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계적인 편집숍 ‘도버스트릿마켓’에 새로운 형태의 캠페인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스트릿웨어 브랜드 12곳과 비영리 단체 ‘스카이하이팜(Sky High Farm)’과의 컬래버레이션이었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씬을 이끄는 감각적인 브랜드들이 선보인 티셔츠와 모자, 에코백에는 식량 문제와 스카이하이팜을 알리는 그래픽이 수 놓여 있었죠.
패션과 예술을 입은 식량 불안 문제. 스카이하이팜은 어떻게 유일무이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을까요. 그 뒤에는 이곳의 설립자, 댄 콜런(Dan Colen)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기존 사회질서와 규범에 도전하고, 그것에 의문을 던지는 아티스트인 그는 예술, 패션, 영농업의 크로스 오버를 일종의 창조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화랑에 전시되는 그의 미술 작품만이 예술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가는 스카이하이팜의 여정 자체를 예술로 빚어가고 있죠. 예술의 의미와 역할을 고민하던 아티스트는 어떻게 식량 문제에 접근하게 되었을까요?
예술의 역할을 묻던 아티스트,
도시를 떠나다
스카이하이팜을 설립한 댄 콜런은 사회의 위계나 인식, 규범에 도전하는 작품을 선보여 왔습니다. 그는 예술이 현실을 바꾸기 위한 도구이며,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거나 저항하려는 의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의 작품은 천함과 숭고함, 저급과 고급의 경계를 허무는데요. 형형색색의 껌을 덕지덕지 붙여 작품을 만드는가 하면, 풀, 흙, 스프레이, 금속 스터드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품’의 조건에 의문을 던집니다.
작품 활동을 이어오던 그는 뉴욕에 위치한 대형 갤러리, 가고시안(Gagosian)에 소속됩니다. 미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아트 딜러, 래리 가고시안이 운영하는 이곳은 백남준 작가가 한때 전속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맨해튼에 위치한 1500여 개의 크고 작은 갤러리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가고시안 갤러리는 사립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국공립 미술관, 박물관에 필적하는 높은 기획력과 섭외력을 보여주고 있죠. 시장의 구조와 인식에 저항하는 그의 작품이 아이러니하게도 메가 갤러리와 시장에서 인정받는 ‘블루칩’이 된 것입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며,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에게 예술은 기존의 질서에 물음을 던지고, 현실을 바꾸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던 2011년, 그는 뉴욕 외곽의 허드슨 밸리로 떠납니다.
예술과 패션,
식량 불안 문제를 해결하다
허드슨 밸리로 이동한 콜런은 그곳에 위치한 40 에이커(약 5만 평) 규모의 땅을 구입해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그에게 농장을 일구는 것은 질서에 도전하는 예술가에서 시장성 있는 블루칩 예술가로 달라진 위상을 소화하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었죠. 그는 농부들과 함께 스카이하이 농장에서 수확, 가공한 영양가 있는 음식물을 모두 뉴욕의 소외된 사람들, 지역사회에 기부하는데요.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70톤이 넘는 음식을 나눴다고 합니다. 식량 분배를 잘하는 것에서 나아가 환경과 농업의 미래를 고려해 산업적인 영농 시스템 대신 친환경적인 재생 농업 방식으로 작물을 생산하고, 순환 방목을 통해 가축을 기른다고요.
농장을 통해 음식을 나누는 것은, 그가 예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처럼 구조와 인식에 저항/도전하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보다 직접적인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비영리단체로 활동하는 이들의 미션은 사람들이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요. 콜런은 식량 불안과 굶주림이 그저 어떤 음식이든 보급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보급되는 식량들은 보통 가공/포장된 것이거나, 영양학적으로 밀도 있지 않기에 식량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하죠.
