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원도심의 변신
개항로프로젝트

쇠락한 동네에 숨결을 불어넣은
개항로프로젝트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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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디한 공간과 장소를 찾아 떠나는 ‘카페 투어’와 ‘맛집 탐방’의 시대, 마음에 길이 남는 고유한 장소는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요. 인천의 쇠락한 원도심, 개항로에서 감각적인 공간과 브랜드를 선보이는 ‘개항로프로젝트’는 자신들의 고유함을 노포에서 찾았습니다. 지역의 노포를 알리고, 그들과 협업해 유일무이한 제품과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죠. 이들이 등장한 이후, 인근에는 50여 개의 가게가 새로 생겼다고 합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프로젝트 집단은 어떻게 쇠락해가던 동네를 되살릴 수 있었을까요?


고향에 돌아와 거리를 바꾸다

개항로 거리의 모습
이미지 출처: 개항로프로젝트 공식 인스타그램

개항로프로젝트는 건축가, 셰프, 사업가, PD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탄생한 프로젝트 집단입니다. 기업의 형태가 아닌, 개인 간의 협업으로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죠. 특수한 팀이라, 프로젝트 초기에는 이들을 둘러싼 온갖 소문이 돌았을 정도라고 해요. 개항로프로젝트를 이끄는 이는 이창길 대장으로, 인천에서 나고 자라 중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개항로가 위치한 인천 중구는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였습니다. 백화점에서도 구할 수 없는 옷을 접할 수 있었고, 현존하는 최고(最古) 극장인 애관극장을 중심으로 열아홉 개의 극장이 있었죠. 그러나 인천시의 도시개발로 지역이 쇠락하면서 동네는 황량하게 변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이창길 대장은 이곳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불어넣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결과, 2018년 ‘브라운핸즈 개항로’ 오픈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9개의 공간이 개항로에 자리 잡았죠.


경쟁자가 아닌 조력자, 노포와의 콜라보

많은 목간판들이 세워져 있는 앞에 개항로 돈까스 간판을 들고 있는 사람 두 명
이미지 출처: 개항로프로젝트 공식 인스타그램

개항로프로젝트가 그들이 창조한 감각적인 공간과 브랜드로만 주목받는 건 아닙니다. 이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터 잡은 개항로를 바라보는 방식에 있습니다. 개항로프로젝트는 SNS 계정을 통해 ‘개항로 이웃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의 노포를 소개해오고 있는데요. 노포의 스토리와 함께 적혀 있는 ‘개항로에는 이웃들이 살고 있습니다. 개항로프로젝트는 노포를 응원합니다’라는 문장에서 노포를 존중하는 그들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노포를 향한 이들의 마음은 단순히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60년 이상 간판 글씨를 써온 ‘전원공예사목간판’의 점주 어르신께 ‘개항로고깃집’, ‘개항로통닭’의 메뉴판, 간판 글씨를 맡기는가 하면, 5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쫄면의 발상지 ‘광신제면소’와 함께 ‘개항면’의 면발을 개발하기도 했죠. 노포를 경쟁 대상이 아닌 조력자로 바라봄으로써, 개항로프로젝트는 어떤 동네에서도 만나볼 수 없었던 고유함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젊은이들을 다시금 지역으로 유입시키는 결과를 낳았고요.

개항면을 사이에 둔 사람 두 명
이미지 출처: 개항로프로젝트 공식 인스타그램

개항로프로젝트가 노포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첫 번째, 인천시의 개발 역사에 있습니다. 적은 면적의 토지 대부분이 개발되어 낙후된 동네를 재개발하는 식으로 개발이 반복되었던 서울과 다르게, 인천은 갯벌을 간척하며 새로운 도시를 탄생시켰죠. 대표적으로 송도 신도시가 있습니다. 집중되어 있던 인프라를 하나둘 이전하기 시작하자 개항로는 슬럼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이 개항로의 옛 모습을 보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개항로 주변의 노포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인데요. 40년 넘은 노포들이 60개 이상 포진해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전략적인 접근에서 나옵니다. 개항로프로젝트가 만든 19개의 공간만을 홍보했다면, 사람들이 개항로에 와야 할 이유는 19가지 밖에 없는 셈이죠. 하지만 그 자체로 깊이 있는 콘텐츠인 노포를 소개함으로써 사람들이 개항로에 와야 하는 이유는 배 이상으로 늘어납니다. 방문객들은 노포와 새로운 공간을 고루 소비하면서 보다 입체적인 경험을 하게 되고, 이는 체류시간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죠.


