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카페에 가는가

카페라는 공간이
우리 삶에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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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국내의 커피전문점, 즉 카페 수에 해당하는 숫자는 무엇일까?
A. 56,232 B. 23,773 C. 90,463

정답은 C다. A와 B는 각각 지난해에 집계된 전국의 편의점과 약국의 수다. 2022년 6월 기준, 전국의 카페는 총 9만 463개로 집계됐고, 이는 코로나의 영향권이었던 2021년보다 1만 2920개 늘어난 숫자였다. 이러한 증가세를 반영한다면 올해 안으로 10만여 개에 달하는 카페가 영업 중일 것으로 예상된다. 매우 급격하긴 하지만 이것은 수요를 반영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올해 5월에 진행된 리얼리서치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2~3년 전과 비교해 카페 이용 빈도가 ‘크게 늘었다’고 대답한 사람들의 비율은 33%로, ‘비슷하다(48.8%)’는 응답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이용 빈도가 ‘줄었다’고 답한 사람들은 14.2%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조사에서도 쉽게 드러나듯이 오늘날 우리는 카페와 매우 밀접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그러나 그만큼 우리는 카페를 소비하는 일에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번화한 도심에서는 ‘한 집 걸러 카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카페를 만나지 않고는 길을 갈 수 없는 날이 오고 말았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는 ‘평소 우리나라의 커피전문점 매장 수에 대해 어떻게 느껴 왔습니까?’라는 질문에 무려 79.6%가 ‘지나치게 많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라도 카페를 줄여 나가야 하는 것일까? 편의점 수의 1.6배, 약국의 3.9배.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증식하고 있는 카페들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번 그레이에서는 카페라는 공간이 갖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카페의 기원

오늘날의 카페는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기원은 인류 최초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던 이슬람 문화권의 ‘카베 카네(qahveh khaneh, 페르시아어로 커피를 마시는 장소라는 뜻)’로 알려져 있는데, 15세기 메카를 시작으로 곧 오스만 제국 전역에 카페 문화가 전파되기 시작해 16세기에는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에도 카페가 개점했다. 머지않아 이 카페라는 공간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한 장소가 아닌 집과 일터를 벗어나 개인의 여유와 사회적인 인맥을 얻기 위한 곳으로 진화했다. 당시 이스탄불의 카페에서는 체스나 백개먼과 같은 보드게임 등 사교적인 취미활동을 즐기거나, 정치나 시사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손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16세기 오스만 제국 사람들이 당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기록한 그림(작가, 연도 미상)
16세기 오스만 제국 사람들이 당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기록한 그림(작가, 연도 미상), 이미지 출처: Daily Sabah

술에 굳이 취하지 않고도 집 밖에서 친목을 도모할 수 있게 해주는 획기적인 공간으로 굳게 자리매김한 카페의 유행은 17세기 중반이 되자 유럽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이슬람 세계와 교류가 잦았던 베네치아 공화국을 시작으로 런던, 파리, 프라하, 비엔나 등의 주요 도시에 카페가 등장했고, 오스만 제국의 카페들과 마찬가지로 사교, 정치, 상업, 예술 분야의 선진적인 정보와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의 장으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현대의 우리가 부르는 ‘카페’라는 이름도 이 시대에 본래의 페르시아어 명칭의 일부인 ‘카베(qahveh)’를 프랑스에서 ‘카페(café)’로 받아들이며 생겨났다.

조세프 하이모어, “영국 커피 하우스의 정치가들”(1725년경)
조세프 하이모어, “영국 커피 하우스의 정치가들”(1725년경),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카페라는 이름의 낭만

시간이 더 흐르며 카페는 사회적인 기능에 더해 어떠한 ‘낭만’을 상징하는 문화적인 지위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전형적인 카페의 모습을 논할 때 가장 흔하게 떠올리기도 하는 19세기 후반 파리지앵들의 카페가 그 예다. 1885년 기준, 파리에는 약 4만 개의 카페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서울의 카페 수가 2만 5천여 개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숫자다. 필자는 이렇게 많은 카페가 성황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그곳이 만들어 낸 특유의 유토피아적인 풍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층위의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로 당시 파리지앵들에게 카페란 신분 고하, 남녀 성별과 상관없이 비용을 지불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물론 주요 타깃 계층을 정해둔 고급 카페들도 있었지만, 이전까지의 살롱이나 무도회 등 상류층과 극소수의 중산층만이 드나들 수 있었던 사교의 장들과는 달리 카페는 그 접근성에 있어 파격적일 정도로 민주적이고 이상적이었던 것이다.