스카이하이팜은 비영리단체입니다. 5만 평 규모의 광활한 땅을 경작하고, 가축을 돌보는 일에는 돈이 필요하죠. 단체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던 콜런은 2019년, 꼼데가르송의 디렉터 레이 가와쿠보와 그의 남편 아드리안 조프가 이끄는 편집숍 ‘도버스트릿마켓’을 만나며 도약하는데요. 이들이 패션 피플, 얼리어답터들의 눈에 띈 건 이때부터였죠. 스카이하이팜은 도버스트릿마켓과 협업해 선보인 그래픽 셔츠를 필두로 브랜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시작합니다. 협업을 통해 이들이 메시지를 퍼뜨린 방법은 고유한데요. 필자의 이전 기사 “패션계 트로이 목마 에덴파워코프”에서 다뤘던 사례처럼, 이들이 자신들의 선전수단으로 패션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협업의 시작은 2020년 진행됐던 스트릿 브랜드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수프림, 어웨이크뉴욕, 브레인데드 등 감각적인 스트릿웨어를 전개하며 씬을 선도하는 12개의 브랜드가 포함됐죠. 특히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커뮤니티와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의류 라인을 전개하는 토탈럭셔리스파(Total Luxury Spa)의 그래픽은 강렬했는데요. 사과에 지구본을 오버 레이한 그래픽, 그 위에 쓰인 ‘FOOD IS POWER’라는 문구는 스카이하이팜의 문제의식을 집약해놓은 듯했죠.
스카이하이팜은 뒤이어 프리즈 뉴욕과 연계해 23명의 작가와 협업을 선보입니다. 설립자인 댄 콜런을 비롯해 제프 쿤스, 무라카미 타카시 등 저명한 작가들이 협업에 동참했죠. 최근에는 의류라인 ‘스카이하이팜 워크웨어(SHFWW)’를 론칭하고 컨버스, 발렌시아가와의 협업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발렌시아가와의 협업으로 발매한 의류에는 댄 콜런의 친우이자 사진가인 라이언 맥긴리가 촬영한 스카이하이팜의 동물 사진이 삽입되어 있는데요. 이들이 의류를 발매해 거두어들인 모금액은 모두 지속 가능한 농업과 그들의 메시지를 퍼뜨리는 데에 사용된다고요. 스카이하이팜의 옷을 구매한 사람은 식량 불안 문제를 해결하는 캠페인에 모금한 후원자이자, 메시지를 선전하는 활동가가 되는 겁니다. 패션과 예술, 그리고 영농업이 결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셈이죠.
재난의 시대,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콜런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이 현실에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는 예술이 인간에게 자양분 또는 주요한 경험을 제공하며 여전히 그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예술 작품’으로 불리는 것들이 시장 바깥에서 실제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를 되묻죠. 나아가 예술가들이 시장성을 갖게 되었을 때, 그 안에서 자기만의 문제의식과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밝힙니다.
스카이하이팜, 그리고 콜런의 움직임은 예술, 패션, 영농이 서로 구분되어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는 한 때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농부 혹은 활동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타이틀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창조의 여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그런 구분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시인합니다. 한 가지의 테두리에 종속되지 않을 때 비로소 세상을 바꿀 창조성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이들의 움직임은 예술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줍니다. 마치 갤러리와 화랑에 전시되어 있는 미술품만이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죠. 팬데믹과 전쟁, 혐오와 불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재난의 시대, 어쩌면 그들이 남기고 있는 발자취는 세상을 바꾸는 거센 돌풍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카이하이팜의 사례는 패션으로서의 옷, 그리고 ‘멋’이란 무엇인가를 되짚어보게 만듭니다. 각자의 개성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옷 입기는, 그 사람이 지지하고 있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여주기도 하죠. 에덴파워코프, 스카이하이팜 같은 멋진 사례가 늘어나길 바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카이하이팜의 고유함은 패션을 선전물로 이용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들은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선입견 자체에 도전하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흙 묻은 농부의 손이 붓을 잡은 예술가의 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결국 예술은 인간의 해방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우리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