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으로부터 해방을
목격하는 각본가 박해영

개별적 해갈을 넘어
추앙에 다다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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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추앙해요” ,박해영 작가의 작품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오는 비일상적인 대사입니다. 비일상적인 대사가 나오는 그녀의 드라마에는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고 스트레스에 절여진 회사원들, 한때 이사님 소리도 들었지만 퇴직해 아파트 경비나 청소 같은 일을 하게 된 중년의 아저씨들, 주중의 출퇴근만으로도 피곤한 경기도 직장인들처럼 낭만 따위는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 갇혀 흔들리고 괴로워하는 인간들로만 가득한 듯 합니다. 그럼에도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속 인물들은 끝끝내 탈주하고 견고해지며 바라보는 우리마저도 틀에서 벗어나 아낌없이 용감하게 사랑하고자 하는 용기를 얻기도, 따뜻한 유대를 목격하게끔 합니다. 사회 초년생인 필자 또한 너무나 궁금해졌습니다. 그녀가 일관적으로 결핍으로 고달픈 현실 세계를 빚어냄에도, 서로를 재지 않고 추앙하겠노라는 다짐을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만들어내는 지 말이죠.


일상적 인물,
그러나 단 하나의 개성을 곁들인

이미지 출처: 초록뱀미디어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속 인물들은 자주 길을 걷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 길은 사회인이라면 매일 목격하는 거리입니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직장에서 치이는 박동훈이,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그보다는 훨씬 아득한 산포시의 외진 곳에 사는 삼 남매들이 마을 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고 서울에 가는 출퇴근길을 담아내고 있죠. 한 바탕 술자리후 불콰해진 얼굴로 골목길을 걸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는 우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즉, 나와 비슷한 보통의 정서가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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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가 그리는 주인공들은 세상에서 단 하나의 개성을 지닌 사람이기도 합니다. 에피소드, 느낌, 질감, 그리고 보이지 않은 정서마저도 총체적인 덩어리에 이질적인 한 끝 차이를 줍니다. 사채 빛에 시달리며 주인공의 뇌물을 훔치는 것으로 서로의 삶 속에 뛰어들기도, 인간에게 환멸감을 느끼며 술만 마시는 그에게 “날 추앙해요”라고 요구하면서 관계가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그녀의 드라마에서는 서로 얽히며 서로의 세계에 영향을 주는 형태로 단 하나의 개성을 보여줍니다.


결핍으로부터 해방하는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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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정돈된 결핍은 한 때 누군가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녀의 작품 속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 갈증을 느끼고 있는 우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오해영> 에서는 동명의 예쁜 오해영에게 위축 당하고 평생을 결핍 안에서 있었고, <나의 아저씨>에서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주인공이 사회와 회사에 동 떨어진 채로 인간과의 유대에 갈증을 느낍니다. 이러한 갈증은 쉽게 우리의 삶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갈증은 쉽게 드러나지도, 혹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마치 <나의 해방일지>속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출퇴근하는 등장인물들의 은은하게 공허하고 건조한 표정이 출퇴근 속 지나치는 많은 얼굴들 속에서 오버랩 되는 경험을 했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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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박해영 작가의 작품은 주인공 스스로 그 갈증과 건조함을 촉촉하게 적시며 편안함에 이르도록 합니다. 결핍의 인물을 그리지만, 그들에게는 강점이 존재합니다. <나의 해방일지>속 염미정은 자신을 추앙하라고 먼저 울부짖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 스스로가 그를 먼저 추앙하면서 알코올 중독자인 구씨를 구원해내고야 맙니다. <또! 오해영>에서 주인공 오해영은 결혼 하루 전 파혼으로 커진 상처를 딛고 갇혀있던 틀에서 벗어나 아낌없이 용감하게 사랑할 수 있는 인물로 성장하곤 합니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은 그리 대단치는 않고 투박하지만, 이지안에게 느꼈던 결핍을 연대를 통해 삶의 의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남용된 사랑 대신,
투박한 연대의 추앙

이미지출처: 초록뱀미디어

“날 추앙해요.” 이 대사를 들으면, 우리가 사용하는 ‘사랑’, ‘행복’, ‘평화’와 같은 단어들이 얼마나 남용되고 오염되어 그 뜻을 잃어버렸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와 같은 말들이 어디에서든 툭툭 의미 없이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죠. 사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도 매한가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安(편할 안)에 寧(편안할 녕), “무탈하시오?“라는 뜻을 지닌 인사에 가끔은 평온에 이르지 못하는 필자는 안녕하지 못하다는 인사를 하곤 하는데요. 남용되고 오염된 고달픈 현실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유대를 잊지는 않습니다. 그 형태가 별 보잘 것 없어도, 다양한 형태의 유대는 조금 더 살만한 촉촉한 곳으로 만듭니다. 어딘가 망가져 보이는 아저씨들에게는 언제든 달려가 갖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이 있었고, 염씨 남매에게는 매일같이 곁에서 부유물 같은 생각들을 잔잔히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마치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온 커플이 상대의 수준을 재단하는 사랑이 아닌, 상대방이 지닌 밑바닥 마저도 온전히 수용하는 ‘추앙’의 형태를 통해 말이죠.

이미지 출처: 초록뱀미디어

그들의 연대는 가짜 웃음, 가짜 행복 등 펑범으로 포장된 외력의 요소로부터 해방하고, 오히려 내려놓더라도 편안함에 이를 수 있는 내력이기도 합니다. 결국은 어떻게든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 이지안은 회사에서 내몰릴 위기에 처한 ‘박동훈’을 의지하며 돕고, 결국 이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결여된 것을 서로를 통해 채웠고 테두리에서 벗어나 각자의 삶에서 편안함에 이르게 됩니다. 남용된 사랑의 형태가 아닌 인간애에 가까운 연대로 빚어진 휴머니즘을 통해서 말이죠.


박해영 작가의 작품에서는 보통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두근거림보다는 편안함이 선행되곤 합니다. 어떤 갈망으로 인해 심장이 뛰는 등과 같은 평범으로 버무려진 욕망이 아닌 촉촉하게 적셔주는 편안함 말이죠. 틀에 박힌 허울로 가득한 삶과 오염된 일상어가 반복되는 일상적이지 않은 보통의 드라마와는 다르게 특별하지 않아도 편안함에 이르는 길로 다다르도록 합니다. 보다 더 나은 나를 바라보며 나 자신을 파괴하고 결과물만을 중시하는 급격한 전환을 추구하는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껴안으며 서서히 갈증으로부터 해소되는 전개말이죠. 허위로 가득 빈 삶과 반복되는 굴레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그녀의 작품의 행보를 기대하며 필자는 이만 원고를 마치려 합니다. 이 글을 읽는 필자도 편안함에 이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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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바람들을 느끼며
예술의 향유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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