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담긴 3가지 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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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a robot write a symphony?
(로봇이 교향곡을 쓸 수 있어?)

Can a robot turn a canvas into a beautiful masterpiece?
(로봇이 빈 캔버스에 멋진 그림을 그려낼 수 있어?)

Can you?
(당신은 할 수 있나요?)


_영화 <아이 로봇> 中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무섭습니다. 알파고도 이제 옛 이야기가 됐습니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업무를 돕는 역할을 넘어,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온 분야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의 약진이 두드러집니다. 가령 함축과 배열의 예술인 시는 단어 하나만 잘못 써도 망하는 경우가 많기에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 인공지능이 쓴 시는 인간의 시와 구별이 불가능한 정도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 난리일까요? 참고를 위해 인공지능이 쓴 시를 가져왔습니다. 아래 두 시는 포스텍 AI 아트랩이 만든 인공지능 시인의 작품입니다. 천천히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왼쪽의 시는 행이 꽤 많은 시인데도 흐름이 어색하지 않은 점이 놀랍고, 오른쪽의 시는 ‘달리는 구름과 바람은 잠든 적이 없는 창을 때린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무려 10만 편에 달하는 시를 읽고 학습한 인공지능 시인의 작품은 이미 인간의 수준, 혹은 그 이상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불면 나타나는
이 세상에서

불꽃은 자유의 바람
마른 바람이 없고
발소리 도도 엿보이지 않고

눈물겹게 소리 없이
하늘 속을 번쩍거릴
바람이다

바람이 불 하날걷어

바람이 불을 풀어본다
세상은 자꾸만 울었다
우리의 봄은 끝났다

달리는 구름과 바람은
잠든 적이 없는 창을 때리며
모든 문을 열고

마침내 사랑으로 나를 감싸도

나는 어둠 속에서
나의 그대를 본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은 작곡도 하고, 그림도 그립니다. 아래 사진은 저희 집 강아지와 오렌지의 사진을 합성해 만든 작품입니다. 오렌지의 상큼함과 강아지의 귀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죠. 이 작품은 구글의 인공지능 화가 ‘딥 드림 제너레이터(Deep Dream Generator)’가 만들었습니다. 두 사진을 넣고 버튼을 누르니 뚝딱 완성해줬습니다. 덕분에 구상한 순간으로부터 1분이 채 지나 않아 완성된 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명은 강아지 이름인 ‘아리’와 ‘오렌지’를 합쳐 ‘아렌지’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렌지>는 누구의 작품인가요? 작품을 구상하고 의미와 제목을 부여한 저인가요? 작품을 만들어 낸 인공지능인가요? 인공지능의 이름 앞에 ‘made by’를 쓸 건지, ‘made with’을 쓸 건지는 꽤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Arange. (2021). Made (by, with) Deep Dream Generator
Arange. (2021). Made (by, with) Deep Dream Generator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가. 이 글에선 질문을 세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겁니다. 인공지능은 작품을 만드는 주체인지,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일뿐인지, 그렇다면 <아렌지>는 누구의 작품인지 나름의 답을 내려보겠습니다. 그 다음,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지 살펴 볼 겁니다. 예술의 본질, 그중에서도 인간의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튜링 테스트(인간과 인공지능의 작품을 보여주고 어느 것이 인간의 작품인지 알아맞히는 테스트)를 통해 둘은 구별할 방법이 없으며, 따라서 작품 자체에 대해선 예술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이 예술을 ‘창작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려 합니다.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결과를 도출합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사실상 모방밖에 할 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인간도 모방을 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융합이라 했습니다. ‘창작’이라는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지 짚어보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I.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가

우리가 무심코 쓰는 ‘작품’이라는 말 속엔 이미 작품을 만든 이, 주체가 상정돼 있습니다. 가령 종교가 없는 사람도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신의 작품이라 말합니다. 또한 ‘지을 작’이라는 한자 속엔 이미 ‘사람 인’자가 부수로 포함돼 있습니다. 신이든 사람이든, 공통점은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계가 창작의 주체로 끼어들 자리는 없었습니다. 빨래를 한 건 명령을 내린 주인이지, 업무를 처리한 세탁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다른 기계들도 인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질 뿐, 행위의 주체로 인정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은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다른 기계들과 똑같이 주입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명령을 수행할 뿐인데도 말이죠. 아마 SF영화 등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적으로 인공지능을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상정했기에 인식이 달라진 건 안닐까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의지와 예술은 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예술은 예술가의 주체적인 문제제기에서 시작되는 표현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예술에서의 주체는 어떤 문제에 대해 진리를 제시하는 존재이며, 예술작품을 통해 관람자를 설득함으로써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는 겁니다. 인공지능은 메시지를 담지 않습니다. 데이터에서 패턴 등의 유사성을 뽑아 비슷한 작품을 만들 뿐이죠. 자신의 아이디어를 작품에 담아내지 못하는 존재가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요? 또한 인공지능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아무런 가치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작품이 창의적인지, 진부한지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물론 인간이 예상하지 못한 독창적인 작품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그 작품이 창의적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인간입니다. 정리하면 인공지능은 ‘발상’을 못하며, ‘평가’를 내릴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창작의 주체로 인정하기엔 조금 이른 듯합니다.


