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그려야 하는 건
꿈인가 현실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영화를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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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절대 죽지 않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끝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주인공. 우리는 영화를 통해 희열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사람들이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현실을 지우고 환상에 빠져들기 위한 수단인가? 영화가 그려야 하는 건 꿈인가 현실인가?


영화는 오락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퇴근>
이미지 출처: <공장 노동자들의 퇴근>, 왓챠

1895년 프랑스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 1프랑의 입장료를 받고 카페에서 영상을 상영한 것으로 영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최초의 영화라 불리는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어떠한 편집도 연출도 없이 공장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들을 찍은 활동사진이다. 지금의 우리에겐 아무 감흥 없을 테지만, 영화를 처음 접한 당대의 사람들에겐 무척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 시작부터 하나의 오락거리로, 진기한 구경거리로 소비되었다.

뤼미에르의 영화가 단순한 사실 기록에 불과하다면 이후 영화는 내러티브, 즉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을 확립하며 지금의 영화와 가까운 형태를 빚어낸다. 이미지, 음향, 카메라 연출과 자막 등으로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은 192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의해 고착화된다. 1910년대 많은 제작자가 온화하고 건조한 날씨에 1년 내내 촬영이 가능한 캘리포니아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의 할리우드로 불리는 대규모 영화 제작 스튜디오를 짓기 시작했다. 이후 할리우드는 서사의 인과가 뚜렷하고 대중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대량으로 찍어내며 급격한 성장을 이뤄냈다. 자본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생산 공정을 만들어낸 덕이다. 그렇게 할리우드는 자본화된 영화 산업을 대표하는 ‘꿈의 공장’이 된다.


장르로 재단된 영화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
이미지 출처: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

영화를 특정 장르로 구분하는 방식 역시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영향을 받았다. 장르영화란 서부극·공포영화·코미디영화처럼 분류할 수 있는 형식과 줄거리를 갖춘 영화를 말한다. 할리우드는 자본의 논리로 영화를 이해했고 흥행하는 영화의 내러티브와 연출 방식을 공식화했다. 장르라는 공식에 따라 영화를 제작하며 흥행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인 ‘판매’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2020-2021 영화소비자 행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관객이 가장 선호하는 영화 장르는 범죄/스릴러, SF/판타지, 액션이다. 2018년 조사에서는 액션, SF/판타지, 범죄/스릴러 순으로 순서만 바뀌었을 뿐, 이 장르에 대한 한국 관객의 사랑은 해를 걸쳐 지속되어 왔다.

위와 같은 장르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삶은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총알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와중에도 친구나 연인을 구해내고, 인류의 운명을 등에 진 채 악당과 결투한다. 영화 속에선 기쁨도 두려움도 고통도 수십 배의 밀도로 제공된다. 그리고 이러한 스토리는 수많은 영화에서 약간의 변형을 거친 채 그대로 반복된다. 장르라는 틀 안에서 영화의 내러티브를 공식화하던 초기 할리우드의 관행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같은 조사에서 영화관람 동기로 ‘좋아하는 장르/줄거리라서’라고 응답한 관객이 48%로 가장 높았다. (극장 관람 기준, 1+2순위 기준) 관객들은 기존에 선호했던 장르의 영화를 다시 볼 가능성이 높고, 영화 제작사는 이에 따라 ‘팔리는’ 스토리를 양산한다. 자신이 선호하는 세계만을 보여주는 알고리즘의 원리처럼, 관객은 새로운 영역을 탐색할 가능성이 점점 좁아지며 장르로 구분된 ‘기존의 선호’ 안에 갇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오락이 아닌, 예술로써의 영화

할리우드의 구조화된 내러티브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나며 여러 영화 운동이 일어난다. 그중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는 영화의 역할을 단순한 오락거리, 상업적 도구에 국한하지 않고 예술의 한 영역에 올려놓고자 했다.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대중의 구미를 좇는 기존 상업영화의 문법 대신 영화언어의 예술적 문법을 제안하고자 했고,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다. 이 글에서 유럽에서 발생한 영화 운동의 역사, 이론적 배경을 전부 살피진 않을 것이다. 다만 영화의 발전 과정에 있어 관습처럼 굳어지는 주류 영화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언제나 있었다는 사실을 짚고 싶다.

<내일을 위한 시간>
이미지 출처: <내일을 위한 시간>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주인공 산드라는 우울증으로 인한 오랜 병가 끝에 복직을 신청한다. 그러나 산드라의 동료들은 그녀와 일하는 대신 보너스를 받기를 택한다. 회사는 산드라의 복직 여부를 직원들에게 투표로 결정하라고 떠넘긴다. 영화는 주말 동안 산드라가 동료들을 만나 보너스 대신 자신의 복직을 선택해 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속에는 어떠한 스펙터클도 환상적인 사건도 없다. 영화 속 긴장은 기승전결의 형태로 해소되지 않으며 극적인 화해나 깨달음도 없다. 영화의 목적이 현실을 잊고 꿈 세계를 즐기는 것이라면, 이런 영화는 그저 지루하고 불편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
이미지 출처: pexels

영화는 전통적으로 극장에서 상영됐다. 영화 관람의 경험은 필연적으로 극장이라는 공간, 관객이라는 집단과 관계 맺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시네클럽을 중심으로 평론가와 창작자, 문인, 일반 시민들이 만나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경험을 공유했다. 극장을 통해 다른 관객들과 감상을 공유하는 이런 경험은 관객을 극장 공간의 일시적 구성원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관객과 결속되며 영화는 단순한 소비재 이상의 의미를 획득한다. 영화를 꿈의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공산품이 아니라 영화가 산출하는 부가가치 이상의 무엇인가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본 것이다.

오멸 감독은 “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에 관해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를 통해 제주 43사건의 비극과 고통을, 영화 <눈꺼풀>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다루었다. 어떤 이야기들은 굳이 꺼내지 않는다면 시야에서 벗어나고 금세 바래지기 마련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오락만을 목적으로 감상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를 오락거리로 소비하고자 했다면 통쾌함과는 거리가 먼, 지루하기만 한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 영화 주제에 대해 대화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돌아보는 계기로 사용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산드라 동료들의 선택을 보며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지 가정해볼 수 있다. 그리고 돈과 사람, 이상과 현실을 저울질해야 하는 여러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생각을 달리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목적이 바뀌면 영화를 통해 보이는 것도 그전과는 다를 것이다.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나 완전한 꿈 이야기를 그릴 수 없다. 결국 현실에 기초한,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화가 꿈을 그리는지 현실을 그리는지 구분하는 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건 영화를 보는 주체인 우리가 ‘현실을 보고자’ 영화를 보는지 ‘현실을 지우고자’ 영화를 보는지 아는 것이다. 2시간 남짓이 흐르면 스크린은 올라가고 결국 우리는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영화가 현실을 잊고 꿈에 빠져드는 마취제로써 기능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똑바로 보고 더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게 하는 방향으로 소비되어야 하지 않을까.

  • 정헌,<영화기술역사>, 2013
  • 이나라, <유럽 영화 운동>, 2015
  • 영화진흥위원회, ‘2020-2021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 2022
  • 서울아트시네마, ‘영화의 역할 중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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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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