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비의 논란
가수이자 화가인 솔비가 만든 케이크가 미국 작가의 작품을 따라 했다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지난 12월 22일 자신의 SNS에 케이크를 만들었다고 공개한 디자인이 문제가 되었는데요. 여러 가지 색깔의 크림을 자유분방하게 쌓아놓은 모습이었습니다. 솔비는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제빵실에서 케이크 만드는 거에 푹 빠져 있다. 케이크도 저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봤다. 너무 실험적인가요?”라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해당 케이크에 “주문도 받아요”라는 해시태그를 기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케이크 디자인이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의 ‘Play-Doh’(플레이 도우)를 따라 했다는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강렬한 색감을 자유롭게 쌓은 모습이 플레이 도우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지적이 이어지자 솔비는 “이 케이크는 아이들 클레이 놀이하는 걸 보다가 제프 쿤스의 Play-Doh 작품을 보고 영감 받아 좀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 저만의 케이크를 만들어 봤다.”고 게시물의 내용을 수정하며 제프 쿤스의 작품을 오마주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마주? 표절? 패러디?
패러디와 오마주, 표절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혹자는 ‘원작을 알면 재미있는 것은 패러디, 원작을 알리고 싶은 것은 오마주, 원작을 감추고 싶은 것은 표절.’이라고 간단히 정의하기도 합니다.
패러디는 누구나 아는 것을 끌어와 풍자하거나 재미있게 전달하는 표현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잘 알려진 원작의 표현이나 소재 등을 자신의 작품에 가져와 사용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닌, 나름의 독창성과 풍자적인 표현을 곁들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는 것에서 표절과 구분된다는 것이 사전적 설명입니다. 원작을 알고 있을 때만 패러디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존경, 감사를 뜻합니다. 원작의 유명한 부분을 차용해서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부각해 ‘존경의 의미’를 담는 표현방식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빌>에서 우마 서먼이 입었던 노란 트레이닝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소룡의 출연작 <사망유희>를 오마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오마주라는 표현을 대중음악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을 때, 소속사 측에서 ‘표절이 아니며 원작자에 대한 오마주였을 뿐이다’라는 말로 여러 차례 들어본적이 있습니다. 이런 해명이 이루어진 경우, 실제로 원저작권자가 나타나 오마주가 아닌 표절을 주장하며 권리 침해를 호소하는 사례는 드문 편이라고 합니다.
표절은 ‘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씀.’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즉, 원저작물의 존재를 숨기고 자기가 처음 만들어낸 것처럼 꾸미는 행위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의 법에서는 표절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요. ‘산업기술혁신촉진법’ 등의 몇몇 법률에서는 정확히 그 ‘표절’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 합니다. 즉, 다시 말해 우리 법은 ‘표절, 오마주, 패러디’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고 단지 저작권법, 상표법, 부정경쟁방지법에서의 위반 여부만을 판단할 뿐입니다. 이러한 법 중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저작권법 위반이 가장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대법원은 저작권 침해의 요건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침해자가 저작권 있는 저작물에 의거하여 그것을 이용하였을 것’, 둘째 ‘실질적 유사성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지, 공통적 소재를 사용하는 것에서 오는 문제인지 따져봐야 하며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만약 제작자가 오마주나 패러디라고 밝힌 경우에는 문제가 되는지 궁금해질 것입니다. 미리 밝혔으므로 위반이 아니게 될까요.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원작자가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면 저작권 침해로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원작자로부터 이의 신청이 들어오면, 대법원은 여러 조건을 면밀하게 고려하여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리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의 작품이 저작권법에서 정하는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면 면책을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사진 매체나 샘플링과 같은 표현 방법과 방대한 양의 참고 자료(레퍼런스)들이 난무하는 요즘 어디까지가 오마주이며 표절일까요. 법적으로도 명확히 정의되어있지 않은 이 표절과 오마주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 지어주는 것은 아마 오리지널리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의 원본을 복사해서 소장한다면 그 사진은 오리지널리티나 가치가 없는 종이에 불과한 것일까요.
예술작품의 오리지널리티
예술이라는 개념과 예술의 여러 상이한 형식은 오늘날의 시대와는 크게 다른 시대, 즉 사물과 상황을 제어하는 힘이 우리들의 힘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미미한 시대에 생겨났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지닌 수단이 그 적응력과 정확성에 있어서 체험하게 된 놀라운 증가와 발전은 가까운 미래에 고대 이후의 전통적인 예술산업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줄 것임이 분명하다. 위대한 신발명들이 예술형식의 기술 전체를 변화시키고 또 이를 통해 예술적 발상에도 영향을 끼치며 나아가서는 예술개념 자체에까지도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_폴 발레리, 예술론집
과거 특허법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언제나 복제가 가능했습니다. 인간들이 한때 만들었던 것은 인간들에 의해 언제나 다시 모방되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방은 예술적 수련을 위해 도제들에 의해 행해졌고, 작품의 보급을 위해 예술의 대가들에 의해 행해졌으며 나중에는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제 삼자에 의해서 행해져 왔습니다. 판화 기술과 인쇄 기술의 발명으로 인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빠른 속도로 정확히 같은 정보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보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혁명은 모두에게 달가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리지널의 소유자들은 본인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인식하고 이것을 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복제로 인해 오리지널리티를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사진이 발명되어 또 한 번의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사진은 처음으로 지금까지 손이 담당해 왔던 중요한 예술적 의무를 덜어주게 되었습니다. 초상화의 유행은 사그라들었고, 이 자리를 사진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900년대쯤에는 기술 복제가 이미 일정한 수준에 이르게 됐습니다. 이때의 기술 복제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예술작품 전체를 복제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또 이러한 영향을 통하여 예술에 깊은 변화를 끼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적 처리 과정 속에서도 그 자체의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술발전 상황 속에서 예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평론가가 있었습니다. 독일의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였던 발터 벤야민입니다.
그는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가지 요소가 빠져있다고 말합니다. 그 요소는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 예술작품이 지니는 일회적 현존성이며, 이것은 원작의 진품성(오리지널리티)이라는 개념의 내용을 이루는 구성요소라고 서술합니다. 또한, 어떤 사물의 진품성이란, 그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과 함께 그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적 가치까지 포함하고 또 그 사물의 원천으로부터 전수될 수 있는 사물의 핵심을 뜻한다고 밝힙니다. 즉, 물질적 지속성과 역사적 증언의 가치가 없는 것은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주목한 또 다른 지성인으로는 칸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칸트는 1790년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오리지널리티는 천재가 자신의 근원(Origin)에서 얻어낸 자연미의 산물이며 모방과 학습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재능이자 어떠한 규범과 개념에도 구속되지 않은 선례(Muster)를 만드는 능력이라고 설명합니다.
정리해 본다면, 작가 자신의 근원에서 얻어낸 진정성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인 증언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다시말해 오리지널리티는 작가의 근원에서 얻어낸 진정성 있는 고민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진정성’이 무엇일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진정성(Authenticity)’의 그리스 어원은 ‘authenteo’로 온전함을 소유한(to have full power) 이라는 뜻이며, 자신의 가치와 일치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실제 자기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rikson, 1959; Maslow, 1976) 이런 진정성, 고민, 역사적인 증언적 장치와 같은 알맹이가 빠진 작품들은 아마도 단순한 표절 작품으로 전락하겠죠.
법적으로도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없다면 구분할 수 없는 오마주와 표절. 그 차이는 미묘합니다. 여기에서 대중은 받아들이는 입장으로서 스스로 작가의 오리지널리티는 과연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서울: 민음사; 1983. 197-202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