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이
지속되는 이유

경쟁과 재미 뒤에 숨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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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부터 방영 중인 엠넷의 <보이즈 플래닛>이 열렬한 반응을 얻고 있다. 그외 <아이랜드>(2020), <방과후설렘>(2021), <극한데뷔 야생돌>(2021) 등 최근 제작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보면,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은 방송가에서 꾸준히 선호되는 포맷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2019년 <프로듀스> 시리즈의 투표 조작 사건 이후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제작은 상당히 위험한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포맷은 지속적으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전처럼 부활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바이벌 오디션이란

이미지 출처: MBC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의 계보를 타고 올라가면 다양한 대중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새로운 대중가요와 차세대 음악인의 등용문으로서 1970년대 후반부터 방영된 MBC의 <강변가요제>(1979~2001)와 <대학가요제>(1977~2012)는 대학생 및 일반인이 지상파 방송에서 음악성을 검증받고 이후 가수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런가 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동네 잔치와 같은 친근한 경연을 꾸려온 KBS의 <전국노래자랑>(1980~현재)의 경우, 40여 년이 넘는 기간동안 평범한 시민들이 기존 대중음악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왔다.

서바이벌 오디션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한 종류이지만, 동시에 ’서바이벌’이라는 요소로 분명히 구별된다. ‘오디션’이 ‘상금 또는 상품을 놓고 일반인들이 참여하여 노래, 춤, 다양한 재능을 겨루어 최고의 승자를 뽑는 방송 콘텐츠 장르’라면, 서바이벌은 ‘시즌 전 과정에 미션을 주고 이를 통과하지 못한 참가자들이 탈락하는 형식’이며 ‘생존해가는 과정이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촬영, 편집되는 리얼리티 포맷 프로그램’a이다. 이는 1990년대 후반 영미권에서 시청자들이 기존의 공중파 방송만을 시청하지 않게 되자 다양한 미디어를 넘나드는 하나의 프랜차이즈로서 고안된 것이었다.b) 간단히 말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최고를 향해 겨루는 과정에서 ‘미션’과 ‘탈락’이라는 요소를 부각하는 새로운 포맷이라 할 수 있다.


서바이벌 오디션에 관한 기존 담론

초창기 시청자들은 서바이벌 오디션이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오직 재능만으로 대결하는 공정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크게 매력을 느꼈다. <슈퍼스타K> 시즌 2와 그에 대한 반응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다. 공정한 사회에의 열망이 높았던 당시 대중에게 ‘환풍기 수리공’ 허각의 우승은 ‘아름다운 경쟁’의 결과로 받아들여졌다.c) 그렇지만 한편으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거듭 제작될수록 프로그램 내 경쟁의 방식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관한 비판이 다수 등장했다. 매회 탈락자를 낳는 각종 미션과 생존자 선정 과정의 혹독함이 우리 사회의 과열된 경쟁을 그대로 반영하고 강화한다는 지적이었다.

이미지 출처: 엠넷 공식 웹사이트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도 유사한 맥락에서 비평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부 연구자 및 비평가에 의하면 프로그램의 참가자 및 시청자들은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의 공정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에 참여 및 개입하지만, 그럼으로써 소수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의 부조리함을 외면하게 된다.d) 그런가 하면, 강도 높은 훈련 방식으로 인해 발생가능한 착취나 폭력이 성장 서사에 필요한 것으로 정당화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앞선 입장들이 프로그램 자체에 관한 학계와 언론의 의견이었다면, ‘프로듀스’ 시리즈 제작진의 불법 행위에 대한 대중의 냉정한 반응도 아이돌 서바이벌을 둘러싼 인식을 형성했다. 당시 밝혀진 투표 조작은 일부 기획사들과의 암묵적 담합을 중심으로 제작진이 행한 기만이었다. 응원하는 참가자들의 생존을 위해 열렬한 성원을 보내고 팬덤 활동을 전개했던 시청자들은 배신감에 분노했고 소송도 마다하지 않았다. 혹자는 이를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 10년 역사의 마무리’라고 보기도 했다.e)
사회 구조를 반영하는 미디어로서 프로그램을 비평하는 관점은 언제나 필요하고, 방송사의 불법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다양한 비판과 논란으로 인해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에 관한 논의의 결론이 ‘없어져야 한다’가 된다면 많은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 문화 현상은 비평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보는 관점에 따라 사회를 들여다보는 창이 되어준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에서 한 발 떨어져 현상을 이루는 관계들에 주목함으로써 이 포맷이 왜 지속되고 있는지 윤곽을 그려보자.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의 의미

이미지 출처: 티빙(TVING)

먼저,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은 현재 한국 대중음악산업에서 아이돌이라는 원천 콘텐츠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 1980년대 초 케이블 네트워크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미국의 음악 전문 채널 MTV가 뮤직비디오를 대중음악의 일부로 만든 시점부터, 대중음악은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노래 실력 외에도 청중이 즐길 수 있는 춤을 비롯한 다양한 퍼포먼스가 중요해진 것이다.
더불어, 1990년대 한국에서는 영미권의 보이밴드, 일본의 아이돌 제작시스템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SM 기획(현 SM엔터테인먼트)을 필두로 몇몇 기획사들이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음악이 점차 아시아와 유럽 청중에게 전해지면서 케이팝이라 불리게 되었고, 30여 년의 세월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현상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런 역사를 고려하면, 케이팝을 공연하는 아이돌이 한국 대중문화의 주축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케이팝(그리고 아이돌)은 이제 음악산업, 나아가 문화산업 내 주류 ‘문화상품’이다.

