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조금 특별한 무대가 열렸다. 이날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고잉홈프로젝트’의 무대에는 지휘자가 없었다. 단원들은 반원으로 둥글게 마주앉아 신호를 주고 받으며 연주를 이어갔다. 놀라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이들이 선보인 곡은 난곡으로 유명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었다. 워낙 난이도가 높은 곡인 만큼, 백 명에 달하는 단원들이 지휘자 없이 합을 잘 맞출 수 있을지를 두고 관심이 모아졌다. 무대가 끝난 뒤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경 송태형 문화기자는 ‘고잉홈프로젝트의 모험적 시도가 통했다’며 ‘신선한 충격과 진귀한 경험을 안겨줬다’고 전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송 기자는 연주를 정밀하게 통제하는 지휘자가 없어 ‘악기 간 밸런스가 불안정했고, 공연장의 울림까지 고려한 섬세한 조절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엿새 간 진행된 이번 공연에 협연자로 나선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헤럴드경제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은 지휘자의 도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고 싶어 지휘자 없는 공연을 시도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오늘날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지만, 지휘자라는 존재가 탄생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모차르트, 베토벤 시대만 해도 앞에서 막대기를 들고 지휘하는 모습은 흔치 않았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단원(악장)이 손과 바이올린 활을 이용해 신호를 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곡이 복잡해지고, 오케스트라 규모가 커지면서 전문 지휘자가 등장해 합주를 이끌기 시작했다. 어찌됐든 이렇게 역사가 짧고, 탄생한 시점이 다르다는 건, 전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뜻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오케스트라에 지휘자가 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곡이 복잡하고, 단원들이 많아서일까. 그렇다면 비교적 쉬운 곡이나 규모가 작은 오케스트라에는 지휘자가 없어도 될까. 만약 된다면, 어떻게 운영돼야 할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의 역할과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의 역사, 음악 종사자들이 말하는 지휘자의 필요성을 차례로 살펴보려 한다.
손만 휘적이면 끝이다? NO!
공연 중인 오케스트라를 유심히 보면, 단원들은 악보만 보고 있다. 지휘자를 올려다 보면서 연주를 하는 단원은 드물다. 잠시 파트를 쉴 때나, 연주 도중 흘끔 보는 경우는 있어도 지휘자 손짓에 집중하며 실시간으로 자신의 연주를 조율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필자 같은 음악 문외한이 보면 ‘굳이 지휘자가 없어도 되겠는데?’ 의문이 들 만하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드는 건 우리가 지휘자의 역할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클래식과 코미디를 결합시킨 무대로 유럽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지휘자 레이너 허쉬(Rainer Hersch)는 지휘자의 역할을 5가지로 정리했다.
① 수많은 악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하는 오케스트라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속도와 템포를 제대로 맞추는 일이다. 물론 단원들도 연주를 들을 수 있고, 악보를 볼 수 있다. 수많은 연습 끝에 리듬이 몸에 배기도 했을 테다. 하지만 아무리 노련한 연주자라도, 미묘하게 연주 속도가 빨라지고 느려지는 걸 알아차리고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속도를 일정하게 잡아주는 지휘자가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지휘자의 손짓은 연주 속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메릴랜드 대학 이아니스 알로이모노스 교수는 2012년, 정밀한 측정장비를 활용해 지휘봉이 바이올린 활의 움직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휘자의 경험이 많을수록 연주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다는 상관관계도 밝혀냈다. 이와 같이 지휘자는 연주자들이 의지할 기준이 돼준다. 미묘하게 빨라지거나 느려지더라도 다 같이 그러면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② 연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영국의 유명 지휘자 토마스 비첨(Thomas Beecham)은 시작과 끝의 중요성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오케스트라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동시에 시작하고 동시에 끝내는 일이다. 대중은 중간에 뭐가 들었는지 신경도 안 쓴다.” 베토벤 교향곡 5번처럼 도입부의 임팩트가 강하고, 많은 악기가 동시에 투입돼야 하는 곡일수록, 언제 들어갈지 알려주는 지휘자의 역할 중요해진다. 물론 신호를 보내는 게 반드시 전문 지휘자일 필요는 없다. 앞서 보았듯이 전문 지휘자가 없던 시절에도 악장들이 손과 활로 타이밍을 알렸고, 현존하는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이런 역할을 해줄 단원을 미리 정해둔다. 문제는 이들도 연주에 참여하는 만큼, 지휘자처럼 포디엄(Podium, 단상)에 설 수 없다는 점이다. 모든 단원이 볼 수 있는 곳에 앉아야 하는데, 오케스트라 규모가 클수록 배치가 어려워진다.
③ 곡을 해석하는 건 지휘자의 핵심 역할 중 하나다. 똑같은 곡이라도 어떤 지휘자가 연주를 이끄냐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지휘자들이 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도 지휘자의 악곡 해석이 연주자의 기교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지휘자도 곡을 해석하지만 단원들 역시 각자 곡을 어떻게 연주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연주를 시도해보며 조율하는 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 단원 수가 많아질수록 시간은 늘고, ‘완벽한 합의’에 이를 가능성도 낮아진다. (뒤에서 소개한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오르페우스도 처음에는 만장일치제를 택했지만, 나중에는 파트별 대표끼리 의견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런 낭비를 막기 위해 지휘자에게 해석에 대한 전권을 맡겼다고 볼 수 있다.
