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족이란 서로를 지탱하고 사랑해야 마땅한 관계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가족이라도 서로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죠. 그럼에도 가족 관계는 끈끈한 결속력으로 묶여 지속됩니다. 피로 맺어진 가족은 스스로 선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으니까요. 마치 끊어낼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피할 수 없는 이 관계는 묘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신뢰와 사랑만이 존재해야 할 가족 사이에 형성되는 서스펜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리 에스터는 전통적인 가족 서사에서 벗어난, 어딘가 불편하고 뒤틀린 가족을 스크린에 올립니다. 그리고 가족이란 공동체의 틀을 해체하고 끝내 붕괴시켜 버리죠. 서로를 지탱하는 대신 천천히 무너뜨리는 가족과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 발설하기 어렵지만 누구에게나 실타래처럼 잔뜩 얽힌 ‘말 못 할 가족 이야기’를 아리 에스터의 영화가 대신하는데요. 가족이란 단어 아래 금기시된 이야기와 마주하는 건, 그 자체로도 공포스러울 수 있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피의 대물림
<유전>

공포영화 속 가족은 대개 악으로부터 서로를 지키기 위해 사투합니다. 그러나 아리 에스터의 영화에는 악마를 숭배하는 저주를 받아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는 가족’이 등장하죠. 그의 첫 번째 장편 영화 ‘유전(Hereditary)’은 제목처럼 가족 대대로 내려오며 거스를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모계를 따라 계승되는 저주를 막아보려 애써도 결국 악마와 숭배 집단의 계획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운명. 그것은 마치 핏줄로 이어진 가족과 닮았는데요. 아리 에스터는 끊어낼 수 없는 혈연의 비극을 악마라는 존재와 저주에 빗대어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반복적으로 발현하는 비극에도 어쩔 수 없이 순응할 수밖에 없는 유전처럼 말이죠.

이 영화에서 악마의 존재나 신체가 절단되는 이미지보다 공포스러운 건 가족 관계의 균열에서 비롯됩니다. 몽유병을 앓던 주인공 애니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아들 피터의 방을 찾는데요. 피터를 임신했을 당시 유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했다는 말을 쏟아낸 다음 입을 틀어막기도 하죠. 가족 사이에 응당 지켜야 할 신뢰가 무너지며 입에 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드러났을 때의 상황은 영화를 한층 더 섬뜩하게 만듭니다. 악마로부터 지키기 위해 아들을 죽여야 한다는 역설. 이는 뒤틀린 모성의 일각이자, 유전과 저주에 대한 무력한 반항으로 그려집니다. ‘유전’은 황석희 번역가가 데드풀 캐릭터와 강아지 사진을 띄워놓고 작업했을 만큼 가족 영화 중 가장 매운 맛일 테니 약간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트라우마로부터의 해방
<미드소마>

가족들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혼자가 된 대니. 그는 상실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니의 남자친구와 친구들이 스웨덴의 한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에 초대받는데요. 남자친구에게 의지하던 대니는 이들과 동행합니다. 호러와 백야, 고어와 힐링이 공존하는 영화 ‘미드소마(Midsommar)’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에 열리는 하지 축제를 의미합니다. 새하얀 옷을 입고 이방인들을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의 환대와 밤에도 밝은 날씨. 그러나 겉보기엔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마을에는 기이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18년 주기로 인생을 네 구간으로 나눠, 마지막 주기의 끝인 72세가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죠. 마을 공동체는 예외 없이 하나가 되어 그들만의 관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미드소마’는 같은 핏줄의 가족을 잃고 트라우마에 빠진 인물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공동체에 합류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기괴한 사건도 벌어지지만, 대니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한 편의 거룩한 치유 서사 같기도 하죠. 엄격하고 잔혹한 규율과 이해할 수 없는 규칙 속에서 서로를 향한 지지와 공감을 보여주는 마을 공동체. 이들은 대니를 트라우마로부터 건져 올리기 시작합니다. 불신과 불안이 배제된 공동체에서 누군가 자신을 붙들어 준다는 느낌을 주고받는 것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기이한 관습을 따르지만 서로를 지탱하는 공동체와 비극적인 상처로 얼룩진 혈연 가족.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과연 어떤 공동체가 더 나은 관계이며, 진정한 가족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집착과 광기 어린 모정
<보 이즈 어프레이드>

