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울은 아시아 도시로서는 처음으로 프리즈(Frieze Art Fair)의 장이 되었다. 7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고, 작품 판매 총액은 65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이 국제적인 예술 시장을 담을 수 있는 장소적 그릇임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한편, ≪프리즈 서울≫이 열리기 약 3개월 전인 6월 18일, 독일 중심부의 소도시 카셀(Kassel)에서는 열다섯 번째 도큐멘타(Documenta)의 막이 올랐다. 세계 각지의 예술가 1500여 명이 참가한 이 예술제에서는 32개 전시장에서 1700회 이상의 전시 관련 행사 및 퍼포먼스가 열렸고, 총 73만 8천 명의 방문객을 불러들이며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은 독자 중 프리즈는 익숙하나 도큐멘타는 처음 들어본 경우가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필자가 이 글을 기획한 이유이다. 해를 더할수록 서울, 더 나아가 한국은 동시대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그 위상을 갱신해가고 있다. 그러나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평가받는 한국의 우리가 ≪도큐멘타 15≫처럼 엄청난 통계적 기록을 세운 예술제가 낯설다니. 필자는 이것이 단순히 우리의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도큐멘타란 무엇인지, 우리가 도큐멘타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도큐멘타가 극복해 나가야 할 점은 무엇인지를 살피며 필자는 이 의문에 답해보려 한다.
도큐멘타란 무엇인가
프리즈가 아트 바젤(Art Basel), 피악(FIAC)과 함께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거론된다면, 도큐멘타는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상파울루 비엔날레(Sao Paulo Biennale)와 함께 3대 예술제로 일컬어진다.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정확히 100일간 열리는 동시대 예술 전시회로 100일 동안의 미술관이라는 별칭이 있으며, 초청되는 작가들에게 2년 이상의 구상 시간을 주어 선보여지는 작품들의 완성도와 정교함을 요구하는 초대형 큐레토리얼(curatorial) 프로젝트다.
도큐멘타의 시작은 1955년, 카셀대학교의 교수였던 건축가 겸 큐레이터 아르놀트 보데(Arnold Bode)가 나치즘 시기의 문화적 암흑기를 쇄신하려는 목적으로 독일 국내 관객들에게 근현대 회화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한 전시였다. ‘Documenta’라는 이름은 라틴어의 ‘docere(가르치다)’와 ‘mens(지성)’를 합친 ‘documentum’이라는 단어에서 가져온 것으로 초창기의 계몽적인 의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동시대 예술의 소개와 실험에 초점을 맞춘 기획이 도큐멘타의 취지가 되어갔다. 그 예로 1968년의 ≪도큐멘타 4≫는 팝아트, 미니멀리즘, 키네틱 아트 등을 소개했으며, 1972년의 ≪도큐멘타 5≫에서는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를 필두로 한 개념 예술이 조명을 받았다.
동시대 예술을 포괄하기 시작하며 도큐멘타는 국제적인 행사로 급격히 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창립된 이래 백인 남성 중심적인 기획을 해 왔다는 비판을 의식한 ≪도큐멘타 11≫에서는 총감독의 자리에 나이지리아 출신 큐레이터이자 예술평론가, 작가, 시인인 오쿠이 엔위저(Okuwi Enwezer)를 임명하여 그 개방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이는 도큐멘타의 총감독을 비(非)유럽권 출신이 맡게 된 첫 번째 사례로, 엔위저는 ‘타문화권의 사람들을 이국적인 탐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서구의 지배자적인 시선’을 지적하며 서양 밖의 작가들을 암묵적으로 차별해온 기존의 예술계를 비판하는 과감한 전시를 선보였다.
≪도큐멘타 15≫가 특별했던 이유
2022년에도 사회적 메시지를 주는 과감한 기획은 이어졌다. ≪도큐멘타 15≫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예술공동체 루앙루파(ruangrupa)를 총감독으로 초청해 첫 아시아 출신 감독이자 개인이 아닌 콜렉티브가 도큐멘타의 디렉팅을 맡은 첫 번째 사례를 남겼다. 이러한 선택에 화답하듯 루앙루파는 백인(being White), 서양 중심주의(Western), 세계적인 기성 아티스트(World famous)가 없는, ‘3W 없는 도큐멘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그 초심을 지켰다. 그들이 초대한 1500여 명의 참여 작가들은 대부분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출신의 신진 작가들로 유럽, 북아메리카 등의 북반구를 위주로 돌아가던 예술계의 이목을 남반구로 집중시킨 이례적인 기획으로 평가받았다.
