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ANTIEGG 예진입니다.
한 문장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늑골 사이사이에 숨을 가득 채워 넣고 침잠하는 마음으로 글자를 모았습니다. 오랜만에 건네는 인사는 더 머쓱한 법이니까요. 안부를 전하지 못한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생각해 보니 옷을 여미고 자판을 두드리던 2월에 글을 보낸 뒤 벌써 한 계절이 지났더군요. 돌아보면 짧은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크고 작은 변화들로 그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name%$ 님도 마찬가지겠죠. 우리가 마주 앉아 그간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name%$ 님은 제일 먼저 어떤 변화를 말하고 싶은가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금새 한해의 반을 보냈다고 탄식하고 싶지는 않은지요. 무심코 돌아본 과거가 평평해 보인다면 오늘의 편지가 더 반가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투박한 글이지만, 곳곳에 산재한 성취를 증명해 보려고 해요.
부단한 일상과 별개로 그간 무엇을 이뤘는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미디어에 송출되는 타인의 눈부신 성취는 마냥 돋보이는데, 나의 어제와 오늘은 비슷하게 야트막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죠. 비를 맞으며 실내를 바라보는 듯한 눅눅한 불편감. 소셜 미디어 보편화 이전과 비교했을 때, 개인의 삶에 타인의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타인의 성취를 빈번히 목격하게 되었지요. 여기서 미묘한 감정의 교차가 생깁니다. 편집된 타인을 자주 보다 보니 나의 성취는 한없이 작아 보이기만 하고 마음은 조급해집니다. 자신의 성과를 폄하하는 습관은 이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설령 성취가 있었다고 해도 부정하거나 덮어두기 바쁩니다. 자신을 향한 검열을 멈춘 채 그간의 변화를 복기해 보세요. 어제보다 오늘 한 글자 더 읽은 것도 성취입니다. 지난해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척척 해나가고 있음을 발견해도 좋고요. 개인의 성장은 폭발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느슨하고 꾸준할 뿐이에요. 많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타인과의 비교가 불가피한 시대에서 우리는 버젓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흐름은 천편일률적인 삶의 방식을 종용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기인했을 테죠. 대학에 진학한 뒤 그럴싸한 직장에 취직하고, 괜찮은 짝을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성공적인’ 삶으로 인도하는 것. 숨 쉬듯 강요받는 삶은 클리셰로 가득한 드라마 같습니다. 각본과 달리 개인은 입체적이며, 모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왜곡돼 있습니다. 때론 자신만의 북극성을 갖는 것만으로 충분하지요. 외부 자극에 강탈당한 관심을 되찾아 올 때, 일상에서 느끼는 효능감은 증대될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망각하는 게 있습니다. 삶은 트랙으로 은유되곤 하지만 사실 망망대해에 가깝고, 우리가 탄 보트는 하나같이 부실한 뗏목이라는 것입니다. 가라앉음은 예정되어 있죠.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낡은 문장처럼, 우리는 저마다에게 필요한 속도(어쩌면 최선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는 모습이 좀 다르면 어떤가요. 타인의 기대를 져버리면 그건 또 어떤가요. 어떤 성취를 이루고, 명예와 부귀를 누리던 물질적인 경험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훗날 죽음을 앞두고 천장을 바라볼 때, 무엇을 열렬히 그리게 될지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마를 맞대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던 기억, 바람이 만드는 초록의 파동, 필요한 문장을 만난 순간의 전율 같은 것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