이에 따라 방송에서 아이돌을 하나의 원천 콘텐츠로 활용한 지 오래다. 데뷔 시기에 따라 1세대 아이돌로 분류되는 그룹들(H.O.T, 핑클, 젝스키스, S.E.S. 등)이 청소년들의 ‘우상’으로서의 지위를 고수하며 음악방송에 주로 등장했다면, 2, 3세대 아이돌(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원더걸스, 빅뱅, 카라, 샤이니, 2PM, f(x), 2NE1 등)은 점차 예능과 방송, 드라마에도 출연하면서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후 잘 만들어진 아이돌은 음악 외의 영역에서도 인지도를 쌓아갔고, 방송사에서 원천 콘텐츠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콘텐츠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포맷이 있다니, 두 손 들고 환영할 수 밖에. 단기적으로는 방영 시의 시청률과 화제성,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 가능한 아이돌을 배출할 잠재력을 지녔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방송사가 아이돌을 활용했다면, 기획사는 아이돌을 생산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여태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출현과 쇠락을 지켜본 우리는 데뷔가 곧 지속적인 활동과 인기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f) 대형기획사의 경우 인하우스 시스템과 전략적 마케팅에 힘입어 자사 아이돌을 하나의 매력적인 콘텐츠로 만들어낼 환경을 갖추고 있으나, 중소기획사는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의 기획사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맡아 세세한 분업이 어려운 데다 자본도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g) 때문에 방송사가 가진 다양한 채널을 경유해 연습생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차세대 스타를 배출하고자 하는 중소기획사에게 매혹적인 선택지가 된다.

이미지 출처: 유니버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건 케이팝 팬덤이다. 아이돌이 대중음악산업의 중심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인 수용자로서의 팬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h) 1세대 아이돌부터 등장한 팬덤은 온오프라인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음악방송 방청, 팬 문학, 팬 아트 창작 등의 활동을 이어가며 영역을 지켜왔다.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폐쇄성을 가진 공식 팬카페를 넘어 개방된 온라인 공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영역을 확장해가는 중이다. 자신의 ‘최애’가 출연한 방송 일부를 편집 및 재가공하여 유튜브에 업로드하거나, 해외 공연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트위터에 공유하는 식이다. 글로벌 케이팝 팬덤도 마찬가지로 지지하는 아이돌에 대한 애정을 여러 채널을 통해 표한다. 유튜브 댓글창이나, 위버스/리슨/유니버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만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서울 주요 지하철역의 ‘보이즈 플래닛’ 광고판 위를 확인해보면 아시아와 남미의 여러 국가에서 방문한 팬들의 손편지를 읽어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텍스트와 이미지, 온오프라인, 국경을 넘나들며 콘텐츠를 만들고 나누는 케이팝 팬덤에게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이란 무한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 향유하고 재구성할 콘텐츠를 선사하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또한 스타를 ‘선망’하던 1세대 팬덤과 달리 아이돌의 ‘기획’과 ‘양육’에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3세대 팬덤i)은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의 생존자 선정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이미 만들어진 아이돌을 소비할 때와는 또다른 재미를 느끼고, 자신이 대중음악산업의 주요한 구성원이라는 효능감을 획득한다. 팬덤의 영향력을 인지한 방송사의 전략과, 이를 새로운 커뮤니티와 콘텐츠 생성 동력으로 삼는 팬덤의 창의적인 실천이 공생하는 공간으로서,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은 현재의 대중음악산업을 지탱한다.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은 방송사와 기획사, 시청자(팬덤)의 욕구와 필요가 교차하는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방송사에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할 콘텐츠로서의 ‘아이돌’을 생산하는 수단을, 기획사에는 연습생들이 노출될 수 있는 채널을, 팬덤에는 아이돌을 직접 기획하는 재미와 성취감을 제공한다.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이 앞으로 포화상태인 아이돌 산업의 척박한 현실을 더 악화시킬지, 혹은 하나의 대안이 되어줄지는 미지수다. 다만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프로그램의 윤리성이나 성공 여부보다도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이 그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다. 문화의 의미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개인과 집단,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을 둘러싼 일련의 현상들 또한 프로그램을 제작, 활용, 향유하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더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a) 김도윤, 신동엽, 한국 서바이벌 오디션 TV 프로그램 흥행요인 분석, 문화산업연구 21.2, 2021, 4쪽.
b) 헨리 젠킨스, “’아메리칸 아이돌’에 빠져들기 – 우리는 어떻게 리얼리티 쇼에 설득 당하는가,” 컨버전스 컬쳐: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충돌, 김정희원/김동신 역, 비즈앤비즈, 2006.
c) 한겨레, 허각, 슈퍼스타 등극…대중들 희망을 보다 (2010.10.25)
d) 홍지아, 정윤정, 리얼리티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이 재현하는 아이돌 되기의 자격, 현상과인식 42.2, 2018
e) 시사인, 60초 후에도 계속된 대국민 사기극 10년 (2019.11.30)
f) 한겨레, 아이돌 만들기만 하면 성공? 소속사 방치로 외국인 멤버 벌금까지 (2023.1.22)
g) 벨루가, 어서와, 연예기획사는 처음이지? 마인드빌딩. 2022, 44쪽.
h) 김호영, 윤태진,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돌(idol) 시스템 작동방식, 방송과 커뮤니케이션 13.4, 2012, 68쪽.
i) 신윤희, 팬덤 3.0, 북저널리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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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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