일리야 레핀, “파리지앵 카페(Parisian Café)”(1875)
일리야 레핀, “파리지앵 카페(Parisian Café)”(1875),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두 번째 층위는 이러한 카페가 수행했던 ‘아지트’로서의 역할이었다. 일례로, 파리 안에서도 특히 진취적인 지역으로 예술인들의 둥지가 된 몽마르트에는 통칭 ‘보헤미안 카페’라고 불렸던 작은 공간들이 생겨났다. 이곳의 주인들은 후원자라는 의미의 ‘르 패트론(le patron)’이라고도 불렸는데, 그들이 카페를 운영하며 만나게 된 각계각층의 손님 중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개인적인 대화를 주선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나게 된 수많은 예술가들은 카페를 아지트 삼아 서로의 작품에 관해 토론하고 전시, 출판 등의 다양한 활동을 도모하며 귀족 후견인과 예술 기관들이 점령한 주류 예술계의 이목에서 벗어나 이전까지는 누릴 수 없었던 자율적인 무대를 갖게 되었다. 마네, 드가,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 걸출한 예술가들로 잘 알려진 ‘인상파(Impressionists)’의 배경에도 카페 게르브와(Café Guerbois)와 카페 드 라 누벨 아텐(Café de la Nouvelle Athénes) 등 몽마르트의 카페들이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카페 드 라 누벨 아텐의 모습(1900년경)
이제는 사라진 카페 드 라 누벨 아텐의 모습(1900년경),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카페라는 공간이 시대의 정신과 낭만을 담고 있는 것은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02년에 개업해 한국 최초의 카페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 중구 손탁호텔의 ‘정동구락부’는 1905년에 조선통감부의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늑약 체결을 추진하는 장소로 전락시키기 전까지 독립파 관료세력, 젊은 지식인, 외교관, 선교사 등이 모여드는 항일 운동의 본거지였다.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카페는 ‘다방’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는데, 몇몇 문화계 인사들은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한 아지트로 다방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1933년에서 1935년까지 운영됐던 천재 시인 이상의 ‘제비다방’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해방 이후, 다방 문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1956년 서울 대학로에 개업한 ‘학림다방’은 오늘날까지도 학생운동과 청춘의 상징이자 한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 뒤를 이으며 생겨난 1960년대와 70년대의 수많은 추억의 음악다방들도 세월이 흘러 ‘LP카페’라는 이름으로 부활해 전국 각지의 ‘핫플’들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7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대학로의 학림다방
7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대학로의 학림다방,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21세기 한국인의 카페

그렇다면 우리는 카페가 간직하고 있는 낭만을 찾아 방문하는 것뿐일까? 21세기 한국 카페의 방문객들은 그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내적 동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2019년에 발표된 논문 『소비 공간으로서 카페의 의미 분석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카페 공간에 대해 뚜렷한 내면적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와 연동된 다양한 의도를 바탕으로 공간을 이용한다. 그러한 소비자의 의도에 따라 카페는 크게 4가지 유형의 공간적 역할을 갖는다.

첫 번째 유형인 몰입의 공간으로서의 카페는 소비자들이 무언가에 집중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몰입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함께 카페를 방문한 사람에게 집중하거나 혹은 업무, 과제 등 개인적인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인 힐링의 공간으로서의 카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잠시 도피함으로써 안식을 얻는 공간이다. 시간적,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여행에 대한 욕구를 새로운 카페 공간을 탐색하면서 해소한다고도 할 수 있다.

카페
이미지 출처: unsplash

세 번째 유형인 과시의 공간으로서의 카페는 소비자들이 카페 공간을 통해 타인에게 자신을 과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시는 다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자신이 세련된 카페 공간에 대해 알고, 그곳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SNS 등을 통해 타인에게 알리면서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카페에서 독서, 업무, 과제 등 생산적인 일에 몰입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그렇지 않은 주변의 다른 소비자들과 비교해 우월감을 느끼는 경우이다.

마지막 유형인 모순의 공간으로서의 카페는 고독과 소통이 공존하는 곳임을 의미한다. 혼자 있기 위해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온전히 홀로 있는 것을 택하는 대신 타인 속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특정 시간 동안 고독을 ‘사유화’한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소비자는 주변을 관찰하고, 군중 속에서 스스로를 재발견할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분석은 한 가지 커다란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에게 카페란 커피 등의 음료를 소비하는 ‘상품 소비’의 장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욕구에 맞게 공간 자체를 소비하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단 하나의 카페 안에서도 만남과 몰입, 사색, 휴식, 기분 전환, 관찰, 과시, 우연한 조우 등 수많은 층위의 욕구와 가치가 공존하고, 또 충돌한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날 한국에 10만여 개의 카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욕망을 수용할 공간들이 필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우리 주변의 수많은 카페들은 상징적인 형태에 불과할 뿐, 사회의 깊은 내면이 반복적으로 표출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2019년 5월, 미국의 커피전문점 블루보틀이 서울 성수동에 국내 1호점을 열자 오픈 당일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
2019년 5월, 미국의 커피전문점 블루보틀이 서울 성수동에 국내 1호점을 열자 오픈 당일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 이미지 출처: 한국경제

생각해 보면 카페만큼 보편적이고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공간은 없을 것이다. 어떠한 공간을 ‘카페’라고 정의 내리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아마 커피 등의 음료를 팔고, 그것을 소비하는 공간이라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한 소비에 참여할 수 있는 재화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무런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이러한 간결한 정체성이 카페라는 공간을 무한히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게 하고, 그 최소한의 틀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행위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

개인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 귀해진 시대. 카페라는 공간은 우리가 가장 쉽게, 또 가장 저렴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어쩌면 카페라는 공간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은 그렇게 열린 공간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느끼는 지겨움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왜 카페에 가게 되는지를 이해한다면, 또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카페가 왜 지겹게 느껴지는지를 이해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창조할 공간들은 카페라는 흔하디흔한 선택지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해질 수 있지 않을까. 또, 그렇게 된다면 카페라는 공간도 우리에게 조금 더 소중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 Encyclopaedia Britannica, Café: eating and drinking establishment, 2021. 08. 26.
  • 동아일보, 국내 커피전문점 매장 수 10만개 육박…10명중 8명 “지나치게 많아” (2023. 05. 15.)
  • 문지혜 외 4인, 소비 공간으로서 카페의 의미 분석 연구, 소비문화연구, 2019, 제22권 제4호
  • 바리스타룰스, 우리나라 근대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공간, 카페 (2017. 07. 12.)
  • 월간조선, LP판에서 울려 퍼지는 추억의 멜로디 – 대학로 學林다방 (2009. 05.)
  • 한국경제, 서울 커피전문점 2만5000개 넘었다…골목마다 채워진 카페들 (2022.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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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주

예술이 모두에게 난 창문이 되는 날을 위해
읽고, 쓰고,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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