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대변하는
표지 속 작품 이야기

독서의 시발점이 될
북 커버를 장식한 작품들
Edited by

매대에 진열된 서적 중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는 책이 있습니다. 독자를 유혹하는 제목, 아름다운 만듦새와 그래픽들, ‘책의 첫인상’을 좌우한다는 북 커버는 누군가에게는 구매로 이끄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눈길을 끄는 북 커버 디자인은 출판사의 오랜 판매 전략 중 하나이지만, 독자들은 표지를 통해 이야기를 유추해봄으로써 직관적인 흥미를 느낄 수 있지요. 특히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특정 작품이 삽입된 경우 작품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합니다. 세 가지 사례를 통해 북 커버 속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세요.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팀 아이텔

이미지 출처: 한겨레출판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평론가로서 작품과 세상 사이에 가교를 놓고자 했던 저자의 삶이 녹아 있는 산문집입니다. 해당 작품은 2018년 발매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책 표지에 실린 작품을 인상 깊게 보았다는 감상을 이야기 했지요. 북 커버 속 작품은 제목과 결을 같이 하면서도 어딘가 음울한 분위기가 엿보이는 남성의 뒷모습이 눈에 띄는데요. 정적의 순간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이 그림은 독일 현대 미술 작가 팀 아이텔(Tim Eitel)의 “Mur vert”입니다.

이미지 출처: 팀 아이텔, ”Open Circle”, 2017
이미지 출처: 팀 아이텔, “Répétition”, 2016

팀 아이텔은 현대 세계에 대한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구상적 회화를 전개하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일상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지만, 어딘가 몽환적이면서도 생경하게 화면을 구성합니다. 때론 현장감이 두드러지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작업의 모티프가 직접 찍은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진을 촬영하고, 스케치로 옮긴 후 시각적인 요소를 단순해 작품에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명확히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관찰’. 도시인들의 외로움, 사회 변두리에 위치한 사람들, 불가피한 불행 등을 관찰하고 작품에 담아냄으로써 관객에게 의미를 되묻죠. 팀 아이텔 작품의 특성은 다양한 모양의 슬픔을 이해하고자 하는 신형철 작가의 글과 맞닿아 있습니다. 무궁한 관심과 관찰에서 비롯한 철학으로 빚은 두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세요.


나희덕 『예술의 주름들』
– 벨헬름 함메르쇼이

이미지 출처: 마음산책

지난 4월에 출간된 시인 나희덕의 『예술의 주름들』은 예술 작품을 대상으로 한 글을 엮어낸 산문집입니다. 오랜 시간 인문·예술 영역 전반에 걸쳐 읽기와 쓰기를 지속해온 작가는 ‘시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을 발견하게 해준 작품에 대한 찬사를 산문의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예술의 주름들』 역시 북 커버로 사용된 그림이 눈에 띄는데, 앞서 살펴본 팀 아이텔의 그림처럼 고요한 뒷모습이 책 속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 보이죠. 해당 작품은 덴마크 상징주의 작가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의 “Back View of a Young Girl”입니다.

이미지 출처: 빌헬름 함메르쇠이, “Interior with young woman from behind”, 1904
이미지 출처: 빌헬름 함메르쇠이, “Sunbeams”, 1900

빌헬름 함메르쇠이는 빛과 공간 구성에 탁월한 표현으로 유명한 아티스트 중 한 명입니다. 따스한 빛이 스미는 공간, 고요함과 신비함이 감도는 실내, 적막이 느껴지는 색 표현. 많은 영화감독들이 뮤즈로 꼽을 만큼 정도로 그만의 분위기는 어떤 서사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 특별한 힘은 작품을 마주한 이들을 멈춰 서게 만드는데요. 사실 그의 작품은 환희와 긍정보다 우울과 고요에 가깝습니다. 비록 첫인상은 어두운 면면이 부각될지 몰라도, 그저 바라보게 만드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녔기에 명상적 감상을 가능케 합니다. 이러한 함메르쇠이의 시적 표현은 나희덕 작가의 시선이 녹아들어 있는 산문집과 어우러져 특별함을 배가시킵니다. 어떤 고요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찾고 싶다면 이들의 작품을 눈여겨보세요.


이근화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 호아킨 소로야

이미지 출처: 마음산책

시인 이근화의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는 작가만의 풍부한 사유가 돋보이는 산문집입니다. 작가는 집안일을 하고, 네 아이를 돌보며, 학생을 가르치는 듯 평범한 일과가 반복되는 와중에도 깊은 사유와 통찰을 이어가지요. 작품에서는 ‘이 세계를 살아갔던 출렁거리는 여자들, 움직이는 예술가들, 발랄한 아이들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일’의 가치를 말하며 엄마와 딸 그리고 여성으로 사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산문으로 풀어나간 그의 다정한 시선을 스페인 작가 호아킨 소로야(Joaquín Sorolla)의 따스한 풍경과 함께 읽어 보세요.

이미지 출처: 호아킨 소로야, “Niña”, 1904
이미지 출처: 호아킨 소로야, “Walk on the Beach or Paseo a orillas del mar”, 1909

클로드 모네가 ‘빛의 대가’라 극찬할 정도로 낭만적인 풍경화를 전개하는 호아킨 소로야는 마치 햇살을 푹 떠서 안료 위에 녹인 듯이 빛을 표현합니다. 대표작인 바다 풍경화들은 바라보기만 해도 그리운 감정을 이끌지요. 그의 작품이 아련한 감정을 자아내는 이유는 작가가 직접 경험한 찰나를 그림에 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그림은 천천히 그릴 수 없어요. 모든 효과는 너무 일시적이므로 빠르게 그려야 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빠르게 작품을 완성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완성된 작품을 보면 현장감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작품의 캔버스 표면에 모래알이 더러 섞여 있을 정도로, 작가는 백사장에서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빠르게 캔버스 위로 올렸다고 합니다. 소로야가 그린 따스한 빛은 따뜻한 언어의 산문집과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어우러집니다.


단발적일 수 있는 작품 경험에 다른 장르가 더해지는 순간, 감상은 더욱 다채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간 표지에 삽입된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잠시 머물러 보는 거 어떨까요. 자칫 ‘예쁜 장식’으로 비치기 쉬운 북 커버가 때론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현예진

현예진

비틀리고 왜곡된 것들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글로써 온기를 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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