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없이는
따뜻할 수 없을까

프리미엄의 상징이 된 동물 털
비명 없는 온기가 대신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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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불쑥 찾아왔다. 옷차림이 단출했던 여름과 달리, 다양한 아이템을 곁들일 수 있는 겨울은 패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계절이다. 필자도 겨울나기를 위해 오랜만에 온라인 쇼핑몰을 찾았다. 포근한 색감의 옷들이 괜스레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하지만 썸네일만 보고 성급하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소비 경험이 쌓이면서 옷의 품질이 중요한 고려 항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름옷에 비해 큰 비용을 투자하는 만큼 만족스러운 쇼핑 결과를 얻고자 하는 심리도 있다. 필자와 비슷한 생각으로 소재가 적힌 제품 정보란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그래서일까? ‘알파카 니트’, ‘메리노 울 코트’, ‘라쿤 가디건’ 처럼 소재를 명시한 제품명들이 제법 눈에 띈다. 하지만 ‘아크릴 니트’, ‘폴리 코트’ 와 같은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옷은 동물 털로 된 옷보다 단가도 낮은 편인데다, 보온성도 떨어진다는 통념이 있어서 소비자의 구미를 당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물 털의 함량이 높을수록 프리미엄 제품으로 비싸게 팔리고, 입었을 때도 왠지 더 따뜻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높은 비용을 주고 산 제품에 대한 막연한 믿음 혹은 오랜 시간 굳어버린 인식으로 인한 플라시보 효과는 아닐까. 설령 수치상으로 더 좋은 보온성을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난무하는 학대와 폭력 속에 고통받는 동물들의 비명과 맞바꿀 만큼 유의미한 차이일까.


끊어지지 않은 고통의 고리

2011년 SBS ‘TV동물농장’은 <모피의 불편한 진실>을 통해 모피로 희생되는 동물들의 현실을 보여줬다. 오랫동안 부의 상징이자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져 온 모피코트의 이면에,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극악무도한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피의 비윤리적인 생산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은 머지않아 전 세계 패션업계를 움직였다. 버버리, 구찌, 아르마니 등 명품 브랜드들을 필두로 각종 브랜드에서 모피 사용 중단을 선언하며 ‘모피 퇴출(fur-free) 운동’을 펼쳤다.

갇혀있는 쥐
이미지 출처: The Center for Biological Diversity

이러한 흐름에도 국내 모피 판매량이 코로나 유행 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는 통계는 적잖이 놀랍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피 단가의 하락으로 인해 높아진 접근성을 판매량 증가의 이유로 꼽았다. 코로나 유행이 시작되면서 모피 판매는 감소 추세로 들어섰지만, 대표적인 모피 동물인 밍크는 또 한 번의 큰 고통을 겪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소모품처럼 길러지다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이유로 덴마크에서만 1,700만 마리의 밍크가 살처분됐다. 더 잔인한 사실은, 부패해가는 사체 더미를 소각해 발전용 연료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인간은 그들이 죽은 뒤에도 편안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고통은 모습만 바꾸어 끊임없이 드리워졌다.


양털에도 낭만은 없다

모피뿐만 아니라 잔혹하게 털을 뽑아 만드는 앙고라, 구스다운의 비윤리적 생산방식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져 왔다. 이에 한동안 RDS¹ 패딩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옷 소재로 가장 흔하게 활용되는 울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다. 너무 친숙한 나머지 의류 라벨에 포함된 ‘울’이라는 글자가 당연하게 느껴지고, 울 함량이 낮으면 아쉽기까지 하다.

어릴 적에 본 애니메이션 때문일까. 울의 채취 과정을 상상해 보면 평화로운 초원에서 양털을 깎는 장면이 떠오른다. 인간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반려견 털을 밀어주는 것처럼, 양들도 이따금 털을 밀면 개운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실제 채취 과정은 이러한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1) RDS : 조류에서 털을 얻기 위해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뽑는 라이브 플러킹(live plucking)을 하지 않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털을 채취하여 만든 다운 제품에 발행되는 인증마크이다.

모여있는 양
이미지 출처: PETA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 PETA는 미국과 호주의 양모 농장 30곳에서 자행된 지속적인 학대를 세간에 알렸다. PETA가 공개한 영상 속 양들은 위 사진 속 양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축 늘어진 양은 작업자들의 거친 손길에 이리저리 꺾이고 비틀리며 털을 깎인다. 조금이나마 저항할 힘이 있는 양에게는 무차별적인 발길질이 이어진다. 몸부림 치던 양은 끝내 몸통을 짓밟힌 채로 차가운 칼날을 마주하게 된다. 마구잡이로 털을 깎이는 동안 양들의 몸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업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당 작업량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PETA
이미지 출처: PETA

요즘 코트 소재로 인기 있는 메리노 울을 얻기 위해서는 한 단계가 더 추가된다. 양모산업을 위해 개량된 메리노 양은 주름이 많고 털이 풍성하게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감당할 수없이 많은 털을 가지게 된 메리노 양은 털의 무게와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폐사하기도 한다. 배설물이 털에 묻어 구더기가 생기거나 피부가 곪기도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 바로 ‘뮬싱(mulesing)’이다. 고도의 기술인가 싶지만, 양의 엉덩이를 통째로 도려내버리는 야만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양들의 꼬리와 생식기가 함께 잘려나가는 대수술임에도 마취와 지혈은 없다. 그 잔인함에 몇몇 브랜드에서 ‘뮬싱 프리(mulesing free)’를 선언했지만 뮬싱을 하지 않는 농장이 극소수인데다, 공급망이 워낙 광범위하고 불투명한 탓에 소비자가 이를 검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비명 섞이지 않은 온기를 찾아