더 나아가 루앙루파는 인도네시아 농촌에서 마을 공동의 헛간을 뜻하는 ‘룸붕(lumbung)’을 테마로 사회적 연대, 자원의 공유, 그리고 상생의 가치를 강조하는 전시를 만들어냈다. 이전부터 콜렉티브의 모든 구성원과 동료들에게 경제적 소득을 투명하게 배분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루앙루파는 도큐멘타의 자본이 어떤 형태와 경로로 참가자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지를 벽화 형식의 흐름도로 만들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배치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과도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큐레이팅 총괄로서의 권위,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실현보다 서로의 관점을 나누고 교감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전시된 작품들의 내용 또한 루앙루파의 기획 의도를 적극 반영했다. 전반적으로 개인 작가의 작품보다 콜렉티브로서 출품한 작품의 수가 압도적으로 높았음은 물론, 그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수호하고 활동하는 현지 지역 주민들과 호흡하며 프로젝트를 사회로 확장해 나가는지에 대한 기록들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도큐멘타 전시장에서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작가들은 다양한 상설 전시물, 워크숍, 퍼포먼스 등을 통해 관람객의 주체적인 개입을 유도했고 따라서 그들의 예술은 완성된 작품에 있는 것이 아닌 그것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도큐멘타 15≫를 둘러싼
반(反)유대주의 논란
그러나 순탄할 것 같았던 ≪도큐멘타 15≫의 항해는 뜻하지 않은 역풍을 맞게 됐다. 참여 작가였던 콜렉티브 타링 파디(Taring Padi)의 “인민의 정의(People’s Justice)” 벽화 작품이 반(反)유대주의적인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홀로코스트¹라는 크나큰 과오를 범했던 독일의 한복판에서 개최된 예술제였던 만큼 거센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주 독일 이스라엘 대사관과 독일 문화부 장관 등 정치계 인사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문제가 된 작품의 철거에 이어 행사 개막 후 28일 만인 7월 16일, 도큐멘타 사무총장이었던 사빈 쇼르만(Sabine Schormann)이 사임했다.
문제가 되었던 이미지는 두 부분으로, 하나는 유대인의 복식을 한 사람이 나치 친위대의 표식인 SS 마크가 그려진 검은 모자를 쓰고 있는 것 (아래 이미지 중 좌측), 또 다른 하나는 돼지의 머리를 한 군인이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이 그려진 스카프를 하고 이스라엘 국가정보기관을 지칭하는 ‘모사드(Mossad)’라고 쓰인 헬멧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다(아래 이미지 중 우측). 이 이미지들을 벽화에 사용한 타링 파디는 진보적 성향의 학생들과 예술 활동가들이 1998년에 결성한 창작 공동체로, “인민의 정의”는 폭력, 착취, 검열을 일삼았던 수하르토(Suharto)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의미로 2002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타링 파디는 도큐멘타 공식 웹사이트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며 작품에 어떠한 반유대주의적 의도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수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총감독 루앙루파는 큐레이팅에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언론과 독일 정치계의 비판 공세에 연일 정신을 빼앗겼고, 그들 또한 감독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혹은 ≪도큐멘타 15≫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과 끝나지 않는 공방을 벌여야 했다. 급기야는 앞으로 도큐멘타의 개최를 영구히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들리면서 상황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도큐멘타 15≫가 원래의 계획대로 9월 25일에 막을 내리면서 이러한 극단적인 해결책이 실현될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루앙루파는 폐막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다른 작품들과 작가들이 응당 받았어야 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잡음 속에서 소모돼 버린 것은 아쉽다며 심경을 밝혔다.
