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줄 서서 보는 전시’로 알려지며 큰 인기를 끌었던 서울시립미술관의 두 번째 해외 소장품 걸작 전이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 <빛 : 영국 테이트 미술관 특별전>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영국 테이트 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로 세간의 기대를 불러왔는데요. 이번 특별전을 관통하는 주제는 ‘빛(Light)’입니다. 18세기 풍경화, 19세기 인상주의 회화, 20세기 사진 및 설치미술 등 200여 년을 아우르는 풍성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참여 작가 43인 중 바실리 칸딘스키, 클로드 모네, 윌리엄 블레이크 등 미술책에서 한 번쯤 접해봤을 역사 속 화가들도 있지만, 비교적 최근으로 올라와 우리와 같은 현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 네 분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장소 특정적 예술의 선구자
’올라퍼 엘리아슨’
올라퍼 엘리아슨은 빛, 물, 공기 온도와 같은 재료를 사용한 조각 및 대규모 설치미술로 이름이 알려진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예술가입니다. 그는 건축, 도시 등 거시적인 공간을 통해 작품과 관객들이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독특한 관점을 제공하는데요. 1995년에 그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를 열고 다양한 설치 작업과 대규모 공공미술 작업을 진행하며 동시대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2003년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선보인 <Weather Project>로 본격적인 유명세에 오르게 됩니다. 200여 개의 전구를 이용해 태양을 구현하고 내부를 뿌연 안개로 채운 뒤 거울로 천장을 마감한 이 작품은 흡사 ‘인공 태양’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관객들에게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을 ‘설치가’라고 이야기하며, 해당 작품이 완성되는 지점은 태양 밑에서 책을 읽고 춤을 추는, 즉 시시각각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관객들에 있다고 전했는데요. 이처럼 그는 작품이 놓인 장소 그 자체를 중요한 맥락으로 사용했으며,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작품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가 만든 다채로운 빛의 세계 속에서 오감으로 작품을 체득하며 ‘예술가’로서의 관람객이 되어보세요.
시각문화에 새로운 변혁을 이끈 예술가
’댄 플래빈’
댄 플래빈은 뉴욕 출신의 예술가로 레디 메이드¹인 ‘형광등’을 작품 소재로 선택하며 현대 미술계에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불을 켜기 전엔 그저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형광등에 불과하지만, 불을 켜는 순간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데요. 그는 많은 재료 중에서 왜 형광등을 택했을까요? 그는 형광등의 빛과 그림자가 작품이 놓인 공간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현상에 매료됐습니다. ‘빛’을 통해 기존 공간을 해체하고, 그곳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보았는데요. 이처럼 빛을 통해 회화와 조각의 영역을 넘어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전환하려는 그의 철학은 현대 미술은 물론 건축, 음악에까지 혁명적인 의식의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그의 빛 작업에 출발점이 된 작품으로는 <1963년 5월 25일의 사선, 콘스탄틴 브란쿠시에게>가 있습니다. 이는 그가 처음으로 형광등 하나만을 사용했던 작품으로, 슈퍼마켓에서 산 2.4미터의 형광등이 전부였는데요. 누군가는 쉽게 지나칠 물건이었겠지만, 그는 신비로운 빛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또한 빛이 이끄는 새로운 세계를 만날지도 모릅니다.
- 레디 메이드: 일상적인 기성품을 활용해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예술 사조의 한 장르
경계를 통해 낯선 경험으로 이끄는
’아니쉬 카푸어’
시카고에 있는 강낭콩을 닮은 조형물 <클라우드 게이트>로 유명한 아니쉬 카푸어는 인도 출신의 영국 조각가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색인 반타 블랙으로 초대형 거울 조각품인 클라우드 게이트를 덮어 초현실적인 풍광을 이뤄낸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경계’를 통해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으로 이끌었습니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예술 작품에 새로운 경계를 부여해 관객들에게 ‘낯선’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바닥에 설치된 붉은 물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거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암흑의 지점인 반타 블랙을 사용하며 관객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 시키는데요. 그의 예술은 관객들은 감상자라는 수동적인 위치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닌, 경험을 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이동시키며 관객과 작품을 합일로 이끌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니쉬 카푸어는 여러 가지 경계를 제시하며 작품 속에 새로운 개념을 입히곤 하는데요. 이번 전시에서 그가 제시한 경계들을 따라가며, 작품에 들어가 작가의 손을 마주 잡는 여정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사유를 통한 숭고함을 발현하는 예술
’제임스 터렐’
미국 국적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은 아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이 아닐까 싶은데요. 원주에 있는 ‘뮤지엄 SAN’에 조성된 ‘제임스 터렐관’ 덕분에 국내에서도 인지도 있는 작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지각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수학, 물리학, 지질학, 천문학 등의 수업을 통해 훗날 작업을 위한 토대를 쌓았습니다. 특히 비행기 조종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상공에서 보이는 대자연의 모습을 경험하며 빛과 우주라는 세계에 매료됐는데요. 그의 작품은 공간에 놓여 있는 물체를 벗어나 공간 그 자체를 만들거나 일종의 건축, 혹은 자연이라는 더 큰 의미로 관객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퀘이커교의 독실한 신자였던 부모 아래 침묵과 정신적 수련을 동반하는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종교적 교육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의 작품에선 일종의 ‘숭고미’가 짙게 배어 있는데요. 덕분에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마치 내적 수련을 하듯 침묵 속에서 오랜 시간 작품을 응시하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임스 터렐은 빛과 공간을 통해 관객에게 숭고함이라는 감정을 발현합니다. ‘현대 미술은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예술’이라고 했던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 안에서 유유히 거닐고 사유하며 내면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소개해 드린 네 명의 예술가들의 공통점을 하나로 정리하면 장소를 작품의 일부로써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인데요. 그들은 장소를 그저 작품을 담는 공간이 아닌, 하나의 중요한 예술적 맥락으로 접근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인 ‘빛’ 또한 장소를 채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빛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충분히 사유하고 대화를 나누며 뜻깊은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기간: 2021.12.21 – 2022.5.8
장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실 1,2와 프로젝트 갤러리 1,2
시간: 화 – 토 10:00 – 20:00 / 일, 공휴일 10:00 – 19:00 (3-10월) 10:00 – 18:00 (1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