인간의 겨울나기를 위해 동물들은 잔혹하게 살해되고 있다. 필자는 차마 들어볼 수 없었지만, 울부짖는 양들의 비명을 한 번 듣고 나면 절대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고도로 발전한 기술과 입을 옷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말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어야만 따뜻할 수 있는 것일까. RDS 인증 마크는 털 채취 목적으로 동물에게 가학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식용으로 기르거나 도살된 동물의 털을 모아 만들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생명을 이용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미지 출처: PANGAIA

친환경 소재의 제품들로 잘 알려진 패션 브랜드 판게아(PANGAIA)는 2019년 동물 털 대신 야생화를 충전재로 한 패딩 ‘플라워다운(FLWRDWN)’을 출시해 이목을 끌었다. 토양에서 쉽게 분해되는 바이오폴리머(Aerogel Biopolymer)와 뛰어난 단열 기능으로 우주복에 활용되기도 하는 에어로젤(Aerogel)를 더해 환경과 보온성까지 고려했다. 국내 SPA 브랜드와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활용해 이제는 익숙해진 이름인 웰론(Wellon), ‘신슐레이트(Thinsulate)’도 구스다운을 대체할 만한 대체재로 자리 잡았다. 신슐레이트의 경우 거위털의 1.5배 이상의 보온성을 자랑한다.

“사랑하는 동물을 위해 상상하는 동물을 입으세요.”

_SUPER ANIMAL FUR 캠페인

2020년 광고대행사 ‘이노션’은 비건 패션 브랜드 ‘비건 타이거’와 손잡고 ‘SUPER ANIMAL FUR’ 캠페인을 펼쳤다. 동물 모피 사용의 잔인함을 강조하여 시각적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던 기존의 캠페인 영상들과 다르게, 인조 모피의 장점에 주목해 유쾌하게 풀어냈다. 영상은 슈퍼 애니멀 헌터인 주인공이 상상 속 동물인 ‘색묘림’의 털을 구하러 가는 여정을 그린다. 색묘림을 찾아낸 그녀는 ‘비건(Bee-Gun)’으로 꿀벌을 쏘고, 저격당한 색묘림은 새하얀 구름옷으로 변한다.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사냥은 성공했고 나는 원하던 옷을 얻었다.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따뜻한 옷을. 하지만 그보다 멋진 건 이 사냥에선 어떤 동물도 목숨을 잃지 않는다는 것.” 이보다 인조 모피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울은 그 질감과 특성을 살리기 어려워 다른 털에 비해 대체할 만한 신소재가 부족한 편이다. 대신에 오랜 시간 명성을 지켜온 합성섬유 삼총사 나일론(Nylon), 폴리에스터(Polyester), 아크릴(Acryl)을 눈여겨보는 건 어떨까.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동물 털에 비해 품질이 떨어질 거란 편견은 버리자. 합성섬유는 천연섬유에 비해 가볍고 마찰에 강하며, 회복력이 뛰어난 것이 장점이다. 특히 아크릴은 흔히 ‘기모’라고 불리는 크림프(crimp)가 있으면서도 보온성이 좋은 편이라 울의 대체재로 널리 쓰이고 있다. 물론 소재마다 장단점이 있어 취사선택이 필요하지만, 더 이상 동물의 비명 없이도 기능적으로 부족함 없는 옷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인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을까. 하나둘 그 빚을 알아갈 때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비겁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세상에 불편한 것이 많아질수록 평온과는 긴 작별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보다 앎을 택하는 것은, 우리의 평온 뒤에 누군가의 신음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재된 의식은 행동을 만들고, 결국 그 행동이 세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 낸다. 당장 오늘 울 코트를 꺼내 입을지언정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다. 비명과 한이 서린 옷이 따뜻해 보아야 얼마나 따뜻할까. 물욕 앞에서 고통받는 존재를 떠올릴 수 있는 자비심이 인류에겐 있다고 믿는다.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옷이 기괴하고 낯설어지는 날이 머지않아 찾아오기를 바란다.

  • 조선일보, 전 세계 모피 퇴출 운동에도 국내 모피 시장은 성장세, 왜?, 2018.10.11
  • Economy Insight, ‘뮬싱’으로 고통받는 양들의 비명, 2019.04.01
  • BIZION, 동물 털을 꽃으로 대체한 친환경 ‘비건패딩’ 탄생!, 2019.12.10
  • PETA, The Wool Industry
  • 네이버 지식백과, pmg지식엔진연구소, RDS
  • Instagram, 동물해방물결, 당신이 몰랐던 울(wool)의 진실
  • Youtube, 이노션, SUPER ANIMAL FUR|슈퍼애니멀퍼|사랑하는 동물을 위해 상상하는 동물을 입으세요. (Vegan Tiger X INNOCEAN 2020FW)

탁유림

탁유림

아무래도 좋을 것들을 찾아 모으는 사람.
고이고 싶지 않아 잔물결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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