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부서지는지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작품들이 출간된 연도를 확인해보면서, 인종 차이가 곧 차별과 억압으로 이어졌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렇게 긴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투쟁해야 하는 현실에 한번 더 놀랐고요. 우리 일상과 크게 맞닿아있지 않은 주제인데, 굳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든, 어디서든,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차별의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들을 쓴 작가들은 역사가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미래의 독자들에게도 경고를 보낸 것이죠.
요즘은 눈에 보이는 차이로 쉽게 타인을 비난하고, 단절시키며, 학대하는 비인간적인 차별을 반복하지 않도록 서로를 상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위기 일발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하는 것은 그저 한 순간이라는 위기감도 들고요. 얼어붙은 경제와 불안정한 정국 속에서, 스멀스멀 단절의 분위기가 올라옵니다. 우리는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있습니다.
흑인 민권과 자유를 향한 메시지가 ‘남의 역사’ 혹은 ‘남의 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육안으로 보이는 차이로 상대를 적대시하는 일이 빈번한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자기 검열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한 작품들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