④ 클래식 음악의 ‘러닝타임’은 결코 짧지 않다. 연주자가 모든 파트에서 연주를 하지 않는 만큼, 대기시간이 발생할 때가 있다. 연주자들은 자신의 파트를 마치고 다음 파트를 기다리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문제는 대기시간이 길어질수록, 집중력이 흐트러질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자신의 파트가 단 한 번뿐인 경우도 있다. 80분짜리 안톤 브루크너 7번 교향곡에서 심벌즈는 딱 한 번 등장한다. 2악장 후반부(47분 54초), 연주자가 근엄한 표정으로 심벌즈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휘자는 눈짓과 제스처로 단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파트를 놓치는 등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한다.
⑤ 마지막으로, 지휘자는 악기 간 밸런스를 맞춘다. 오케스트라에서 화음을 맞추는 게 중요한 만큼, 악기의 사운드를 적절하게 맞추는 일도 중요하다. 당연하게도, 소리는 악기에 가까울수록 크게, 멀수록 작게 들린다. 따라서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 앉아서는 청중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지휘자는 현장 바깥에서 음향이 어떤지 실시간으로 듣고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이 같은 조율은 리허설 뿐만 아니라 연주 중에도 일어난다. 지휘자가 무거운 상자를 들어올리듯이 왼손을 펴고 지휘봉을 휘두르면 ‘소리를 키워달라’는 뜻이고, 손을 가슴 쪽에 댄 채로 흔들면 ‘소리를 줄여달라’는 뜻이다. 지휘봉-바이올린 활 연구에서 보았듯, 미세조정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종합하면, 지휘자는 악기들간 조화를 최대로 끌어올리고, 오차를 줄이며 청중들에게 최고의 음악을 선사한다. 성공적인 합주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연주뿐 아니라 연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휘자는 축구팀의 감독, 코치처럼 단원들의 역량을 키우는 역할을 맡는다. 위 영상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이 베를린 필하모닉 학생들을 대상으로 리허설을 진행하는 영상이다. 지휘자는 연주를 들어본 뒤 파트별로 코칭을 시작한다. 어떤 부분은 머리털을 뽑듯이 강세를 주라고 요구하고, 어떤 부분은 2만 개의 악기가 있는 듯하다며 소리를 줄여달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번 더 맞춰본다. 백 명이 넘는 대편성에, 코칭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확연히 달라진 걸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필자가 들어봐도, 줄을 튕기며 내는 멜로디 음이 커지고, 날카로웠던 플루트와 클라리넷 소리가 부드러워진 게 느껴졌다.
물론 모든 권한이 지휘자에게로 집중이 되는 게 순기능만 있는 건 아니다. 권위적인 지도 아래서 부품처럼 연주를 해야 하는 연주자들은 낮은 행복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전설적인 지휘자로 꼽히는 카라얀(Karajan)이나 토스카니니(Toscanini)도 윽박을 지르고, 시계를 던지는 등 강압적인 방식으로 단원들을 통제했다고 한다. (영화 <위플래쉬>는 좋은 참고자료다.) 1980년대 하버드 경영대학의 리처크 해크먼 교수는 미국 등 4개국 78개 오케스트라 단원을 대상으로 직업 만족도에 관한 연구를 했고, 단원들의 만족도가 연방 교도소 경비원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같은 문제의식을 느꼈던 영국의 챌리스트 줄리안 파이퍼(Julian Fifer)는 모든 단원이 행복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를 꿈꿨고, 1972년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한다.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Orpheus Chamber Orchestra)’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단원 모두가 리더가 된다?
근대 오케스트라에 전문 지휘자가 공고히 자리잡은 이후, 처음으로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를 시도한 건 구소련이었다. 페르심판스(PerSimfAns; Pervïy Simfonicheskiy Ansambl’ bez Dirizhyora)는 ‘최초의 지휘자 없는 교향악단’ 약자를 딴 오케스트라로, 1922년에 창단돼 10년 간 활동하다가 해체됐다. 언뜻 음악계 내에서 파격적인 실험을 한 듯 보이지만, 실상 그 배경은 다분히 이념적이었다. 이는 마르크스 사상을 따라 ‘지휘봉을 든 권력(Men with batons)’ 곧 음악 독재자(Musical dictator)를 없애려는 취지에서 이뤄진 시도였다. 흥미로운 건, 구소련의 ‘민주집중제’ 이념을 바탕으로 탄생한 페르심판스가 오늘날 민주주의 원칙에 빗대봐도 전혀 손색 없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악단 내 중요한 결정(볼륨, 템포, 다이내믹 등)은 선출된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내려졌다.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으며, 폐쇄원 형태로 둥글게 마주보고 앉았기에 어떠한 위계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단원들은 사소한 제스처를 끊임없이 주고 받으며 연주를 맞춰나갔다. 또한 모든 단원이 총보(Entire Score; 모든 악기 파트가 수록된 악보)를 익혀야 했으므로 오케스트라 내 한 부품이 아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는 지휘자의 부재 속에서도 수준 높은 합주를 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 구소련 대표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도 “단원 한 명 한 명이 완벽한 솔로이스트가 되는 방식으로 완벽한 합을 맞춰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해냈다”고 평했다.
