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여전히 추운 날씨에 사람들은 출근길을 재촉한다. 연말 길거리를 장식했던 휘황찬란한 조명들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없다. 빽빽한 고층 빌딩 숲 사이사이로 사람들은 제각기 사라진다. 그 얼굴들엔 여전한 삶의 고단함과 피로가 엿보인다. 코로나19 확산 탓인지 새해를 맞는 모두 더 좋아지길 바라는 기대감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는 두려움이 더 커 보인다. 그 밖의 풍경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인들의 새해는 어땠을까. 기다리던 전화를 받았을지, 혹은 여전히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지. 어떤 결과가 되었건 받아들여야 한다. 주제는 적절했던가, 혹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놓친 부분은 없었던가, 결국 부족했던 점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무엇을 위해 우리는 더 나은 이야기를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하는지 말이다. 신춘문예 등단을 위해서 기도 하지만, 등단의 기회는 사실 매년 있는 일이 아니던가. 더 중요한 건 사실 따로 있다.
주현우 에디터의 ‘신춘문예, 신인을 위한 축제인가?’를 정독했다.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는 그의 말은 옳다. 신춘문예를 향해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엔 동의한다. 그러나 그 문제를 풀어 나가는 논지에 다소 이견이 있다. 본 글을 통해 그 이견의 근거를 하나씩 서술해보고자 하는 한편,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나는 주현우 에디터와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패기 넘치는 신인’과 ‘패기만 넘치는 신인’
심사위원이 작품과 예술을 평가하는 경쟁 시스템에서는 심사자의 자격과 선택의 시시비비에 대한 논란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 따라다닌다. 신춘문예 역시 결국 수많은 참가자들의 작품들 속 우열을 가리는 경쟁의 장으로, 심사위원단의 선택에 따라 참가자들의 희비는 나뉘게 된다. 출판 문학계에서는 신인들의 등단을 통해 기존 문학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올 수 있는, 동시에 모두의 눈과 귀가 쏠리는 큰 행사다 보니 심사위원의 선정에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주현우 에디터 님이 지적한 비판은 합리적인 의심으로 보인다. 심사위원의 자격에 대해 ‘어느 정도 검증된 작가’ 임과 동시에 도덕적으로도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할 것. 물론 그런 인물들의 숫자는 몹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터라 한 두 작가가 여러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겸하는 경우가 벌어지기도 한다. 서른 개에 달하는 신문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진행하는 큰 행사인만큼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양성이 결여된 심사위원의 선정에 대한 비판으로 한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좀 더 다양한 평가자의 개입과 등용으로 신춘문예 심사의 보완과 개선을 이루자고 말이다. 지극히 제한된 심사위원 풀(pool)과 함께 기성 작가들의 평가 안에서 과연 참신하고 새로운 물결의 작품이 선택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은, 작품을 대하는 심사위원들의 자질 이상의, 그러니까 적어도 이러한 경쟁 시스템에선 어찌할 수 없는 ‘선택받지 못한 소수의 작품성’에 근거하고 있다. 신춘문예라는 경쟁 시스템에서 선택받지 못한 어떤 실험적인 작품 한 편이 훗날 한국 문학의 주류로 주목받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건, 일면 수긍할 만한 지점이나 그것을 과연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대안은 누구도 제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허하다.
실험적 시도와 참신함은 심사위원을 비롯한 모두가 바라는 바이나, 그 모든 건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관통할 수 있는 ‘시대정신’과도 조응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 작품 모두를 ‘실험적’이라고 부를 순 있으나 그 시도 모두가 높이 평가받는 건 아니다. 실험성과 함께 그 주제를 작품 안에 얼마나 촘촘히 엮었는지, 치밀하게 전개했는지 등, 이 모든 요소들을 종합해서 결국 작가가 작품성으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단지 ‘실험적’이고 ‘참신한’ 시도에 지나친 경중을 두는 건, 다른 의미로 편향된 평가의 잣대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패기 넘치는 신인’이라고 명명한 그의 표현을 조금 수정해보고자 한다. 패기 넘치는 신인이 아니라 ‘패기만 넘치는 신인’ 이어선 안된다고 말이다. 우리가 문학을 통해 가늠하고자 하는 건, 단순한 재미 이상의 ‘시대정신’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이는 비단 신춘문예뿐만이 아니라 모든 경쟁, 경연, 오디션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과거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작품, 혹은 아티스트가 훗날 주목받더라도 예전 그 경연의 수준과 질을 논하지 않는다. 대중성과 작품성, 그리고 실험성은 적절하게 어우러져야 하며, 그 모든 요소들이 신춘문예에선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패기 넘치는 신인’의 조건을 참신하되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않는 작가로 정의한 그의 주장에 이견을 제기하는 바다.
