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루나 뉴이어”
제국주의가 전하는 새해 인사

브리티시박물관 설날 게시물을 통해 보는
아시아의 문화적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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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경사스러운 날이 불화로 얼룩졌다. 브리티시박물관¹⁾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하나의 게시물 때문에.

브리티시박물관의 트윗 게시물
이미지 출처: 중앙일보
브리티시박물관의 트윗 게시물
이미지 출처: JTBC

브리티시박물관은 신라 앙상블과 함께 한국의 ‘설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지난 1월 20일 개최했다. 브리티시박물관은 이를 위해 1월 12일에 홍보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리고 이 행사를 소개하며 “Korean Lunar New Year(한국의 음력 새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를 본 중국의 인플루언서가 게시물을 자신의 계정에 공유한 후 브리티시박물관의 인스타그램은 곧 중국인 네티즌의 거센 항의로 도배되었고, 결국 게시물은 삭제되었다. 그리고 1월 22일 브리티시박물관은 인스타그램에 “Chinese New Year(중국 신년)”라는 해시태그를 건 게시글을 올렸다.

1월 12일부터 1월 22일까지 중국과 한국의 네티즌들은 브리티시박물관의 인스타그램에서 서로를 헐뜯었다. 노골적인 비난과 조롱이 이어졌다. 제국주의의 유산 위에서 제국주의에 비참하게 짓밟혔던 두 나라가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이 상황을 계속 지켜보며 필자는 극복하기 힘든 문화적 트라우마가 아시아 국가에 여전히 깊게 드리워져 있음을 실감했다. 우리는 어째서 서로에게 분노해야만 하는가.

1) 브리티시박물관: The British Museum은 대영박물관으로 주로 번역되나, 이는 제국주의적 함의를 담고 있는 명칭이다. 현재 The British Museum은 점차 영국박물관으로 번역되는 추세다. 하지만 영국박물관은 영국의 박물관 통칭하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어 필자는 본 아티클에서 브리티시박물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제국주의가 아시아에 남기고 간
문화적 트라우마

1) 약탈 문화재: 한국의 사례

국립중앙박물관 포스터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문화 역시도 약탈당할 수 있다는 걸 아시아인은 잘 알고 있다. 이미 우리는 제국주의의 횡포로 얼룩진 근현대를 거치며 많은 소중한 물질적, 비물질적 유산을 빼앗겼다. 2016년 기준 한국의 국외 반출 문화재는 전 세계 20개 국가 582개 소장처에 총 167,968점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문화재가 아직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등의 문화재가 여러 기관과 단체의 노력으로 영구대여라는 기묘한 방법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필자 역시 미술사를 공부하며 답답한 순간이 여럿 있었다. 한국의 문화재가 해외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있어 해외 대학에 열람 요금을 지불하고 자료를 살필 때면 한숨이 먼저 절로 나오고는 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와 1차 사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한국미술을 연구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야 할까. 왜 영국의 대학이, 미국의 대학이 아시아 미술 연구의 첨단으로 아직도 기능하고 있을까.

2) 약탈 문화재: 중국의 사례

폐허로 남은 원명원
폐허로 남은 원명원,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중국 역시도 한국과 비슷한 문화재 약탈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원명원이다. 원명원은 청나라 강희제와 옹정제에 걸쳐 지어진 궁궐로, 당시 예수회 수도사로 청나라에 머물던 주세페 카스틸리오네(냥세녕) 등이 설계에 참여했다. 원명원은 당시 청나라와 서양의 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미감을 보여주는 궁궐이었으나 제2차 아편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지고 궁궐을 장식한 많은 조각이 서구에 약탈당한다. 이후에 문화혁명을 거치며 원명원은 완전히 과거의 화려한 모습을 빼앗기고 폐허로만 남게 된다.

해안당 분수와 십이지신상
해안당 분수와 십이지신상,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원명원의 대표적인 약탈 문화재가 바로 <해안당> 분수를 둘러싸고 있던 십이지신상이다. 분수라는 서구적 건축 요소에 십이지신이라는 동양의 문화가 혼재되어 나타나는 이 독특한 문화재는 제2차 아편전쟁 때 뿔뿔이 나뉘어 서구열강의 손에 들어간다. 현재 십이지신상 중 소, 원숭이, 호랑이, 돼지, 말은 중국 기업이 거금을 들여 구매해 중국 정부에 반환했다. 토끼와 쥐는 이브 생 로랑의 컬렉션에 속해 있었는데, 이브 생 로랑 사후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되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반발하며 반환을 요구했는데, 반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소유주인 생 로랑의 파트너 피에르 베르쥬는 대만국립고궁박물관 측에 토끼와 쥐를 기부하려 하였으나 대만국립고궁박물관이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우려하여 거절한 상태다.

