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고 프리스타일’이란 유튜브 채널을 종종 즐겨봅니다. 그중 특히 뮤지션의 대표곡 중 몇 개의 ‘킬링 벌스’를 모아 라이브로 선보이는 코너가 있는데요. 이를 통해 저는 힙합 그룹 ’호미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동년배의 동네 친구 셋이서 꾸린 팀은 각 멤버가 짠 듯이 매력적이고 서로 다른 톤의, 합쳐졌을 때 힘이 배가되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무엇보다 에너지가 대단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세상을 물어버릴 것 같은 카리스마가 있다고나 할까요?
이후 호미들의 첫 번째 정규음반 [GENERATION]을 꺼내 들었습니다. 과연 ‘세대’라는 음반 명처럼 그 안에는 다양하고 날 선 세대의 목소리가 담겨있었습니다. 여기 집중하며 래퍼 호미들이 사랑받는 이유를 ‘공정성’이라는 시대 담론 속에서 분석해보려 합니다. 이들의 음악에는 특정 세대의 어떤 시선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더욱 흥미롭게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음반의 수록곡 ‘Businessman’과 ‘말했었잖아’를 미리 들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머니 스웩’과 ‘가난 서사’
‘벌고서 보니까 이거만 한 게 없더라 ** 최고야 명품과 사치 Ferrari 488’
위 가사는 수록곡 ‘generation’의 일부입니다. 명품, 사치, 그리고 비싼 차. 이들의 가사에는 공통적으로 이것들이 반복됩니다. 힙합 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머니 스웩(swag) 즉, 자기 과시입니다. 반복되는 경쟁을 통과해도 미끄러지기만 하는 오늘날 아무리 힙합이라고 해도 진정성 없는 머니 스웩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공정성이 사회적 화두가 된 지금 음악 청취자들이 이들을 ‘진정한 래퍼’로 인정했을 때야만 래퍼로서의 실력을 인정받고 스웩은 스웩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미들이 진정성을 얻는 부분은 ‘가난 서사’입니다. 처음 대중의 관심을 끈 EP [Ghetto kids]를 비롯해 이들이 계속해서 끌어오는 게토(빈민가)란 단어는 실제 어린 시절을 응축합니다. 힘들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수록곡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매일 밤 날 태우고 여주로 데려가던 그때 그 봉고차’ ‘가끔 영등포 폐가 때처럼 땀 흘리며 인나’
지금은 ‘주머니가 무거워서 바지가 안 올라가’는 삶을 살지만 곡 안에서 구체적이고 자주 회자하는 가난의 경험은 곧 호미들의 정체성이 됩니다. 즉, 가난을 이겨내고 차, 명품, 부를 노래하는 이들의 머니 스웩은 ‘진정성’이란 허들을 통과하며 대중의 공감을 삽니다. 다른 래퍼들도 다 하는 스웩에 가난 서사가 맞붙으며 호미들만의 진짜 스웩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노오력’과 ‘성공의 증명’
또 하나 이들이 진정성과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내세우는 것은 ‘노오력’입니다. 노력 말고 노오력. 다시 한번 가사를 가져왔습니다. 다음은 수록곡 ‘Business man’과 ‘뚝’의 일부입니다.
‘쟤네들은 가사 쓸 때 전부 허위로 / 우린 우리만의 노력으로 전부 이뤄’ ‘바쁜 척해 술자리에서 보여 매일 / 우린 여전히 작업해 / 나는 직접 만들어 내 돈’
노오력이 느껴지시나요? 큰 부를 얻었지만 여전히 작업하고, 허위가 아닌 진정성 있는 가사로 랩을 쓰는 이들의 노오력은 앞서 살펴본 가난의 경험과 맞닿으며 완전무결의 서사적 완결성을 획득합니다. 뒤따른 ‘성공의 증명’ 역시 마찬가지로 질투, 비난보단 동경의 시선 쪽으로 흐릅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영앤리치가 된 호미들의 서사에 1020세대가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이들이 성공을 증명하는 과정이 올드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힙합은 원래 그렇다’라는 본질주의적 접근을 해야할 것 같은데요. 과거부터(간혹 지금도) 힙합에서 여성은 늘 ‘Bitch’, ‘hoes’ 등의 추임새로 소환됐습니다. 이런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한 데에는 미국 사회의 계급 구조가 녹아있습니다. 성매매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 흑인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 흑인 남성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동시에 혐오하는 감정을 랩에 담으며 시작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명백히 여성 혐오적 표현입니다. 다음 가사를 볼까요?
‘우리가 바지 내릴 때 넌 앞머리나 내리고’ ‘밥 먹을 땐 아무거나 먹지만 / 하룻밤을 보낼 땐 언제나 미식가’ ‘그녀는 먹고 싶어 해 내 빠삐코 / 백화점으로 산책 화장실 갈 때 아니면 1층만 가네’
이 외에도 호미들의 가사 속에서 여성은 그저 ‘싼 티가 나는 여자 BJ’로, ‘hoe girl’로, 나아가 ‘bitch’로 차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관심받는 이유
결국 이들이 대표하고 연대하고 손을 얹는 것은 ‘차용되지 않고 차용할 수 있는, 차용하는 것을 꿈꾸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음반 명인 ‘세대’가 지칭하는 것 역시 앞선 예시의 사람만을 포함합니다. 음반의 마지막 곡인 ‘Outro’를 통해 호미들은 ‘이젠 우릴 믿고 도전해 my friend’라는 위로를 건넵니다. 이들이 말하는 친구는 누구일까요? 앨범의 끝까지는 어떤 청취 층은 끝끝내 비가시화될 뿐입니다.
누군가는 비가시화되고, 성공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일 뿐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구조는 호미들이 관심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특정 세대, 특정 사람들의 현실과 욕망을 잘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 성공, 책임감, 그리고 여성을 통한 과시 등등.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은 아니고 또 타인의 욕망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음반이 ‘가난 서사’를 극복하고 래퍼로서의 ‘진정성’을 획득한 ‘20대의 남성’을 담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일면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쓰라린 이 초상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함께 읽은 호미들의 정규 1집 [GENERATION]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저는 이 음반이 반짝반짝 빛나는 동시에 참 씁쓸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배제를 어떻게 풀어가며 ‘가난 서사’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관건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풀어가느냐 일 테니까요. 저와 함께 호미들의 미래를 같이 주목해보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