좋은 작품은 결국 유희열을 만나게 된다
신춘문예는 매 년 많은 사람들이 등단의 꿈을 안고 작품을 제출하는 축제의 장이다. 그 숫자를 대략 가늠해보자면, 작년 12월 3일 응모가 마감된 2022 문화일보 신춘문예에는 시·단편소설·동화·문학평론 4개 부문에 1263명이 총 4020편의 작품을 응모했다고 한다. 시 응모작이 총 3425편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단편소설 389편, 동화 188편, 평론 18편 순이었다. 주현우 에디터의 말대로, 이런 많은 작품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의 입장을 감안해보건대, 객관성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개인의 주관과 취향이 개입될 여지는 너무나도 많다. 작품을 평가하는 나름의, 그리고 최소한의 객관성은 분명 있겠지만 AI가 아니고서야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말이 오히려 어색할지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과연 ‘K팝스타라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유희열이 없었다면 과연 안예은이라는 걸출한 아티스트가 주목받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그의 우려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 역시 나는 다른 가능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지원과정에서 ‘안예은 그녀가 ‘유희열’의 존재를 인지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가설 말이다.
과거에는 일반인들에게 신춘문예가 주요한, 그리고 유일한 등단의 통로로 기능했다. 그러나 신춘문예에서 정의하는 문단 문학과 주류 문학의 정의 역시 도서출판 시장의 상대적 쇠퇴와 함께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인데다가,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는 작금의 시대에서 그 통로와 매개를 되려 신춘문예에 한정할 필요는 이미 없어졌다. ‘새로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전의 출판사의 기능과 역할에서 조금 더 확장하여 SF소설을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 소설을 주로 출판하며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는 출판사 ‘아작’과 ‘요다’를 비롯해서 ‘오늘의 SF’를 발행하고 있는 아르테 등은 각자 자신들만의 ‘유희열’을 자처하며 범대중적인 이야기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이야기와 작가들을 찾고 있다. 안전가옥과 리디 역시 그 연장선 상의 플랫폼으로써 기존 출판시장에 국한된 활동을 넘어 영화와 드라마, 웹툰의 원작이 되는 소설들의 원천 IP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현 출판시장에선 다양한 ‘유희열’들이 부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이 둔화된 문학 출판 시장에서 작가로, 출판사로 살아남기가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에서 새로운 생태계는 이미 구축되고 있다. 자신만의 확고한 독자층과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연결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등장하며 오히려 이야기의 다양성은 전보다 더 다채로워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주현우 에디터 님께서 장강명 작가님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처럼, 다양한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해보라는 조언은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작품을 알아봐 줄 ‘유희열’을 알아보는 눈과 감 또한 키우기를 바란다고 첨언한다. 누구보다 내 작품의 기획의도와 작품성, 그리고 확정성 모두를 적합하게 판단해 줄 수 있는 주체를 먼저 인지한다면, 그것 역시 빠른 등단과 등용의 첩경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말이다.
그들이 바라는 건 ‘낙원’이 아니다
바로 얼마 전부터 신춘문예 당선작과 당선인 명단이 속속 발표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렸을 소식이었을까, 감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 인고의 세월, 혹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했을 억겁의 시간을 견디며 그들은 계속해서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던 셈이니 무엇을 위한 시간이었을까. 이번 광주일보 2022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박정수 교수의 사례야말로 등단을 꿈꾸는 이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고스란히 드러낸 듯 했다.
그는 30년째 통계학을 연구해 온 이과 전공 교수로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광주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부문에 응모해 드디어 등단의 기쁨을 맛 본 셈이다. 짤막한 그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의 마음가짐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이에 더하여 단순한 등단을 넘어 꾸준히 쓰는 힘을 증명한 아주 좋은 예시가 되어주었다. 그에게선 은근과 끈기, 자신만의 철학을 관철한 신념만이 있을 뿐 호기로운 패기는 없어 보였다. 그 자리엔 겸손과 정주의 기쁨만이 보일 뿐이었다.
“청소년 때부터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짓고 싶어 했기에, 통계학을 공부하면서도 꾸준히 소설을 읽었습니다. 나이 40이 넘어서야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마침내 등단의 기쁨까지 맛보게 됐습니다.”_박정수 교수
그는 출품작 단편소설을 통해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팬데믹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담아냈다. 그는 “현재의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마치 과거 군사정권의 압제와 닮았다고 상상했다”고 했다.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를 얻었듯이, 바이러스를 이겨내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당선의 변을 표현했다. 다른 당선자들 역시 경력과 경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등단에 임하는 자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바라던 ‘낙원’행 입장권을 손에 쥔 듯한 기쁨과 희열은 보이지 않았다.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격려사로, 최수철 소설가는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글쓰기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투철한 의지와 문학에 대한 소명 의식만이 글쓰기를 이끌어나갈 힘”이라고 표현했다. 박제균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역시 축사에서 “신춘문예 당선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당선자는 문학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달리는 열차의 자유 입장권을 손에 쥔 것”이라며 그들의 진정한 시작을 격려해 마지않았다. 이를 통해 등단을 한 이들의 마음가짐을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바라는 건 ‘낙원’이 아니라, ‘그것을 찾는 입장권 티켓이 아닐까’라고.
각자의 낙원을 찾는 여정에 앞서 진정한 출발선에 선 새로운 작가들의 시작을 응원하며, 2022년 신춘문예 당선자 모두의 여행길에 영감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 브레이크뉴스, 전남대 박정수 교수, 신춘문예 당선 ‘화제’, 2022
- 문화일보, 믿기지 않는 당선… 글 쓸 자격 생겼죠, 2022
- 동아일보, “당선은 벅차면서 두려운 일… 치열하게 쓸 것”, 2022
- 기획회의 편집부, 『기획회의 551호 K-컬쳐와 북로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