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님께 단상이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ANTIEGG 예진입니다.

입춘을 건너 인사드립니다. 바깥 공기가 미지근해지면서 희뿌연 먼지들이 도심 가득 들어찼습니다. 내심 봄을 기다렸다가 금방 풀이 죽게 되는 날씨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봄의 절정을 목격하게 되겠죠. 정체된 대기가 서서히 걷히고 앙상했던 나무에 팝콘이 송송 맺히는 광경을요. 이번 편지는 청명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내일을 기대하는 습관은 적당히 비슷한 날들을 견디는 큰 동력이 되니까요.

이제서야 묻습니다. $%name%$ 님은 어떤 마음으로 2월을 보내고 있나요? 비록 우리는 서로가 낯설지만, 서로의 일상을 묵묵히 보내다 한 달에 한 번 볼품 없는 글 하나로 연결되곤 합니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사실을 되새길 때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술의 발전에 감사하게 됩니다. 매달 편지를 건네면서 한 번도 제 소개를 한 적 없는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당신이 누구냐고 묻지 않으셨지만요. 만약 저에 대해 소개해 달라고 하면 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 겁니다. 저는 아직도 저를 정의할 단어를 선택하지 못했거든요.

나를 수식하는 단어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나요? 어느 조직에 누구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나타내는 단어를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출신과 조직으로 자신을 서술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물론 사회가 대체로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이겠죠. 변명에 여지없이 사람들은 배경을 좋아합니다.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그래서 어떤 커리어를 밟았고, 지금은 어떤 조직에 속해있는지. 배경을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위상에 따라 후광을 한 겹 덧입기도 하죠. 누군가에겐 원치 않는 기대를 심고, 다른 누군가에겐 현재를 오롯이 볼 수 없게 합니다. 그간의 궤적으로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무게를 가늠하는 도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출신을 언급하지 않고 타인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가정하에 문장을 떠올려 봅시다. 생각보다 어려울 거예요. 본격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해야 하는 단계가 남아 있기 때문이죠.

조직이라는 수식을 벗으면 너른 들판이 나옵니다. 나의 일을, 글을, 작품을, 기획을, 디자인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이 과정에 머물러 있습니다. 당장의 작업에 크나큰 애정을 품고 있지만, 어느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자부하기 모호한 상태. 모두가 자기 색깔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보이드에 갇힌 기분이 들곤 합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고유성에 대한 고민을 한 번쯤 해봤을 테죠. 사진으로 예를 들어 볼까요. 누군가는 몽환적인 인물 사진을, 누군가는 바다 위주의 풍경 사진을 찍는 것처럼 각각 그 사람을 나타내는 몰두의 대상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면 시장에서 선택받을 확률도 높고, 안정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배경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없을 거예요.

$%name%$ 님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정하셨나요? 당장 생각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내가 나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나의 현재를 언어화하는 일은 꼭 필요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도무지 카테고리를 정할 수 없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어쩌면 ‘색깔 없음’이 이미 무언갈 나타내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니면 현재를 담아낼 만한 세상의 언어가 부족한 것일지도요. 정의할 수 없는 상태는 미지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는 낭만은 덤이고요.

  • 혹시 네가 텅 빈 그릇이라 해도 그거면 충분하잖아. 만약에 그렇다 해도 넌 정말 멋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그릇이야.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그런 건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렇게 생각 안 해? 네 말대로라면, 정말 아름다운 그릇이 되면 되잖아.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그 안에 뭔가를 넣고 싶어지는, 확실히 호감이 가는 그릇으로._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ANTIEGG에서
예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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