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전시가 많이 개최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문화 생활로서 전시를 관람하고 전시 관람을 취미로 즐기시는 분 또한 많아졌지요. 일상에 예술을 가까이 두고 향유하는 것은 더 나은 삶 그리고 다채로운 미래를 만들어 준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미술관에 간다고 해서, 미술 작품 앞에 서 있다고 해서 기대하던 마법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죠. 더 적극적으로 미술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미술은 우리에게 반짝이는 깨달음과 영감을 선물해 줍니다. 물론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올바른 감상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미술 기관의 시스템과 문화 그리고 최소한의 에티켓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등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는 더욱 가치있는 감상을 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더 유익하고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만들어 줄 다섯 가지 팁을 소개합니다.
덜 보고 더 이야기 하기
미술관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많은 일입니다. 우리는 길지 않은 거리를 천천히 쉬어가며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술관 안에서 우리의 걸음은 불규칙적이고, 걷다 서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더 쉽게 지칩니다. 거기에 더해 미술 작품이 주는 여러가지 자극은 우리의 눈과 뇌를 더욱 피로하게 만들죠. 만약 더 많은 작품을 보겠다고 무리해서 움직였다면 특히 더 그렇습니다. 게다가 미술관은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넉넉하게 마련하지 않죠.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은 “미술관 안에서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걸어라”라고 제안합니다. 반드시 휴식을 취하고, 모든 것을 보려고 하지 말고, 이따금 앉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죠.
미술관과 갤러리 주변에는 레스토랑 혹은 카페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분과 끼니를 챙기면서 쉴 수 있고, 무엇보다 이곳은 방금 감상한 미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전시장은 으레 너무 조용하거나 너무 북적이기 마련이죠. 앉을 만한 곳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레스토랑에서는 편안히 자리 잡고 앉아 작품으로부터 받은 인상에 젖어 깊이 사색 하거나 혹은 인상을 서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거 봤어?” 혹은 “그 작품 다시 한 번 볼까?” 작가 레이철 하트먼은 ‘미술은 대화다’라고 주장합니다. 같은 작품을 감상하고 서로 다른 인상을 공유하는 것은 아주 값지고 소중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미술을 섭취하고 그것을 소화하는 데는 너무 적은 시간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잊지 맙시다. 덜 보고 더 이야기 하는 것을.
피하지 말고 즐겨라
미술관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에게는 흔한 선입견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술은 미적으로 예쁘고 아름답다는 것이죠. 일부 맞는 말이지만, 모든 예술이 곱상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때론 불쾌하고, 불편하기도 하며 혐오스러운 미술도 있죠. 예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작품 때문에 예술과 거리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는 당연한 반응이고 작품을 이해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놀라거나, 울먹거리거나, 화가 나거나, 소리를 지를 수도 있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내가 작품을 처음 대면하고 느낀 감정에 집중해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 다음은 내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이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을 처음 보고 제가 느낀 감정은 ‘징그럽다’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왜 이 작품이 징그러운 것일까?’ 바로 동성애와 성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없거나 부족했기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품에 한발 더 다가갔다면, 다음 걸음은 더 간단합니다. 자연스레 ‘왜 작가는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가?’를 살펴보고, ‘이 작품으로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나의 관점이 아닌 메이플소프의 관점으로 동성애와 성적 취향을 바라보길 시도했고 100%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처음에는 징그럽게만 느껴졌던 흑인 남성의 발기된 성기 사진이 아름답게 보이고 채찍을 항문에 넣고 대담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미술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고 현실은 곧 자신의 삶과 이어집니다. 그리고 미술은 감상자의 모든 감각을 자극합니다. 따라서 미술관에서 종종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은 좋은 신호란 것이죠.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복합적인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감정은 자신도 몰랐던 감정의 경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인생의 흥미로운 사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니 피하지 말고 즐겨 보세요.
열린 마음으로 미술을 정의하기
추상 회화부터 레디메이드, 행위 예술 등 예술의 형태는 정말 다양하고 시시때때로 변모합니다. 이런 경향은 개념미술의 범주 안에서 더욱 심화되었죠. 따라서 “이게 예술이야?”하는 근본적인 물음은 어느정도 타당합니다. 하지만 정의 할 수 없다고 예술이 아니라고 결론짓는 것은 너무 섣부른 판단입니다. 피터 알렉산더의 우레탄 조각을 보고 “이게 다야?”하는 의문과 잭슨 폴록의 흩뿌려진 물감을 보고 “이건 우리 아들도 하겠네”하는 생각은 예술을 너무 단순하게 정의하고 실망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능한 최선의 방식과 노력으로 미술을 정의하는 것은, 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태도입니다. 그렇다고 미술을 정의하는 방법에 정답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술은 다양한 해석의 기회를 열어 놓고 있죠.
