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과 함께 보는 영화
‘토니 타키타니’와 ‘룩백’

각각으로 아름답고
겹쳐보면 더욱 재밌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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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는 아이디어를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작품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다른 매체에 담아 다시 만드는 일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냅니다. 매체의 특성을 고려해 덜어내고 채워 넣는 과정이 필요하죠. 같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다른 작품들을 겹쳤을 때 나타나는 차이는 각 매체의 특성과 함께 각각의 작품이 담고 있는 고뇌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독자와 관객에게는 풍부한 감상을, 창작자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엿보게 하는 매체의 전환을 소개합니다. 


소설 『토니 타키타니』와
영화 <토니 타키타니>

책은 감상을 위해 꽤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매체입니다. 독자는 언어로 쓰인 기호를 해석해 소설 속 세계를 상상합니다. 그 관념 속에서 세계는 지문을 따라 확장되고 인물은 따옴표 사이의 문장을 발화하며 구체화됩니다. 영화는 이 관념의 세계의 일부를 물질의 세계로 옮겨옵니다. 영화 속 세계는 현실의 그것과 닮아 있고 인물은 육체와 목소리를 가집니다. 소설이 영화가 될 때 상상 속에 있던 세계와 인물이 스크린 속에 실존하는 광경을 목도합니다.

이미지 출처: 열림원 / 영화 ‘토니 타키타니’

소설 『토니 타키타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이치카와 준 감독의 영화 <토니 타키타니>로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토니는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재즈 음악가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홀로 보냅니다. 전쟁 직후의 일본에서 ‘토니’라는 이국적인 이름은 그의 고독을 강화합니다. 유년 시절에 형성된 내성적인 성격으로 세상과 자신 사이에 확실한 막을 두고 살아가던 그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고독의 시절을 끝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고독을 잃음으로써 공기처럼 존재하던 고독의 정체를 제대로 인지하게 됩니다. 다시 외로워질까 두려워하던 그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진정한 고독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토니 타키타니’

영화 <토니 타키타니>는 소설이 그리던 세계를 효과적으로 영화화합니다. 소설 지문을 그대로 읽는 내레이터는 하루키의 소설이 그런 것처럼 관객과 작품의 거리를 유지하며 영화를 이끕니다. 푸르게 빛이 바랜 세계와 인물의 표정, 웅크린 뒷모습은 고독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토니 타키타니’

영화는 소설에서 어떤 문장이 우리를 사로잡는 순간을 인물의 갑작스러운 발화로 재현합니다. 토니의 결혼 생활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이어집니다. ‘외롭지 않다는 것은 그에게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외롭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외로워지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이 늘 따라다니게 되었다. 종종 그런 생각이 들면….’ 굳은 얼굴의 토니가 내레이션에 이어서 발화합니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서워졌다.’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나오는 인물의 대사는 순식간에 관객과 인물의 거리를 좁히며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마치 소설 속의 어떤 문장이 유독 커 보이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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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룩백』과
애니메이션 <룩백>

만화는 컷의 예술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놓인 사건의 조각을 정해진 규칙을 따라 읽습니다. 컷은 현실과 같은 시간의 연속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일정하지 않은 시간의 여백이 모든 컷 사이에 존재하죠. 그 여백은 수초가 될 수도 한 계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여백이 얼마나 촘촘한가 그리고 그 컷이 어떤 크기를 가지는가 등이 그 장면의 인상을 결정합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움직이는 장면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 컷과 컷 사이의 인상을 현실로 가져옵니다. 

이미지 출처: 학산문화사 / 영화 ‘룩백’

만화 『룩백』은 후지모토 타츠키의 단편 만화로 오시야마 키요타카에 의해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 집니다. 학년 신문에 4컷 만화를 연재하며 자신의 재능에 자신감이 있었던 후지노는 같은 신문에 실린 등교 거부 동급생 쿄모토의 그림 실력을 보고 충격에 빠집니다. 쿄모토의 실력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던 후지노는 줄어들지 않는 간극에 의욕을 잃고 결국 만화를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졸업식 날 선생님의 부탁으로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전달하러 간 후지노는 자신의 팬이었다는 쿄모토의 말을 듣고 다시 만화를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그것도 쿄모토와 함께요. 만화가로서 성장하던 그들은 성인이 되며 각자의 길을 걷게 되고 어떤 사건에 휘말립니다. 후지노는 그 사건을 계기로 만화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봅니다.

이미지 출처: 만화 『룩백』

애니메이션 <룩백>은 영상과 음악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쿄모토가 자신의 팬이었다는 걸 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후지노의 발걸음은 점점 경쾌해집니다. 쿄모토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심 동경하던 사람에게 인정받고 포기했던 만화를 다시 그리기로 결심한 그녀의 벅찬 감정은 총 4컷으로 표현됩니다.

이미지 출처: 애니메이션 ‘룩백’

이 장면은 애니메이션에서 더욱 촘촘한 연결과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하나의 시퀀스로 담깁니다. 점점 크고 빨라지는 발과 팔의 움직임, 가방의 덜컹거림, 비 내리는 날의 축축한 땅, 물이 튀어 오르는 웅덩이, 가빠지는 숨소리 등 다양한 요소가 음악과 함께 그녀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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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원작의 영화화는 여러 의미로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확장되는 세계에 대한 기대와 실망에 대한 걱정이 뒤섞여있죠. 잘 만들어진 원작 기반의 영화를 보며 전환에 대해 생각합니다. 시작이 된 작품을 다른 그릇에 담기 위해 무언가를 덜어내고 채우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때 그 무언가에 따라 새로운 작품의 형태가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전환은 비워서는 안 되는 것을 골라내는 것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체의 특성에 맞게 원작의 핵심을 온전히 담아낸 작품을 통해 확장된 세계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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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시선이 오래 머무는 것에 대해 씁니다.
영감을 발견하고 나르고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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