현대로 넘어와서 바통을 이어받은 건 앞서 소개한 오르페우스 오케스트라였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1951년 창단한 ‘프라하 챔버 오케스트라’에도 지휘자가 없긴 했다. 하지만 이들은 원래부터 지휘자가 필요 없는 곡을 연주하고, 유명 지휘자들과 협연하는 등 그 철학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따라서 오르페우스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의 시초’라고 자부하는 건, 뚜렷하고 일관된 운영철학이 바탕이 됐기 때문일 테다. ‘지휘자는 없지만 모두가 리더’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이, 오르페우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민주적인 운영, 곧 모든 단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단원 자치’다. 이들이 발전시킨 ‘공유 리더십 모델’은 하버드 경영대학을 통해, 전 세계 기업의 조직문화로 확산하기도 했다.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의 운영방식은 페르심판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연마다, 작품마다 조금 더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악장을 선정하고, 악기별로도 주요역할을 맡을 단원을 뽑는다. 이들이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며 리허설을 이끌어가지만, 피드백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다. 작품을 해석하는 단계에서부터 의견을 모으기에, 단원들은 모든 악기 파트에 익숙해지게 된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돼준다. 이 밖에도 높은 세대 다양성과 협연자와의 높은 호환성 역시 오르페우스가 자부하는 특징이다. 오르페우스가 성공적으로 클래식 신에 자리잡은 이후 레 디소낭스(프랑스), 스피나 미라볼라스(이탈리아) 등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설립됐고, 현재 성황리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 부활한 페르심판스도 얼마 전 100주년 기념공연을 열었다.
반드시 지휘자가 필요한 줄 알았지만, 막상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도 문제 없이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쪽이 맞을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건, 지휘자 레이너 허쉬가 말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의 사례로 제시한 오케스트라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단원 수가 70명이 넘어가는 대규모 악단(필하모닉·심포니)을, 후자는 50명 미만으로 편성된 소규모 악단(챔버)을 지칭한다. 인원에 따라 운영방식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물론 모든 단원이 존중받는 민주적 운영은 분명 지향해야 할 가치지만, 권위적인 통솔을 따를 때에 비하면 효율이 낮다. 규모가 커질수록 의사결정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정상적인 운영은 불가능해지고 만다.
앞으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모델과 공유 리더십 모델이 더욱 발전한다면 보다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에서도 지휘자 없는 공연을 시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지휘자들의 일률적인 해석 대신 단원들의 ‘집단지성’을 토대로 탄생한 신선한 무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열을 떠나, 다양한 형태의 오케스트라가 시도되고 발전할수록 청중들은 더 풍부한 음악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90명이 넘는 대편성으로 지휘자 없는 연주에 도전한 이번 ‘고잉홈프로젝트’ 공연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시도들이 앞으로도 더 많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를 한군데 더 소개하며 마치려고 한다. 시각장애 단원들로 구성된 ‘한빛예술단’이다. 이들에게 지휘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무대에서는 지휘자는 물론, 악보도 찾아볼 수 없다. 볼 수 없기에 온전히 동료들이 내는 소리에 의지해 연주를 이어가야 하며, 이를 위해 피나는 연습이 뒷받침돼야 하는 건 물론이다. 홈페이지 소개란에는 ‘시각장애인에게 불가능할 것 같았던 연주 및 합주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한다’는 문구가 담겨있다. 어쩌면 이러한 편견은 ‘당연한 존재’로 여겨지는 지휘자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의 방법론이 발전하고, 인식이 나아지는 건 분명 한빛예술단 단원들도 바라는 일일 테다. 한편 한빛예술단은 다음달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
- 박은승, 전문 지휘자의 등장 이후 오케스트라 지휘의 발달, 2021, 문화정책논총, 제35절 3호, 123-150
- 한국경제, 지휘 없이 연주한 ‘봄의 제전’···고잉홈프로젝트의 파격 통했다, 2022.08.03
- 동아일보, [유(윤종)튜브]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들, 2022.07.19
- NPR, Do Orchestras Really Need Conductors?, 2012.11.27
- 유튜브, DOES AN ORCHESTRA NEED A CONDUCTOR!? 5 reasons why
- SBS, [취재파일]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의 공유 리더십 실험 50년, 2021.09.04
- Trivia-Library, History of the Greatest Conductorless Orchestra http://www.trivia-library.com/b/history-of-the-greatest-conductorless-orchestra.htm
- Persimfans Orchestra Homepage
- Orpheus Chamber Orchestra Home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