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조 추상화 거장
정상화의 세계

반복된 행위로 만들어지는 요철
그 틈으로 내재되는 작가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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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창 진행 중인 기획 전시 ‘정상화 개인전’에 다녀온 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술에서 오리지널리티를 형성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정상화의 노동 집약적 작업 방식은 유독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그의 연대기를 따라 관철되는 작업 방식의 변화는 일반인들이 보아도 설득력 있는 서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색조 추상, 격자화의 대표 주자로 표상되는 묵묵한 예술의 실천, ‘정상화’를 소개합니다.


‘정상화’를 이야기하다

정상화

1932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정상화는 한국 추상미술에 있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일궈온 사람입니다. 회화를 근간으로 판화, 드로잉, 데콜라주, 프로타주 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며 평면작업의 가능성을 탐색해왔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미술사적 의의가 있는 예술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던 작가와 작품에 주목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머물며 작업했던 여러 공간(서울, 고베, 파리, 여주)과 시간을 이어 연대기적 흐름을 큰 축으로 합니다. 정상화만의 추상실험의 결실인 격자 구조 화면은 치밀하게 계획된 노동 집약적 예술 행위의 결정체로 평가받는데요. 그가 단조롭고 수고롭게 “뜯어내고 메우는” 과정에 다다르기까지 모습을 면밀히 관찰합니다.


추상 실험

정상화, “작품 65-B”, 1965, 캔버스에 유채, 삼성미술관 리움, 사진 이만홍
상화, "작품 64-7", 1964
정상화, “작품 64-7”, 1964,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1953년부터 1968년까지는 정상화가 대학 입학 이후 일본 고베로 이주하기 전까지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사물이나 인물, 풍경 등을 재현하기 위한 기초 훈련을 받아 정물화나 인물 크로키와 같은 구상회화를 주로 그렸지만, 1957년 졸업 이후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현대미술가협회(1956–1961)와 악뛰엘(1962–1964) 등에서 당대 젊은 작가들과 함께 비정형의 표현주의적 추상에 몰두했던 정상화는 전후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화폭에 담을 수 있을지 주목했죠. 그는 강렬한 몸짓으로 역동적인 화면을 구사하고, 물감을 던지고 뭉개버림으로써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로서의 뜨거운 에너지를 표출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무렵부터 앵포르멜의 후기적 요소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1967년 1차 도불 후 1969년 일본 고베로 건너가기 전까지 그의 화면에서는 점차 격정의 에너지가 사라지고 갈색이나 회색 위주의 어두운 색조가 나타났습니다. 《정상화 도불전》(신문회관, 1967) 리플릿 표지로도 등장했던 “작품 65-B”(1965)는 앵포르멜 특유의 두터운 마티에르 효과는 그대로였으나, 화면 위의 힘이 보다 정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

정상화, "무제 74-F6-B", 1974
정상화,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1969년부터 1977년까지는 정상화가 일본 고베로 이주하여 활동하던 고베 시기에 해당합니다. 1년 남짓 파리로 떠났다가 고베로 건너가 체류했던 8년이라는 기간은 그의 작품 세계에 있어 가장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던 시기였죠. 작가 스스로도 일본에서 그림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 만큼 이 시기에는 다양한 기법이 실험되었으며, 앵포르멜 화풍에서 벗어나 단색조 회화로의 변모가 나타났습니다. 1972년부터는 화면 위에 기하학적 도형의 사용은 줄고 백색의 범위가 점차 화면 전체로 넓어져 올 오버 페인팅(all-over painting) 작품이 등장합니다.

1973년부터는 백색 위주의 단색조 회화가 다수 제작되었고, 이후 그의 작품에 있어 격자형 구조가 주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1967년 ≪제9회 상파울루비엔날레≫(상파울루 비엔날레, 상파울루, 브라질)에 출품하기 위해 방문했던 브라질에서 네모난 작은 돌로 넓은 대로를 메우고 있던 노동자의 모습을 본 경험은 당시 조형적 변화를 겪던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3년을 전후로 나타난 그리드(grid) 기법은 캔버스보다 비교적 다루기 쉬웠던 종이를 바탕으로 실험됐습니다. 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1974)과 같이 바탕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긁어내는 ‘프로타주(frottage)’ 기법을 사용했죠. 이외에도 1970년대 전반적으로 목판, 콜라주(collage), 데콜라주(décollage) 작품을 집중적으로 제작했습니다.


