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
배리어 프리 디자인

더 나은 이동권을 향한
세계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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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한동안 서울이 떠들썩했습니다. 시위를 이끄는 이들의 움직임에 깊은 응원을 보내는 이부터 출퇴근 시간을 침해당해 분노를 표하는 등 세간의 반응은 엇갈렸는데요. 하지만 이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먼저 그들이 어떤 배경으로 임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번 시위의 시발점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0월 고(故) 한 모씨가 신길역 휠체어 리프트에서 추락해 결국 사망까지 이른 사건 이후, 지하철 이용 시 엘리베이터가 없어 위험에 노출된 장애인들의 안전과 이동권 보장을 위해 열린 시위가 바로 최근까지 이어진 움직임이었죠. 실제로 인명피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1년이나 지나고서야 엘리베이터 설치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였고, 최근 4월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추락해 사망자가 건이 한차례 더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모두가 장애인 이동권을 제대로 마주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나라는 예방보다는 사후 조치로 장애인 이동권을 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과연 해외는 어떨까요? 실제로 독일, 미국, 일본 등 이동권에 대한 성숙한 의식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은 단순히 기존 시설을 개선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물리적, 심리적, 그리고 제도적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모두가 쾌적하고 안전하게 활동하고 생활할 수 있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이라는 개념이 이미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저상버스가 곧 대중버스인 나라, 독일

이미지 출처: berlin.de

독일 정부는 2013년, 2022년 1월 1월까지 모든 지자체들이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 프리를 구현할 것을 의무로 하는 여객 운송법 제8조 1항을 내놓았습니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이동 수단에서 이미 배리어 프리 디자인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죠. 시내버스, 지하철 및 지상철을 전부 운영하고 있는 베를린 역시 시내버스는 2009년, 지상철은 2017년에 모두 저상화 되어 휠체어 장애인이 혼자 이용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아직까지도 30%를 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저상버스 비율을 놓고 봤을 때, 상당히 의미 있는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독일의 저상버스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약자, 임산부 등 모든 교통 약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폭넓게 계획되었습니다. 장애인의 좌석을 따로 마련해 이들이 특혜를 얻고 있다는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고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이미지 출처: passionatepeople.invacare.eu.com

그럼 독일의 저상버스에 숨겨진 디테일을 살펴볼까요? 우선 독일의 버스는 입구가 넓게 설계되었습니다. 따라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승하차할 수 있으며, 입구와 가까운 위치에 전용좌석과 회전공간이 마련되어 이들이 승하차 시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휠체어를 세울 수 있습니다. 또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좌석을 최소 2개 이상 배치했으며, 교통약자를 위한 정차 스위치가 눈높이에 맞게 설치돼 있어 안전하게 하차할 수 있기도 하죠. 시내 이동에 많이 이용되는 트램(노면전차)의 출입구 또한 승강장과의 간격이 5cm 미만으로 규정되어 있어 휠체어로도 무리 없이 승차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은 9~10cm를 웃도는 간격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무심함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넘어서 생존의 위협을 주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용이하게 접었다 펼 수 있는 수동식 발판(램프) 또한 독일의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든 요소 중 하나입니다. 주로 버스 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수동식 발판은 신속하게 펼치고 접을 수 있으며 운전사뿐만 아니라 일반 승객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데요. 또한 수동식 발판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으면, 가운데 문만 먼저 열어 휠체어 탑승객들의 출입을 돕습니다. 그 후 기타 승객의 탑승을 허락하는데, 중요한 건 이러한 사회적 질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휠체어로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 역사 내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교되는 지점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장애인도 편히 택시를 탈 수 있는 나라, 미국