가치를 보존하고 상생을 도모하다

오래된 간판을 떼고 있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개항로프로젝트 공식 인스타그램

노포 점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모습을 담아낸 이창길 대장은 노포의 매력이 ‘시간’에 있다고 말합니다. 유행을 타는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맛은 어떻게든 따라 할 수 있지만, 노포가 쌓아 올린 시간은 절대 따라 할 수 없다고요. 각종 SNS 채널과 영상 매체로 인해 지역의 격차는 사라지고, 모든 정보가 평등해진 세상입니다. 서울에서 유행한 음식을 얼마 안가 부산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시대죠. 개항로프로젝트는 이 흐름을 바라보며 차별점을 고심했고, 그 끝에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발굴한 겁니다. 오직 개항로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을요.

이들이 중시하는 시간은 노포뿐 아니라 개항로프로젝트의 공간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앤틱한 느낌을 풍기는 브라운핸즈 개항로와 ‘일광전구라이트하우스’는 각각 수십 년 동안 이비인후과, 산부인과로 쓰였던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공간 내부에는 당시 사용됐던 집기와 안내판, 벽지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전기구이 통닭을 선보이는 개항로통닭에는 몇십 년 된 졸업 앨범이 걸려 있는데, 중년의 손님들이 앨범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기도 한다고요.

두 장의 개항로 맥주 홍보 포스터, 끝맛이 좋아야 라거다, 레트로한 폰트로 '개항로'라고 쓰인 맥주 디자인
이미지 출처: 개항로프로젝트 공식 인스타그램

팬데믹으로 전국의 많은 상권이 침체되어 있던 2021년, 개항로프로젝트는 ‘개항로맥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로컬 브루어리 ‘인천 맥주’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개항로맥주는 개항로프로젝트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맥주병에 쓰인 굵고 단단한 ‘개항로’라는 글씨는 앞서 소개한 전원공예사목간판 사장님이, 맥주의 모델은 40년 넘게 극장 간판을 그리던 ‘삼화페인트’ 가게의 사장님이 도맡았죠. 말 그대로 누구나 마실 수 있게 하기 위해 비건 인증을 받는가 하면, 동네 아저씨들도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기성 맥주병에 쓰이는 500ml 용량의 갈색 병을 패키지로 골랐다고요. 개항로만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 인천 바깥의 다른 지역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겨울, 개항로프로젝트는 지역에서의 미식 경험을 제안하는 여행 서비스 ‘푸디온’과 협업해 미식투어를 오픈했습니다. 당일치기, 1박 2일 코스로 구성된 투어는 개항로의 노포와 개항로프로젝트의 공간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개항로에 머무르며 동네를 즐길 수 있도록 숙박 시설도 기획 중이라고 하네요.


INSTAGRAM : @gaehangro


최근 골목을 장악한 하나의 점포에 의해 시에 선정된 ‘백년가게’의 철거가 강제집행된 사례가 있었죠.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문화제를 열어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했으나 가게는 결국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필자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건물을 매입하고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꼭 오래되었다고 해서 보존되고 존중받아야 할 이유도 없죠. 하지만 다양성이 거세된 생태계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장은 노포의 생존이 중요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깊이 있는 실력과 철학을 가진 노포가 생존할 수 없는 업계라면, 과연 누가 도전을 하고 싶어 할까요. 노포는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품고 달리는 현세대의 미래입니다. 동네와 점포를 체험하고 이용하는 우리들의 역할은 그들의 철학과 시간을 알아봐 주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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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일

차이를 없애버리려는 시도에 반해,
무엇과도 구별되는 세계를 찾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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