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찰나가 있나요? 우리가 사랑하는 순간들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습니다. 나른한 오후 연인과 함께 하릴없이 보내는 시간, 볕이 적당히 드는 창가에 앉아 책을 펼치는 순간, 하늘이 맑은 날 공원을 가로지르는 일처럼 말이죠. 나른하면서도 여전히 평화로운 순간들, 당시의 분위기와 감정이 작품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일상 속 낭만을 포착하는 일러스트레이터 3인의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사랑의 모양, 카미유 데시앙즈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카미유 데시앙즈(Camille Deschiens)는 일상생활에서 영감을 받아 친밀감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에 담습니다. 그의 작품 속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고, 포옹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편안하고, 나른한 모습의 인물들. 흐릿하고 노이즈가 더해진 듯한 작화는 그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더할 나위 없지요. 이런 연출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부드러운 색조의 색연필을 적극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카미유의 작품은 특별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험악한 날씨가 이어지는 이른 저녁, 연인과 붙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그린 “The Reading”의 경우, 작가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성 소수자 혐오 발언에 대해 분노를 느낀 뒤 지극히 평범한 연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처럼 그의 작품에서 ‘다양성’은 또 다른 화두인데, 사랑의 모양을 한정 짓지 않고 다각도에서 그려냄으로써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말로 전할 수 없는 몸의 언어, 친밀감의 표식… 다정한 실루엣으로 가득한 카미유의 작품을 만나 보세요.
기억하고 싶은 찰나, 손은경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포스터를 시작으로, 다양한 영화의 포스터를 작업하며 국내 영화 팬들에게 뜨겁게 사랑 받는 일러스트레이터 손은경. 그는 찰나의 순간도 기억하고 싶은 장면으로 뒤바꾸는 신묘한 힘을 지녔습니다. 특히 영화 포스터 작업의 경우, 영화 속 한 장면을 포착해 특유의 분위기까지 옮겨 담기로 유명한데요. 평소 영화를 즐겨 보던 작가는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라는 주제로 드로잉 클래스를 운영한 바 있고, 이때 영화사 측에서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서 다양한 영화사와 작업을 이어가게 됐다고 합니다.
영화사뿐만 아니라 <GQ>, <BAZAAR>, <popeye> 패션 매거진과 위스키 브랜드 ‘싱글톤’, ‘야놀자’ 등. 분야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컬래버레이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던지 그의 작품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의 존재를 인지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순간들을 그림으로 담아낸다는 것이죠. 개인 작업물 역시 공식 인스타그램에 주기적으로 업로드 하고 있으니 더 많은 그의 작업이 궁금하다면 SNS 채널을 꼼꼼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이야기를 빚는 그림, 엄주
특유의 감각적인 작화로 팬층을 견고히 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엄주를 소개합니다.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분위기, 투박하면서도 부드러운 쉐입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지요. 작가는 컬러를 단순화하고, 요소를 생략함으로써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가이드를 따라 작품을 살펴보다 보면 인물의 태도나 배경을 통해 스토리를 추측하게 되는데요. 작가의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연계된 작품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엄주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이야기를 짓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품에 서사를 부여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지난해에는 출판사 아침달과 함께 그래픽노블 『악몽수집가』를 발매했습니다. 사람들의 꿈에 다가가 악몽을 훔치고 수집하는 ‘악몽수집가’와 기묘한 능력을 가진 아이 ‘환희’의 용기 있는 모험을 그린 이야기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엄주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세 작가는 누군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을 붙잡고, 낭만을 덧입힙니다. 그게 전혀 억지스럽지 않을 뿐더러, 고유하고 아름답게 느껴지죠. 이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평화를 감각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지나고 보니 그리운 장면들을요. 소란스러운 날에는 이들의 작품을 통해 나른한 휴식을 만끽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