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예술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두 눈에 담아 가기 위해 애쓴 경험 다들 있으실 거예요. 행여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까봐, 작품 앞에서 작은 아름다움도 놓칠세라 꾹꾹 눌러 담으며 감상하죠. 그럼에도 매번 아쉬운 발걸음으로 전시장을 벗어나곤 하는데요. 그런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아트북을 소장하는 것이에요. 방금 내가 본 전시의 작품 이미지와 텍스트가 모두 담긴 전시 도록부터 한 명의 미술가나 특정 미술 사조를 아우르는 방대한 작품 이미지가 담긴 화집, 작가가 제작한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책인 아티스트 북까지. 다양하고도 화려하며 개성 있는 아트북을 만드는 세계 3대 아트북 출판사를 소개합니다.
유산과 혁신의 산물, 애슐린
프랑스 아트북 출판사인 애슐린은 순수 미술 뿐만 아니라 사진, 패션, 디자인, 브랜드까지 포괄하는 넓은 예술 장르를 다루며 1994년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풍부한 이야기와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가 담긴 새롭고 현대적인 스타일의 책을 만들고자 하는 프로스퍼 애슐린(Prosper Assouline)과 마틴 애슐린(Martine Assouline) 부부의 열망으로 시작됐어요. 애슐린이 만드는 아트북은 ‘럭셔리’에 집중합니다. 애슐린은 하나의 명품 브랜드가 되길 자처하며 자신들이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확장해나가고 있어요.
그들은 책이 지성과 감정, 유산과 혁신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책에 담긴 내용은 단지 오늘에 관한 것이 아니며, 현재와 과거를 연결해주는 견고한 매개인 동시에 영감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도 아름다운 책은 특별한 명품 선물, 서재나 도서관 액세서리, 스타일리시한 가구의 기능까지도 수행하며 예술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가 새로운 창작의 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해요. 실제로 애슐린의 책을 보면 감각적인 디자인과 수준 높은 프린트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전통성을 기반한 아트북, 파이돈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해 지금은 영국을 대표하는 출판사 파이돈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923년 설립자인 벨라 호로비츠(Béla Horovitz)와 루트비히 골드샤이더(Ludwig Goldscheider)는 고전 문화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파이돈’의 이름을 따 출판사명을 지었죠. 문화와 역사, 철학 등의 서적을 취급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본사를 옮겼고, 전쟁이 끝난 1942년 이후부터 윈저 성의 영국 왕실 소장품 도록을 제작했습니다.
1950년엔 우리나라 미술 전공자들의 필독서인 에른스트 H.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The Story of Art』를 출판했습니다. 파이돈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로 무려 8백만 부가 팔리고 30개국 언어로 번역됐죠. 그들이 지켜온 아트북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를 계승해 책에 녹여내면서 디자인, 내용, 제작 면에서 세계적인 품질을 인정받았습니다. 2005년 파이돈의 핵심 고객을 대상으로 한 여행 가이드 시리즈인 『The Silver Spoon』이 또 한번 성공하며 회사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냅니다. 이후 다양한 장르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브랜드 및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전통성에 기반한 독창적인 아트북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대의 예술을 말하다, 타셴
혁신적인 시도를 전개하며 실험적인 아트북을 출판해 온 독일의 아트북 출판사 타셴은 작은 만화 책방에서 시작했습니다. 책방 주인 베네딕트 타셴(Benedict Taschen)은 자신이 소장한 만화책과 희귀한 책을 서점에 선보이면서 아트북에 대한 대중들의 수요를 직감했고, 본격적인 아트북 사업을 구상했어요. 그렇게 1980년, “대중적인 가격으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혁신적인 예술 서적”이란 모토를 가지고 다양한 아트북 컬렉션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가장 대중적이면서 대표적인 아트북 시리즈로는 ‘베이직 아트’가 있는데요. 베이직 아트 시리즈는 미켈란젤로 같은 고전 화가부터 동시대 현대미술 작가까지, 뿐만 아니라 미술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디자이너와 건축가를 포함한 아티스트와 주요한 미술 사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일목요연한 내용, 합리적인 가격으로 아트북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입문서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좀 더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는 ‘콤팩트 컬렉션’과 단순히 예술 책으로 규정할 수 없는, 하나의 작품에 가까운 ‘아트 에디션’이 있습니다.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책’으로 기록된 헬무트 뉴튼(Helmut Newton)의 SUMO는 가로 50cm, 세로 70cm, 무게도 30kg에 달하는 책으로 작가의 서명과 함께 에디션 넘버가 표기되어 출판계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죠. 에디션 No.1은 2000년 베를린 경매에서 317,000유로(한화 4억 5천만원)에 낙찰됐다고 합니다. 최근까지도 데이비드 호크니의 『A Bigger Book』 등 시대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몇몇 아티스트의 SUMO 에디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부터 크기가 사람 몸체 만한 것까지, 크기도 장르도 구성도 모두 개성있는 아트북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에요. 출판사 애슐린의 책은 아시아 최초로 서울 신사동에 문을 연 ‘애슐린 라운지’에서 살펴볼 수 있고, 타셴의 책은 서울 대학로에 있는 ‘타셴 북카페’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공공도서관으로는 의정부미술도서관에서 다양한 출판사의 아트북을 감상할 수 있어요. 마음에 꼭 드는 아트북을 한 권 두 권 모아 책장에 가지런히 진열해 둔다면, 마치 작품을 소장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