‘보 이즈 어프레이드(Beau is Afraid)’는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중년 남성 보의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집착과 억압을 거듭한 결과, 아들 보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자란 것인데요. 보는 어떤 외부 존재와도 제대로 맞서지 못한 채 각종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살아갑니다. 어머니라는 강력한 존재가 설계한 인생에 순응하면서 결코 벗어나 본 적이 없죠. 낡은 아파트와 좁은 욕조에만 머물던 ‘보’는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외부로 발을 디딥니다. 어머니의 강압적인 세계 바깥으로 나간 보는 자유로움이 아닌, 각양각색의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요. 사랑으로 포장되었던 어머니의 독선이 결국 의존성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염증이 불어 터져도 끊어낼 수 없는 족쇄는 바로 가족이었죠.

영화 초반부 보의 상담사가 던진 질문이 인상적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냐고 말이죠. 당황하며 없다고 말한 보. 상담사는 노트에 단어 하나를 적습니다. 그건 바로 죄책감인데요. 영화는 주인공 보를 각종 역경과 시험에 빠뜨리며 어머니의 안락한 품을 그립게 만들고, 그것을 거스르고자 하는 마음에는 죄책감을 심어줍니다. 도저히 떨쳐낼 수 없을 만큼 견고한 모정은, 아들의 독립을 가로막는데요. 이 영화는 편집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프로이트의 억눌린 리비도 등 다양한 이론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아들을 향한 독선과 어머니에 대한 의존성이 초래한 비극으로 보입니다.
아리 에스터는 스스로 가장 본인다운 영화로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꼽았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그의 가치관과 예술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인데요. 가족이라는 관계가 가진 허약함을 꼬집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위의 두 편의 공포영화와 달리, 약간의 섬뜩함이 가미된 ‘악몽 코미디’입니다. 우리 모두가 태어난 장소인 어머니로부터 형성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유대감. 그곳에서 비롯된 불경스러운 악몽은 아리 에스터의 뒤틀린 가족 서사답습니다.
기이하게 뒤틀린
가족 드라마

‘가족은 드라마의 원천’이라는 아리 에스터의 말처럼 가족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건과 감정, 갈등은 무궁무진합니다. 그중에는 애정이 넘치며 밝고 희망찬 이야기도 있지만, 어둡고 은밀하며 잔혹한 이야기도 있죠. 아리 에스터는 겉모습을 벗겨내야 가족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사랑하고 서로를 지탱하는 건강한 가족 관계만이 전부는 아닌 것처럼요. 그의 가족 관계와 사적인 경험, 감정이 어찌 되었든 아리 에스터만의 시선으로 껍데기를 탈피한 가족 서사는 매번 독창적인 섬뜩함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는데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면서 끊어낼 수 없는 가족. 이 운명적인 관계에서 만들어 내는 아리 에스터만의 서스펜스는 사실 세 편의 장편 영화 이전부터, 다양한 단편을 통해 이어져왔습니다.

아리 에스터는 졸업 작품으로 기묘한 가족 영화를 찍었습니다. 바로 ‘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은 겉보이기에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 피해자와 가해자, 방관자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어긋난 사랑을 키워가며 지속적으로 성폭행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입니다. 뒤틀린 관계가 점차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 아리 에스터의 가족 영화만의 공통점이 드러나죠. 2013년에 발표된 ‘뮌하우젠(Munchausen)’ 역시 뒤틀린 모성을 다룬 단편 영화입니다. 아들을 먼 대학에 보냈을 때 외롭게 늙어갈 본인의 미래를 상상하며, 결국 아이를 일부러 병들게 만드는 어머니. 마치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모자 관계를 보는 것 같죠. 왜곡된 사랑이 집착과 소유욕으로 번져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 내는 구조는 아리 에스터의 세계관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뮌하우젠’은 대사가 없는 단편 영화로, 아래 영상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가족 관계가 마냥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태어남과 동시에 오랜 시간동안 몸과 마음을 부대끼는 가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다만 우리는 가족 사이에 은밀히 자라나는 부정적인 것들을 침묵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건져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가족 관계를 꼬집어 내는 아리 에스터의 잔혹동화가 수많은 관객을 매료시킨 건 수면 아래에 있는 일말의 공감대를 자극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가족이란 존재는 떼어낼 수 없기에, 그만큼 비밀스러워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