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독립적인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건 얼마나 됐을까요? 또, 어린이가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한 건요? 뉴욕 MoMA에서는 1946년에 처음으로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Designed for Children)»이라는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어린이만을 위해 제작된 가구와 미술 도구, 그림들이 전시되었죠.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과 문화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요. 어린이들이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어린 시절에 디자인을 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린이가 자기만의 작은 가구를 갖는 것이 또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합니다. 어린이 가구는 단순히 사이즈만 축소한 가구가 아닙니다. 가구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교육적인 목적을 더하거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죠. 이번 아티클에서는 20세기부터 시작된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 가구 실험을 살펴봅니다.
무해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어린이가 사용할 가구는 어른용 가구보다도 훨씬 더 안전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핀란드 디자이너 알바 알토(Alvar Aalto)는 일찍이 어린이를 위한 튼튼하고 안전한 가구를 제작했는데요. 1930년대에 개발된 N65 의자와 NE60 스툴은 목재를 구부리는 알바 알토의 독창적인 기술이 적용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어린이용 공간과 교육 시설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특징적인 형태는 L자로 구부러진 다리, ‘L-LEG’인데요. 곡선으로 구부러져 안전하고, 내구성이 있는 데다가 겹쳐서 적재하기에도 유용합니다. 자작나무라는 친환경적인 소재, 심플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에 더해 시각적으로도 인체공학적으로도 편안한 알바 알토의 의자는 어린이를 배려한 디자인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스테파노 지오반노니(Stefano Giovannoni)는 동심을 더한 디자인에 안전성을 더했습니다. 사방이 곡선으로 처리된 토끼 모양의 의자인 래빗 체어(Rabbit Chair)가 대표적인데요. 스테파노 지오반노니가 탄생시킨 가구 브랜드 퀴부(Qeeboo)의 시그니처 디자인이기도 합니다. 토끼 귀 모양의 등받이에 기대앉거나, 올라탈 수도 있는 형태인데요. 다양한 사이즈로 제작되어 어른과 아이가 나란히, 또는 마주 보고 앉아 있을 수도 있어요. 편안하고 감성적인 모티브와 무해한 곡선 형태 덕분에 어린이를 위한 공간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어요.
WEBSITE : Artek
WEBSITE : Qeeboo
장난기 넘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도록 만드는 어린이 가구는 창의성을 높이고, 어린이의 세계를 넓혀주기도 합니다. 미국의 포스트모던 가구 디자인을 이끈 찰스와 레이 임스(Charles&Ray Eames) 부부는 장난감으로부터 디자인 프로세스를 착안하는 등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에 주목했는데요. 단순한 재료로 기쁨을 만드는 디자인 방식에 기반해 여러 장난감과 어린이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1945년에는 합판을 구부려 곰, 개구리, 물개와 같은 동물 형태의 어린이용 장난감을 제작하는 실험을 시도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견고하게 완성된 ‘합판 코끼리’는 MoMA에 전시되고, 지금까지도 가구 브랜드 비트라(Vitra)를 통해 생산되고 있어요. 곡선으로 구부러진 합판 코끼리는 친근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갑니다. 코끼리에 올라타는 일도 가능하고요. 이후 비트라에서는 플라스틱 버전의 다채로운 컬러로 임스 코끼리를 제작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일본의 디자인 회사 넨도(Nendo)는 ‘H-Horse’라는 어린이용 목마를 제작했는데요. 투명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심플한 디자인 속에서 장난기 넘치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H-Horse의 디자인에는 건축적 구조가 숨어 있는데요. 대형 건축물과 구조물을 지지하는 강철 H빔의 형태를 응용해 견고한 흔들목마를 제작했습니다. 최소한의 재료와 기능적인 디자인이 어린이용 목마라는 용도와 대비감을 이루며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Kartell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산업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은 동화적 모티프의 사이드 테이블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아틸라(Attila), 나폴레옹(Napoleon), 세인트 에스프리(Saint-Esprit)라고 이름 붙인 세 개의 테이블인데요. 난쟁이가 나무 그루터기 같은 상판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난쟁이 테이블’ 혹은 ‘난쟁이 스툴’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귀여운 모습과는 반대로 제품의 이름은 모두 카리스마 넘치는 역사적 인물에서 따왔다는 점이 유머러스하게 느껴지는데요. 필립 스탁은 플라스틱 소재를 활용해 일상 곳곳에 유쾌한 디자인을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이로써 디자인이 사람들의 일상, 특히 가족적인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인데요. 세 개의 사이드 테이블 시리즈는 마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처럼 동화적인 세계를 구축하며 어린이에게 다가갑니다.
WEBSITE : Eames
WEBSITE : Nendo
WEBSITE : Kartell
어린이를 위한 자기만의 방



어린이에게도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디자이너도 있습니다. 물론 이 공간은 어린이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어야 했는데요. 이탈리아 미래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는 가구 디자인을 통해 어린이만을 위한 독립 구역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비타콜로(Abitacolo)라는 유닛 형태의 가구인데요. 1971년에 탄생해 1979년 황금콤파스상(Compasso d’Oro)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비타콜로라는 이름은 이탈리어로 ‘작은 집(Little House)’을 뜻하는데요. 실제 형태는 스틸 파이프의 구조물, 혹은 이층침대에 가깝습니다. 필요에 따라 매트리스를 넣어 침대로 쓰거나, 상판을 더해 데스크로도 사용할 수 있는데요. 파이프가 사방을 둘러싼 아비타콜로는 어린이도 자신의 물건과 취향을 공간 속에 담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가구의 형태이기에 작은 면적만으로도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셈인데요. 단 8개의 나사로 조립이 가능하며, 위치와 형태도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습니다. 브루노 무나리의 디자인은 어린이에게도 독립적인 공간과 생활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탄생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혁신적인 가구 디자인으로 평가받습니다.
20세기부터 이어져 온 디자이너들의 ‘어린이 가구 실험’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로 어린이를 독립적인 존재로서 존중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도록 인식을 개선해요.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은 어린이가 사회의 부속품이나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닌 단독적인 개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죠. 둘째로 어린이의 시각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예술과 문화적 발전에 기여합니다. 피카소(Picasso)가 모든 아이들을 예술가로 칭하며, 평생에 걸쳐 어린아이처럼 그리기를 연습했다는 사실은 흔히 알려져 있죠. 알바 알토 역시 예술에 있어 어린이의 놀이 본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디자이너들에게 있어 어린이의 시각을 차용하는 일은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디자인 프로세스였습니다.
비록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어린이를 직접 키우지 않더라도, 가구를 통해 어린이의 세계를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건전성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은 공동체를 위한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어린이 가구는 단순히 어린이 사용자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귀엽고 장난스러운 어린이 가구 디자인을 통해서 어린이에 대한 다정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