우리가 2022년의 도큐멘타와
프리즈를 통해 생각해볼 점
2022년은 다양한 의미로 예술계의 새로운 역동을 낳은 해였다. 그러나 그 중엔 다소 불편한 역동도 존재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타링 파디의 벽화는 철거당해야 마땅했을까? 물론 총감독이 전시가 열리는 곳이 유럽이었다는 점, 그중에서도 반유대주의 논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독일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서 출품작을 더 신중히 골랐어야 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또, 타민족의 역사를 ‘악(惡)’을 표현하기 위한 표면적인 상징으로 이용한 것에 작가의 윤리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대적인 요인들을 잠시 걷어내면 타링 파디가 전하려 했던 작품의 진의, 약 6개월 만에 50만 명 이상이 살해된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²을 국제적으로 공론화하려던 시도가 논란 속에 완전히 외면당했음을 알 수 있다.
≪프리즈 서울≫의 경우로 돌아가 보자. ≪도큐멘타 15≫와 마찬가지로 숫자로 보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국내외 갤러리 110여 곳이 참여했으며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최정상급의 영향력을 가진 작품들이 전시장을 메웠다. 높은 가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작품이 팔렸고, 예술계로 엄청난 자본이 유입됐다. 그러나, 이 모든 기회는 대부분 해외 유명 작가들의 차지였다. 이미 유명한, 이미 그 상업적 주요성이 알려진 서양 주류 예술계의 작품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이어갔고, 주최자였던 한국 예술계는 소수의 컬렉터가 구매력을 뽐냈을 뿐, 우리 작품들만의 특장점을 보여주지도, 구체적인 발전 방향을 탐색하지도 못한 채 2022년 ≪프리즈 서울≫은 끝이 났다.
우리에게 도큐멘타가 생소한 이유는 그것이 극단적으로 실험적이고, 전시장 밖으로 전달되기 어려운 장소 특정적인 예술을 주로 선보이고, 머나먼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열리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어찌 되었건 도큐멘타는 서양의 중심에서 열리는, 서양 중심의 예술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맥락이 우리의 입장보다 더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예술계는 분명 진정한 국제화와 다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쌓아 올려진 지금의 주류를 위한 시스템을 허물고, 서양 중심의 틀을 깨고, 자원과 기회의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단순한 총감독 임명, 이벤트성의 아트 페어 몇 번으로는 절대 충분치 않다. 도큐멘타가 타링 파디의 작품을 무작정 철거하는 대신 그것의 문제점과 시사성을 관람객들과 토론하며 모두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프리즈가 단지 유명 아트 페어를 위해 서울 한복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우선적으로 컬렉터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우리 예술계를 위한 자생의 기회를 조금 더 내주었다면 어땠을까? 이것이 도큐멘타, 더 나아가 국제 예술계가 극복해야 할 한계이고, 우리가 도큐멘타를 몰랐지만 이제는 알아가야 할 이유다. 우리를 위해, 그리고 다시 모두를 위해 우리는 열심히 주목하고 생각해야 한다.
- 홀로코스트: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정권 지배하의 독일과 그 영향력 아래 있었던 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장애인, 성소수자, 집시 등의 사회적 약자 집단도 희생되었다.
-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수하르토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 확산에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 대해 진행한 대규모 숙청과 학살. 시각에 따라 12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도 집계된다.
- 경향신문, ‘소문난 잔치’ 프리즈 서울이 남긴 숙제, 2022. 10. 03.
- 서울경제, 갤러리마다 완판… ‘프리즈 서울’ 나흘만에 6500억 팔았다, 2022. 09. 05.
- ArtReview, Who’s Exploiting Who? ruangrupa on documenta fifteen, 2022. 09. 26.
- Documenta fifteen, documenta fifteen closes with very good attendance figures, 2022. 09. 26.
- 도큐멘타 공식 웹사이트, documenta 11 Retrospective, 2022. 12. 24.
- The Art Newspaper, Documenta’s director steps down over antisemitism scandal, 2022. 07. 18.
- The Collective Eye & Matthias Kliefoth, In Conversation with Ruangrupa: Thoughts on Collective Practice, Distanz, 2022.