II.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잘 알려진 수학자 앨런 튜링은 기계의 지능이 어느 정도인지 판별하기 위한 한 가지 실험을 제안했습니다. 그 유명한 ‘튜링 테스트’입니다. 완전하진 않지만 인공지능의 수준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실감하기엔 더없이 좋은 방법입니다. 테스트를 위해 여러 예술작품들을 준비했습니다. 넷 중 하나만이 인간의 작품이며 나머지는 인공지능의 작품입니다. 만약 인간의 작품을 구별해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여러분은) 인공지능의 작품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정답은 글의 맨 마지막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1. 인공지능 시인 vs 인간 시인

다음 중 인간의 작품은 무엇일까요?


어둠의 아카시아 길
그의 손은 팔을 쥐고 있는데
그 손은 다름아닌 풀잎처럼
찬란한 무지개의 풀잎처럼
말하기 위해 다가선다
마침내 우리 향기를 따라
세상에 흘러 넘친다


이제 짙은 연기를 상상하라
잠에서 깨어 날아가는
해를 되풀이하여
또 다른 날을 향하여
뒤엉킨 나무라는 개념
물의 또 다른 측면
이미 여기에 있음을 본다
연속된 그녀의 얼굴
그것이 공유되고 있음을
오래된 친구들이 꿈을 전하고 있음을


우러러받들 수 없는 하늘
검은 하늘이 쏟아져내린다
온몸을 굽이치는
병든 흐름도 캄캄히 저물어가는데
아는 이를 만나면 숨어버리지
숨어서 휘정휘정 뒷길을 걸을라치면
지나간 모든 날이 따라오리라


나는 늘 물가에 걸려 있는
한 점 바람이라면
솔바람이 되고 싶지만
찬 빈 바람이다
나는 그리움으로
나는 또 하루를 쥐고 있다
비어 있는 세월은
숨쉬며 빛난다

Q2. 인공지능 화가 vs 인간 화가

다음 중 인간의 작품은 무엇일까요?

1
3
2
4

어떤가요, 인간의 작품이 무엇인지 구별해냈나요? 만약 성공했다면 인간의 작품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은 무엇인가요? 인공지능의 작품을 예술로서 인정해야 하나요? 반대로 답을 맞추지 못했다면, 인공지능의 작품을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인간의 작품과 유사하다고 해서 무조건 예술이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감상하는 이에게 비슷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 선을 그으려는 시도를 무색하게 합니다. 이처럼 창작의 주체와 행위를 배제하면, 오직 작품 자체에 대한 판단만 남게 됩니다. 예술작품이 갖춰야 할 특성들로 미뤄봤을 때 인공지능이 출력한 결과도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을지는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보시길 바랍니다.


III.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은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출력값을 내놓습니다. 이 과정을 창작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막상 들춰보면 수많은 작품들을 학습해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일 뿐이죠. 일종의 모방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창작을 한다고 볼 순 없는 걸까요? 모방도 창작의 일종이라 볼 순 없을까요? 우선 오해를 풀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방을 표절과 동일시합니다만 둘은 엄연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모방은 무언가를 베낀다는 의미보단 본받는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또한 창작물이 아닌 창작 방식을 따라한다는 점에서 표절과 다릅니다. 오히려 모방은 예술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 할지라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작품을 모방하며 실력을 키워나갔을 테죠. 열심히 모방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굳어서 뛰어난 예술가가 된 것입니다. 피카소도 모방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독창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창작의 정의라면 모방은 창작을 하기 위한 과도기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창작을 할 수 없다고 속단하기엔 이릅니다. 인공지능 또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기 위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죠. 언젠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예상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작품을 내놓는다면, 그때는 인공지능의 작동방식 또한 창작으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예술을 창작할 수 있는가. 중요한 질문입니다. 인간의 존재 의미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활동을 모두 잠식해가는 가운데, 예술만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굳게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마저도 빼앗으려 합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만, 이때 향유할 문화와 예술마저 빼앗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본능만을 위해 사는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인공지능에 관한 논의는 인간의 존엄 및 고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일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답]
Q1. ③ 이용악 <뒷길로 가자>
Q2. ③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

  • 김전희.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창작. (2020). 예술과 미디어. 83-112
  • 장소영. 인공지능에 의한 예술 창작의 가능성 연구. (2019). 중앙대학교 대학원.
  • 이재박, 안성아. 자동창작시대의 예술 작품. (2020). 인공지능인문학연구, 제5권. 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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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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