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뮤지션들

스크린을 채우는
익숙한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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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영화 고유의 톤을 만들어 내고, 장면의 감정을 극대화하며, 등장인물의 내면을 표현하거나, 이야기의 주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죠. 때로는 배우의 대사 한마디나 과격한 액션보다 음악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는 합니다. 영화의 음악감독은 작품의 장르, 스토리, 감정선과 씬을 분석하며 음악적 요소를 기획하는데요. 영화에 걸맞은 기존 음악을 선곡하거나 영화를 위해 새롭게 스코어를 작곡하며 음악을 연출합니다.

그런데 대중음악 씬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뮤지션들이 영화 음악에 도전해 두각을 드러내는 흐름이 있습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신만의 음악적 개성을 발휘하면서도 영화라는 매체 언어에 적합한 음악을 구사합니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 혹은 낯익은 사운드가 스크린 너머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할 때, 관객들은 이전과는 색다른 체험을 하며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데요.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던 뮤지션들은 영화 음악감독으로서 과연 어떤 사운드를 선사할까요?


프라이머리
‘취향을 파고드는 스펙트럼’

이미지 출처: 기어라운지

2000년대 초반부터 뮤지션으로 활동한 프라이머리는 다이나믹듀오, 빈지노 등 유명 힙합 아티스트와 작업하며 대중적인 취향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다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사냥의 시간>을 통해 음악감독으로 데뷔하죠. 이후 <D.P>, <약한 영웅>, <독전 2> 등 시리즈와 영화에서 음악을 연출한 프라이머리는 새로운 도전임이 무색하리만큼 음악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빠르게 다져왔습니다. <D.P>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은 영화 스코어보다 팝 중심의 음악감독과 작업해 보고 싶은 마음에 프라이머리를 찾았다고 하는데요. 오랜 시간 대중적인 히트곡으로 주목받던 프로듀서 프라이머리는 <D.P.>에 완벽히 어우러면서도 귓가에 맴도는 음악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영상이 끝나도 사운드트랙을 따로 찾아 듣는다는 관객들의 후기로 증명되었죠.

이미지 출처: 씨네21

이후 프라이머리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의 음악감독으로서 2024년 청룡영화상 음악상까지 수상합니다. 이언희 감독은 영화에서 대중적이면서도 재밌고 감정적인 노래가 많이 사용되면 좋을 것 같아 프라이머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프라이머리는 다양한 장르의 곡을 썼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속 주인공의 사랑과 우정, 갈등을 마치 계절의 변화처럼 색다르고 감성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음악 스펙트럼은 언제나 다수의 취향을 사로잡고, 어떤 영화나 시리즈에도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죠.

프라이머리는 음악감독으로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 최근에는 <중증외상센터>, <트리거>, <뉴토피아>의 음악을 책임졌습니다. 단순히 스스로 만들어 완결지었던 대중음악과 달리, 하나의 거대한 완성품의 일부로 삽입하는 음악은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라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결과물에서 오는 희열을 느끼며 계속해서 음악적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기하
‘잘 하는 음악과 잘 하게 될 음악’

이미지 출처: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밀수>를 준비하던 류승완 감독. 그는 ‘앵두’, ‘연안부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등 시대를 풍미했던 명곡들을 선곡해 놓고 음악감독으로 장기하를 떠올렸습니다. 1970년대 그룹사운드를 재현해 낼 아티스트로 장기하를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전까지 뮤지션 장기하와 영화의 인연은 <범죄와의 전쟁>의 OST ‘풍문으로 들었소’ 뿐이었는데요. 뜻하지 않은 새로운 일이 닥칠 때면, 해보는 선택을 해온 장기하는 <밀수>를 통해 음악감독으로 데뷔합니다. 역시나 장기하의 몸에 흐르는 비트와 멜로디, 음악적 문법은 보다 직관적으로 영화의 배경과 잘 어우러졌죠. 그 결과, 2023년 청룡영화상 음악상은 <밀수>의 신인 음악감독 장기하가 차지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씨네21

훗날 류승완 감독은 박찬욱 감독과의 대담에서 장기하 음악감독에 대한 일화를 꺼내놓습니다. 경험이 없던 장기하 감독은 영화 장면도 보지 못한 채 음악 작업을 했고, 덕분에 촬영 현장에서부터 음악을 틀어놓고 찍을 수 있었다고 말이죠.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데모곡을 만들어 류승완 감독에게 작업물을 보냈던 장기하는 영화 음악감독의 작업 과정을 알지 못해 훨씬 더 오랜 기간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동료 뮤지션이자 선배 음악감독인 프라이머리를 통해 영화음악 작업은 보통 촬영을 마친 뒤에 시작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죠. 이후 류승완 감독은 다시는 영화 음악을 하지 않겠다는 장기하를 설득해 <베테랑2>의 음악감독 자리에 앉혔습니다. 장기하는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했던 <밀수>와 달리, <베테랑2>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구사하기 위해 유튜브로 공부해 가며, 그렇게 두 번째 도전도 성실하고도 화려하게 증명했습니다.


오혁
‘꿈과 현실 사이를 부유하는 음악’

이미지 출처: WWD

국내 인디밴드 씬에서 독보적 입지를 다지고 있는 밴드 혁오의 오혁은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너와 나>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했습니다. <너와 나>의 촬영감독이자, 밴드 혁오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던 DQM 감독과의 인연 덕분이었는데요. 두 사람의 만남은 <너와 나>라는 작품을 위해 필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현철 감독은 슬프면서도 이상한 느낌의 음악을 원했고, 오혁은 자신만의 감각으로 그 느낌을 스크린에서 구현해 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말이 없는 편이라, 대화를 나누는 대신 느낌을 공유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작업 과정은 마침내 꿈과 현실의 경계에 위치한 듯 모호한 정서에 도달합니다.

이미지 출처: 씨네21

<너와 나>는 음악이 영화보다 전면에 나선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오혁의 아이디어였는데요. 영상에 음악을 얹듯이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현장의 모든 사운드와 대사, 음악 사이의 밸런스를 섬세히 조절해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기 위함이었죠. 이 작업은 <너와 나> 고유의 색을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밴드 혁오의 음악에서 느껴지던 몽환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영화의 방향성에 맞춰 녹여내기도 했고요. 마침내 오혁은 조현철 감독이 구상했던 ‘슬픈데 이상한’ 음악을 구현해 냅니다.

음악감독 장기하는 어렸을 때 악기를 한두 개 다뤄보고 나서야, 비로소 음악을 많이 듣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음악감독을 해보니 영화를 볼 때 음악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덧붙였죠. 이것은 비단 창작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그동안 영화의 스토리와 연기, 장면 연출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평면 스크린을 둘러싸고 있는 음악에 귀를 기울여 볼 수도 있고요. 엔딩 크레딧에서 감독과 주연 배우들 외에도 음악감독의 이름을 확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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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

좋아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걸 조합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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