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6월 2일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개막합니다. 영화제가 생소한 분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기후변화의 긴급함을 주제로 한 세계 3대 환경영화제입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지구와 생멸을 함께하는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을 논의하는 장으로서 활약하고 있지요. 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는 총 25개국의 73편 작품이 상영될 예정인데요. 그중에서도 상영 전부터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으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다섯 작품을 소개합니다.
<애니멀>
기후변화가 대중에게 막연한 두려움이라면, 누군가에겐 실재하는 공포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영화 <애니멀>은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릴 디옹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로, 16세 청소년 환경 운동가인 두 주인공이 세계를 여행하며 지구의 현 상태를 진단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50년 동안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 야생 동물의 50%가 멸종된 현상을 마주 보고 ‘대멸종’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영화 속 이야기가 더 특별한 이유는 기후변화에 분명한 공포를 느끼는 10대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젊은 세대의 시선에서 비롯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현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마냥 비관하지 않습니다. ‘행동’을 선택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듯이 말이죠.
<플라스틱 표류기>
인적이 드문 해안가, 모래사장 위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플라스틱 폐기물들. 이 쓰레기는 어디서, 누구에게 버려져, 어떻게 떠내려온 걸까요. 이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독일 출신 감독 슈테판 크로네스는 플라스틱 폐기물 이동 경로 추적 실험을 진행합니다. 중부 유럽의 강이 북극해와 연결되어 있는지, 플라스틱 쓰레기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감독의 단순한 궁금증은 깊이 있는 과학 연구 프로젝트로 확장됐죠. 감독과 엔지니어, 저명한 과학자들은 엘베강에서 GPS 부표를 띄워 슈테판의 가설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이들의 연구를 기반한 영화는 유럽의 폐기물이 지구의 가장 먼 구석까지 오염시킨다는 사실을 충격적인 이미지와 아름다운 풍광의 교차로 생동감 있게 구현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분명한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싶다면 슈테판이 띄운 부표를 따라가 보세요.
<그만 좀 하소>
한국은 소를 싸움시키는 행위를 전통이라 부르며 합법으로 규정한 최초의 국가입니다. 동물보호법 명시된 바 없어 보호받지 못하는 소들은 원치 않는 싸움에 내몰렸죠. 이러한 문화에 문제의식을 느낀 심영화 감독은 소싸움대회에서 희생되는 소들을 조명한 영화 <그만 좀 하소>를 제작했습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청도 소싸움대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한국의 10대 문화관광축제’에 선정될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인데요. 대회를 주관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소들을 끌고 와 무작정 싸움을 붙입니다.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경기장의 소들은 피를 흘리고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기 전 소싸움을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고통스러워하는 소들을 마주하게 되고, 소의 시각에서 이 전통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비 만들기 프로젝트>
오랜 기간 가뭄이 지속되고 있다는 소식이 더는 낯설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지구 온난화와 가뭄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했죠. 그렇다면 비를 만드는 행위는 어떨까요? 핀란드의 다큐멘터리 감독 투이하 할투넨은 과학자 한넬레 코르호넨의 사례를 토대로 영화 <비 만들기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주인공 한넬레 코르호넨은 극도로 건조한 지역에 비를 내리게 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150만 달러(약 19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를 지원한 아랍에미리트연합국(이하 UAE)의 자본가들이 원하는 진짜 의도는 따로 있었는데요. 과거의 수많은 환경 수정 시도가 군사적 목적을 위한 경우가 많았고, UAE는 환경 수정 기술 제한하는 조약에 비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화는 과학과 윤리의 대립을 담고 있지만, 명확한 답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대신 환경을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되묻고 있지요.
<바캉스 타운 마갈루프>
스페인 마요르카섬에 위치한 작은 휴양지 마갈루프. 겉보기엔 마냥 아름다운 섬이지만, 이곳에는 깊은 그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평화로워 보였던 마을이 한순간 스산해지고, 경찰차와 구급차도 멈춰서지 않는 무법지대로 변한 것이죠. 감독 미겔 앙헬 블랑카는 다큐멘터리 영화 <바캉스 타운 마갈루프>를 통해 마갈루프의 현상황을 고발합니다. 마갈루프는 휴가철에 영국인 백만 명이 몰릴 정도로, 밤의 향락으로 유명한 유럽의 대표적인 저가 여행지입니다. 잠시 머물다 떠날 관광객들은 도시의 존속에는 개의치 않고 마갈루프를 휘젓고 다니는데요. 반쯤 혼수상태인 채로 해변을 누비고, 어디에서나 소음을 발생시킵니다. 한때 도시를 사랑했던 이들은 떠나고, 그 빈자리를 관광객이 채운 지금. 일상이 재난으로 변한 도시의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매일을 빚어가고 있을까요?
우리가 단단히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이름은 지구입니다. 초록 생명이 넘실거리고 신선한 공기 덕분에 수많은 동물이 활기를 띠며 대대손손 사랑을 전하고 있죠.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영화들은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순간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넌지시 묻습니다. 당신이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내일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