이미지 출처: california-transit.com

우리나라의 경우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은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기 불편하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 분들은 ‘장애인 콜택시’를 주로 이용합니다. 하지만 운영되는 지역이 많지 않을뿐더러 복잡한 절차와 하늘의 별따기인 예약 경쟁, 지자체마다 다른 기본요금과 배차시간 등으로 인해 접근성이 떨어지기는 매한가지인데요.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일반 택시도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이 길가에서 손을 들어 택시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와 사뭇 다른 콜택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도시 LA엔 장애인 전용 택시인 ‘액세스(Access)’가 있습니다. 이는 노약자와 장애인을 대상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이동 서비스로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태워주는 합승 교통 서비스인데요. 오전 4시부터 오전 12시까지 연중무휴로 이용할 수 있으며 소수 목적지를 제외하고는 도시 내 어디건 이동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편도 요금 역시 이동 거리에 따라 상이하지만 최대 $3.25를 넘지 않죠. 어떻게 이런 서비스가 가능했을까요?

미국은 1990년에 제정된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DA)을 기반으로 장애인 이동권을 엄격하게 보장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일반 대중에게 개방된 모든 공간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미국 내 이동권 운동이 한창이던 1970~80년대 단체 활동가들의 격렬한 투쟁을 통해 구축되었는데요. LA의 액세스 역시 해당 법을 근간으로 운영 예산의 95%는 연방 정부와 시에서 지원받고, 나머지 5%가량은 사용자 운임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sfmta.com

샌프란시스코 또한 주정부가 발행하는 세금 보고서(National Tax Agency)를 살펴보면, 장애인 택시에 대한 지원 방안이 명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문서엔 장애인을 태울 때마다 정부에선 택시 기사에게 보조금 $10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2018년에는 택시에 설치된 수동식 발판을 지원한다는 조항이 추가되기도 했죠. 최근으로 올라와 2020년에는 수동식 발판을 설치한 택시는 공항 택시 승강장의 맨 앞쪽에 차를 댈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생겼는데요. 택시 자체를 이용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와 다르게 적어도 미국에서는 장애인 분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택시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시민을 위한 디자인의 나라, 일본

이미지 출처: ISTOCK

이번엔 가까운 일본으로 가볼까요? 일본은 교통 약자를 위한 시설 정비를 한국보다 수년 먼저 시작했기에 배리어 프리 선진국으로 손꼽히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000년 ‘고령자, 장애자 등의 대중교통 이동 원활화 촉진 관련 법률’이라는 일명 배리어 프리 법을 일찌감치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2017년 도쿄 등 일본의 전국 지하철 운영사 10곳의 역사 625곳 중 624곳에 엘리베이터 및 슬로프 설치가 완료되었죠. 매년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서울시의 ‘지하철 승강기 100% 설치’라는 약속이 2번의 파기를 거쳐 다시 2024년을 다시 기약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대조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하마마츠 역, 이미지 출처: global.jr-central.co.jp

한국의 경우 엘리베이터가 정상적으로 설치가 되어 있는 역이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설계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허다한데요. 하지만 일본의 시즈오카현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역을 살펴보면 계단,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3종의 이동수단이 한 공간에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행자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눈앞에 펼쳐진 수단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죠.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게 아닌, 시민 자신의 처지에 따라 바로 이용할 수 있기에 장애를 강조하거나 은폐하지 않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잘 적용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상으로 올라와 도로를 걷다 보면 마주할 수 있는 일본의 디테일, 트렌치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트렌치는 빗물이 고이지 말라고 설치한 도로 위 장치지만, 우리나라는 촘촘하지 않은 디자인 때문에 수동휠체어 바퀴가 빠지는 등 휠체어 이용객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일본에선 트렌치의 간격을 촘촘하게 설계해 결과적으로 휠체어 이용객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끄는 가족 혹은 지팡이를 짚는 어르신 모두가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는 도로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 교통약자,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지난 시위로 ‘이동권’ 논쟁의 초점은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맞춰졌습니다. 그들의 생존이 걸린 행보를 두고, 누군가는 피해를 제공한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죠. 하지만 우리는 눈앞에 놓인 잠깐의 불편함이 아닌,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의 내용처럼, 우리 사회엔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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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연

누군가의 관점이 담긴 모든 것이 예술이라 믿습니다.
ANTIEGG와 함께 예술을 기록하고,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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