종이와 르포타주

정상화, "무제 79-B", 1979
정상화, “무제 79-B”, 1979, 종이에 흑연, 작가 소장, 사진 이만홍

작가 정상화는 일본 고베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당시(1969-1977) 캔버스보다 비교적 다루기 쉬웠던 종이를 가지고 재료와 기법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습니다. 그의 특징적인 조형 구조인 격자형 그리드(grid)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종이 작업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종이를 수직과 수평 혹은 사선으로 잘라 붙이고 떼어내며 다양한 격자 구조를 실험했던 작가는 캔버스 작품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이나 펜 등으로 울퉁불퉁한 표면을 긁어 베끼는 ‘프로타주(frottage)’ 기법을 이용해 화면의 깊이감을 더해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정상화의 종이 작업과 프로타주 작업을 선보임으로써 그의 작품 세계를 보다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격자화의 완성

정상화, "무제", 1987
정상화, “무제”, 1987, 캔버스에 아크릴릭, 개인 소장, 사진 이만홍

1977년부터 1992년까지는 일본 고베 체류를 마치고 파리로 이주하여 작업했던 시기입니다. 파리에서의 생활이 더욱 긴장되고, 작품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게 느꼈다는 정상화는 작가로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격자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몰두했죠. 고베에서 이미 격자형 단색조 추상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파리에서는 격자화 표면의 구조와 밀도, 그리고 색채에 있어 다채로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 시기에는 정상화만의 독특한 작품 제작 방식인 “뜯어내기와 메우기” 기법이 완성도를 더해갔습니다. 물감을 캔버스에 바로 칠하는 회화적 전통에서 벗어나 고령토를 뜯어내고 빈 곳을 물감으로 채우는 작가의 노동 집약적인 방식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왔으나, 1980년대에 들어 다양하게 탐구됐습니다. 캔버스에 3-5mm 두께로 바른 고령토를 네모꼴로 뜯어내고, 고령토가 떨어진 자리를 유채나 아크릴 물감으로 채워 넣는 행위는 그리드의 간격이나 방향, 바탕 안료의 두께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탄생시킵니다.


모노크롬을 넘어서

정상화, "무제 95-9-10", 1995
정상화, “무제 95-9-10”, 1995, 캔버스에 아크릴릭, 국립현대미술관

1992년 11월, 정상화는 20여 년이 넘는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합니다. 귀국 후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마련한 1996년부터 현재까지를 여주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2010년 들어 국내외적으로 높아진 단색조 회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그 또한 개인전 및 단체전 참여 횟수가 많아졌고, 2011년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Musee d’Art Moderne Saint-Etienne)에서는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여주에 완전히 정착한 이후 정상화는 백색 단색조 회화를 주로 제작하며 작품의 완숙미를 극대화해나갑니다.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정의내리는 정상화의 작품에는 지난한 노동의 행위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1년의 시간이 걸리는 이러한 노동 집약적인 행위는 고도의 정신적 인내심과 육체적 몰입을 요구합니다. 지금까지 조수를 한 번도 둔 적이 없다는 그는 작품 제작의 모든 과정을 온전히 본인 스스로 해나갑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생활 속에서 묵묵히 예술을 실천하며 과정 자체를 반복하는 정상화만의 독특한 창작 방식은 “되풀이되는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평가 받습니다.


“면적이나 공간감이나 입체감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하나하나 갖다 붙이는, 그것이 확장되어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요철이 생기는데, 요철은 처음 메웠던 붓의 자국과 그 다음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서 또 요철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요철이 생겨나는 데에서 변화가 이루어지고 거기에서 나의, 즉 작가의 숨결이 내재되는 것이고 거기에서 확장된 공간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무언가 나만의 공간이 형성되어 나가는, 설득력 있는 공간이 이루어졌을 때 나는 일을 그만둡니다.”
_정상화

정신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은 어떠할까요. 정상화의 예술 세계는 오랜 기간 메우고 채워가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오랜 시간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설득력 있는 공간이 이루어졌을 때 일을 그만둔다고 하죠. 작품을 만드는 과정도 길지만, 이 작업이 시작되기까지 작가의 역사는 더욱 깊습니다. 단색조 추상화, 격자화의 대가 ‘정상화’를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본 아티클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개요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WEBSITE :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

INSTAGRAM : @mmcakorea


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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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지배하는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원칙'을 추구합니다.
ANTIEGG 만들고 있는 형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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