2015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색면추상의 거장 마크 로스코의 전시가 있었습니다. 작품을 보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는 친구의 후기를 듣고 기대에 찬 마음으로 전시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이 메말랐던 것일까요? 저는 작품 앞에서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한 채 멀뚱히 서 있기만 했죠. 그때 한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손을 이끌고 로스코의 작품을 가리키며 “와~ 김이다!”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센세이셔널한 감상평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앞에 있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 앞에서 눈물짓는 사람들은 모두 김을 보고 울먹이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죠.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로스코의 작품은 알록달록한 김에 불과했습니다. 그 아이는 이번 전시가 얼마나 흥미로웠을까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질문을 던지고, 미술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전문가들 입니다. 모두 미술 비평에 중요한 태도와 관점이죠. 아무리 난해한 미술도 어려워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미술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창의적인 해석을 들려 줄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좋은 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술을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취향이라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와인이나 치즈처럼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미술을 탐구하는 데 최소한의 지식은 필요하지만, 미술을 즐기는 데 필요한 것은 약간의 맥락과 열린 마음가짐이 전부입니다. 적극적으로 작품 이면을 발견하고자 노력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작품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점을 잊지 않는다면 예술과 더욱 친해지고, 보람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상자 관찰하기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만을 보는 것도 좋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 작품을 감상하는 다른 관람객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미술관은 사람들을 관찰하기 더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미술 작품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감탄하거나 놀라거나 어떤 영감을 받기도 하죠. 다른 관람객이 이런 순간을 경험하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작품 앞에 오래 머물고, 무슨 표정을 짓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는 것이죠.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연인이 서로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키스>란 작품 감상 경험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정말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의 순간을 느낄 수 있죠. 어린 소녀가 제프 쿤스의 <풍선 개>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환해지는 장면을 보는 일 또한 정말 귀한 경험입니다. 저에겐 앞서 이야기한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을 어느 노부부가 서로 낄낄거리며 보는 장면이 정말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품 앞에 서 있는 것과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미술은 벽에 걸려있는 작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그것을 보는 사람과 만나 일어나는 사건을 말합니다. 이런 순간을 가장 잘 관찰하기 위해서는 작품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이되 사람들의 얼굴이 잘 보이는 위치를 선점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기
미술관 안에서의 침묵은 불문율같이 여겨집니다. 도서관이나 영화관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을 에티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미술관 안에서 대체로 말을 삼가는 편입니다. 미술을 사랑하는 수백 명이 모였지만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일이 미술관에서는 가능합니다. 이런 장소에서 낯선 이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쉽지 않죠. 하지만 미술관 안에서 낯선이와의 대화는 더욱 깊은 미술 감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조심스럽게 간단한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과 작품에 대한 감상 혹은 비평 등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것이죠. 상대의 미술사적 지식이나 개인적인 경험 덕분에 앞에 놓인 미술 작품이 새롭게 보이는 놀라운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관람객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낯선 사람과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더라도 그런 기회를 만드는 편이 좋습니다. 미술관은 다른 어떤 곳보다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장소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미술관 안에서는 말을 하고싶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 또한 존중해야 합니다. 미술관은 침잠의 평화와 고요를 경험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이기도 하니 말이죠.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말합니다. “여기에 낯선 이들이란 없다. 그저 아직 만나지 못한 친구들이 있을 뿐.”
p.s.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전시장 한편에 놓인 방명록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방명록을 읽어본다면 다른 사람의 전시 감상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죠. 또 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유익하고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전시장에 입장하기 전이거나 혹은 전시를 보다 잠시 휴식하는 중이라면 미술관 직원에게 추천을 받는 것 또한 좋은 감상 방법 중 하나입니다. 마치 서점의 ‘MD 추천’을 미술관에서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이죠.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매표소 직원, 갤러리의 경비원 혹은 레스토랑의 웨이터에게 가볍게 질문하면 됩니다. 모두 미술과 가까운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잭슨 폴록과 솔 르윗같은 화가들도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한 적이 있죠. 그분들에게 이번 전시에서 무슨 작품을 봐야하고, 어떤 작품을 추천하는지, 추천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묻는 것입니다. 친절하게 부탁한다면 그들은 친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소개해줄지도 모릅니다. 사적인 일화도 하나쯤 곁들여서 놀랍고 흥미로운 설명을 들을 수도 있겠죠. 이는 작품에 대한 예술적 분석보다 가치 있는 것입니다.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도슨트(가이드) 투어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추천합니다. 도슨트 투어를 통해 미술에 직접 개입하고,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어떻게 보았는지 알 수 있으며, 그 의미에 관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혼자 하는 감상보다 더 많은 감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죠. 좋은 도슨트 투어란 사실의 나열과 정보 전달을 넘어 자유롭게 의견을 토론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가 투어의 일원으로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전시 감상은 없을 것입니다.
미술은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더 가치있는 경험을 선물해 줍니다. 그동안 미술이 어렵고 힘들었다면 오늘의 팁이 앞으로 미술과 친해질 수 있는 단초가 되어 주었길 희망합니다. 더 나아가 미술로써 삶이 윤택해지고 괜찮은 방면으로 변화하는 것을 한번쯤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서문에서 이야기한 미술이 선사하는 현실의 마법을 말이죠.
- Johan Idema, How to Visit an Art Museum, Bis Publishers,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