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자살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늘어가는 ‘마라 맛 콘텐츠’ 속 자살
미디어는 자살을 어떻게 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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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36.6명. 한국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을 의미하는 숫자다. 지난 9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사망자는 1만 3352명으로, 전년보다 157명(1.2%)이 증가했다. 사망자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연령별 자살률도 증가했다. 10대의 자살률만 10% 이상 증가했다. 수많은 이들이 자살을 꿈꾸는 사회. 미디어는 자살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자살유발정보 모니터링을 해온 ‘지켜줌인’ 대학생 서포터즈는 2018년 8월부터 2019년 7월 31일까지 국내에서 방영된 드라마 중 자살 장면이 포함된 드라마 50편을 점검했다. 자살 장면은 총 118회 노출되었으며, 자살 방법과 도구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도 113회(95.8%)에 이른다. 이는 영상 콘텐츠가 ‘자살’을 어떻게 그려왔는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2019년 ‘영상 콘텐츠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은 크게 4가지 기준으로 나뉜다. 첫째, 자살 방법과 도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기. 둘째, 자살을 문제 해결의 수단처럼 제시하거나 미화하지 않기. 셋째, 동반자살이나 살해 후 자살 같은 장면을 지양하기. 넷째, 청소년 자살 장면은 더 주의하기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 국민여가활동조사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92.6%가 여가 활동으로 TV 시청을 경험한다. 한국에서 미디어가 가지는 영향력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미디어 속 ‘자살’은 어떻게 변했을까?


‘마라 맛 콘텐츠’를 완성하는 자살?

방영 초기부터 ‘막장’ 논란에 휩싸인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논란과 관계없이 시즌 내내 최고 시청률을 연이어 갱신했다. 제작진은 불륜, 폭언 폭행, 학교 폭력에 이어 살인까지 연이어 노출하며 ‘마라 맛(자극적인 콘텐츠를 의미하는 신조어)’ 콘텐츠 만들기에 열중했다.

<펜트하우스3>에 등장한 자살 장면
<펜트하우스3>에 등장한 자살 장면. 이미지 출처 :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3>

<펜트하우스3> 최종화에는 ‘자살’ 장면까지 연이어 노출된다. 복수를 감행했던 심수련(이지아 배우)은 지난날을 후회하며 자살을 택한다. 심수련의 죽음 이후 로건 리(박은석 배우)도 암 치료를 거부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드라마 내내 희대의 악역으로 화제를 모았던 천서진(김소연 배우)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악역 천서진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에서 누군가는 ‘통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한 회에서 3명이 자살하는 스토리는 파격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

<펜트하우스3>에 등장한 자살 시도 장면, 피가 낭자한 연출.
<펜트하우스3>에 등장한 자살 시도 장면, 피가 낭자한 연출. 이미지 출처 :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3>

콘텐츠 시장의 극심한 경쟁은 자살도 ‘마라 맛 콘텐츠’를 완성하는 ‘요소’가 된다.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피를 노출하거나, 캐릭터의 투신 장면을 몇 분 동안 보여주기도 한다. 이에 대한 논란은 ‘어쩔 수 없었다’는 대사로 무마한다. <펜트하우스3>에서도 죽음 이후 천국에서 재회한 로건 리에게 심수련이 “죽음이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라도 우리 아이들을 지킨 거니까“라고 말해 자살이 ‘숭고한 희생’이었다는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에 시달렸다. ‘영상 콘텐츠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이 무색해지는 시점이다.


안락사는 인생 리셋이 아니다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
이미지 출처: JTBC
환혼 포스터
이미지 출처: tvN

언젠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안락사 허용’에 대한 논쟁을 봤다. 안락사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불치의 환자의 생명을 임의로 단축시키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커뮤니티에서 논쟁하는 ‘안락사 허용’은 그 대상을 불치의 병을 겪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댓글을 단 이들은 “나도 안락사만 허용되면 바로 죽고 싶다”며 자신을 안락사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10대~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것에 의아함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상 가장 편리하고 풍요로운 시대에 왜 우울감을 느끼냐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하다. 경쟁사회는 실패자 낙인을 찍는데 여념이 없고,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승자’가 될 수 없는 이들은 자신의 삶을 가치 없는 것으로 낙인찍는다.

인기리에 방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과 드라마 <환혼> 같은 회귀물에 대한 열광도, ‘안락사 허용 논쟁’도 ‘인생 리셋’에 대한 욕망에서 시작된다. 드라마, 웹툰, 웹소설 속 주인공처럼 ‘인생 리셋’을 할 수 없는 이들이 죽음으로 ‘인생 리셋’을 택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듣는데 집중한다면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내일>도 ‘자살’을 다룬다. 하지만 드라마 <내일>은 자살을 다르게 묘사한다. ‘자살 장면’을 그리는 대신 ‘자살자의 목소리’를 듣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내일> 속 자살예정자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
<내일> 속 자살예정자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 이미지 출처 : MBC 드라마 <내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내일>에는 매번 다른 자살예정자가 등장한다. ‘자살’을 택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들이 자살을 꿈꾸는 이유는 전부 다르다. 계속된 공무원 시험 실패로 우울에 빠진 취준생, 학교 폭력 가해자를 다시 만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후 삶의 의지를 잃은 남편, 반려견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주인 등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의 고통을 호소한다.

구련이 자살예정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위로하는 장면.
구련이 자살예정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위로하는 장면. 이미지 출처 : MBC 드라마 <내일>

구련(김희선 배우), 최준웅(로운 배우), 임륭구(윤지온 배우)로 이뤄진 ‘위기관리팀’은 자살을 앞둔 이들을 찾아 자살 시도를 저지하며 ‘삶’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구련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누구도 널 탓할 수 없다”고 위로하고, 최준웅은 무기력에 빠진 공시생을 위해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치킨을 가져온다. 물론 <내일>도 완벽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 <내일>은 위로와 공감의 필요성을 계속 이야기한다. 경청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장면들을 보며 생각한다. 미디어가 그리는 ‘자살’이 이제는 바뀔 때가 되지 않았냐고.


자극으로 점철된 미디어에 경청이 끼어드는 것을 상상해본다. 혼자 앓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죽음 대신 대화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내일’을 꿈꾸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메디컬투데이, ‘코로나 블루 여파’ 지난해 자살사망자 1만3352명…전년比 1.2%↑, 2022
  • 더리포트, 한국 자살률 OECD 최고···하루 37명 스스로 삶 마감, 2022
  • 데이터솜, 우리국민 가장 즐기는 여가활동 1위 ‘TV시청’, 2022
  • 마인드포스트, [미디어] 방송·인터넷에서 자살 장면 막는 가이드라인 발표, 2019
  • 파이낸셜뉴스, ‘도 넘는’ 드라마 속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 있으나 마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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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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