중국은 아편전쟁 등을 통해 서구 열강에 약탈당한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직 갈 길이 멀다. 심지어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인해 파괴된 문화재들이 많아 고질적인 문화유산과 사료 의 부족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며 급격한 경제의 양적인 성장을 이루어냈으나 그들이 원하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거대한 표어로 정체성을 형성하기에 문화적, 역사적 자원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중국만의 정체성을 형성하겠다는 욕망은 결국 사대주의적인 시각에 기인할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제국주의 역사

1)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문화의 회복인가, 우위인가?

WHO ARE YOU
이미지 출처: Unsplash

21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문화 식민주의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아시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 눌려 자신의 역사를 빼앗기고 문화재를 빼앗긴 아시아가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빠르게 발을 놀리고 있다. 이는 물론 어떤 의미에서 긍정적이다. 식민주의 질서에 강제로 빼앗긴 문화와 역사를 다시 서술하고 다양한 탈식민주의 논의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아시아인에게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의 양식으로 획일화된 세계 문화에 새로운 활기를 더 해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우리가 결국 제국주의 질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날을 세우고 비판적으로 사고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정말 무엇인지 직시해야만 한다. 우리는 근대적 내셔널리즘 명령에 몸을 맡기고 새로운 제국주의 질서를 형성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수탈당한 역사를 바로잡고 싶은 것인가. 필자가 영국박물관 설날 논쟁에서 “Chinese New Year”를 요구하는 네티즌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당신은 영국박물관이 중국 문화재를 수탈하고 문화를 전유하는 것에 분노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보다 새로운 문화 제국주의 질서에서 우위를 차지할까 두려워하는 것인가.

2) 비극은 끝나야만 한다

사거리 횡단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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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문화는 독자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문화는 흐른다. 정지하지 않고 퍼져나간다.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소유하고자 하는 생각은 취약하고 역설적이다. 다시 한번 필자는 요구한다. 문화를 바르게 기술하는 것과 문화를 독점하고자 하는 시도는 다르다. 부디 우리가 더 이상 어떤 문화, 어떤 민족이 우월한지를 겨루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미 그로 인해 어떤 비극이 만들어졌는지를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다. 문화는 국가의 영역에 국한될 수 없다. 모든 작은 문화 집단은 하나의 씨실과 날실이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함이 아시아 문화라는 거대한 조각보를 이루고 있고, 또 이 조각보는 세계 문화라는 더 거대한 걸개의 일부다. 물론 이러한 거시적인 시야를 유지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강제로 문화를 수탈당한 역사를 가진 입장에서는 자신의 문화를 테두리 지으려는 욕망이 자연스레 앞설 게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제국주의 욕망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왜 우리가 상처받았는지를 직시하자. 그 상처를 가리는 데 급급해서 다른 상흔을 남기지 말자.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지기 전에 말이다.


필자는 브리티시박물관에 묻고 싶다. 브리티시박물관뿐 아니라 많은 서구의 기관과 단체에 묻고 싶다. 왜 ‘Lunar New Year’이어야만 하는가? 왜 ‘Chinese New Year’이어야 하고 ‘Korean New Year’이어야 하는가. 설날은 설날이고 춘절은 춘절이다. 우리에게 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다. 우리에게는 양력 1월 1일이 타문화고 설날이 새로운 해의 당연한 첫날이다. ‘New Year’s Day’는 문화마다 다른 게 당연하다. 그레고리안력에 맞춘 날만이 절대적인 새해 첫날이 아니다. 애초에 그 앞에 한정하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새해 첫날부터 서로 얼굴을 붉혀야만 했다. 그것도 제국주의의 찬란하고 끔찍한 유산 위에서.

  • 문화재청, 잃어버린 문화유산 되찾기, 2019-10-31
  • 중앙일보, “중국 전통 도둑질”…영국박물관 ‘한국 음력설’ 표현에 中 분노, 2023. 01. 22.
  • 한겨레, 약탈도 서러운데…꼬여가는 유물분쟁, 2009. 10. 08.
  • JTBC, 영국박물관, 중국 네티즌 공격에 ‘한국음력설’→’중국설’ 표현 바꿔, 2023. 01. 23.
  • BBC News 中文, Cultural battle behind the British Museum’s ‘Korean Lunar New Year’ controversy, 2023.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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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예술과 사회, 그 불가분의 관계를 보고 기록하고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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